김유상 (프란치스칸 평화학교 참가자)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 속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평화학교 일원으로 동두천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로 향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지촌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의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동두천에 도착하니 문동환 목사의 부인 문혜림 여사가 1986년 의정부에 설립한 기지촌 여성 지원단체인 두레방에서 온 조이스활동가와 다른 세 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소요산 성병관리소였다. 흉물스런 건물, 한 눈에 봐도 恨이 서린
지난 5월 28일에 진행한 심포지엄 <한국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역사와 소송의 의미>에서 소송 원고 박영자 언니가 발표를 하였습니다. 두레방 박영자, 소송 원고 의정부 뺏뻘에는 30년동안 두레방이 한결같이 옆에 있어주었다. 어느날은 밥을 먹고 어느날은 떡을먹으며 두레방에 둘러앉아 두레방 식구들과 동네 언니들과 함께 있었다. 그 시간은 결코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는 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두레방 식구들와 함께 한지 10년이 넘어서야 내가 기지촌에 있었던 것이 정부로
Leen (린) 번역: 최호연 What was your experience living and working in Korea? 한국에서 살아온 이야기와 일해온 경험을 들려주세요. I am Leen, who went to Korea as a woman migrant worker. I am 25 years old. I first went to Korea in 2012 and worked at a bar. For two years everyday at 5pm, I prepared to go to work, ha
김은진 (두레방 원장) 남편의 사역지가 제주도 서귀포로 확정되면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실무자 자리를 내려놓고 서울을 떠났었습니다. 16년 만에 두레방원장으로 돌아온 감회가 새롭습니다. 처음 두레방 원장 자리를 제안 받고 두려웠습니다. 제가 이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달간 한국여성진흥원에서 ‘성매매방지 상담원 양성교육과정’ 연수를 받았습니다. 더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읽던 중 두레방 창시자 문혜림선생의 말씀이 눈에 박혔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두레방을 만드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