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두레방 쉼터)
서쪽으로 과테말라와 북동쪽으로는 온두라스와 접경해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는 멀게 느껴지는 나라이고 한국 선교사 파송지역으로 겨우 들어봄직한 나라이다. 파나마와 암스테르담을 거쳐 16-18 시간의 긴 비행 후에 24세의 엘 살바도르인 여성 아달리아는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오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달리아는 한국을 가게 되리라고는 꿈꾸지도 않았다. 그녀는 쌍둥이 자매,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카톨릭 가정으로 단란하게 살고 있었고, 대학에서 공부하며 틈틈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달리아는 지금 성매매 피의(해)자가 되어 경찰서와 대사관을 오가며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달래며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엘살바도르에서 대학에 재학 중이던 아달리아는 2015년 4월 어느 날 수업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번호판이 없는 차량의 엘살바도르 남성에게 납치되었다. 끌려간 곳은 산살바도르라는 도시의 산베니또라는 지역에 소재한 호텔, 그곳에서 거부하면 자신과 가족을 죽이겠다는 한국 남성의 협박을 받아 강제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엘살바도르의 치안상태가 너무 열악하여 가족에게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고, 경찰은 부패된 조직이라 뇌물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 신뢰하지 못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얼마 전까지 혈압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해 계셨기 때문에 어머니께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한국에 일하러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가족들을 말리지 못해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한인 남성에게 지시받은 대로 태연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공항에서 과테말라 여성이 뒷면에 한국의 주소와 연락처가 쓰인 비행기 티켓을 주면서 한국 출입국심사에서 관광목적으로 2주 정도 방문할 것이며 한국에서 거주할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보면 티켓 뒷면을 보여 주라고 지시를 했다. 이렇게 다른 2명의 엘살바도르 여성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했고, 공항에서 지시 받은 대로 했다. 한국에 도착하자, 스페인어를 조금 구사하는 한국인 남성이 마중을 나왔고, 여성들을 데리고 호텔인지, 아파트인지 알 수 없는 장소에 갔다.
그곳에서 함께 온 2명의 엘살바도르 또래 여성들과 지냈고, 하루에 평균 3-4명의 남성 손님과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거부도 했지만, 엘살바도르에 있는 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등의 협박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벗어날 길은 없었다. 성매매는 오후 8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계속됐고, 생리기간 외에는 휴일이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관리자는 1개월, 알 수 없는 장소로 옮겨 1-2 주, 그리고 강남의 P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며 일을 시켰다. 그렇게 지낸 지 3주쯤 지난 2015년 6월 25일, P아파트로 예닐곱 명의 경찰들이 찾아와 아달리아를 경찰서로 연행하여 조사를 받게 했다.
조사과정에서 스페인어 통역사와 전화연결을 해주었으나, 이것도 오래지 않아 나중에는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남성이 통역을 했다. 아달리아가 이해를 잘 못할 때에는 통역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스페인어 번역을 보여줬다. 조사가 끝나 진술서에 지문을 찍은 후, 아는 사람도, 갈 곳도 없던 아달리아는 경찰서 소파에서 잘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경찰서에서 아침이 되기까지 머물렀고, 여전히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녀에게 경찰은 엘살바도르 대사관 전화번호를 주었고, 택시로 대사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엘살바도르 대사관은 여성가족부를 통해 쉼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난 달 7월, 본 시설에 아달리아를 연계하여 현재 쉼터의 보호아래 지내고 있다.
최근 있었던 아달리아의 사례는 나에게 여러 가지 안타까운 문제들을 상기시키며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원으로 쉼터에서 일하면서 무척 안타까웠던 상황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에 수사기관에서 조사과정의 통역은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아달리아 사건의 경우에도 다를 바 없이 조사과정에서 통역의 오류로 인해 처음 진술과 나중 진술이 번복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졌다.
‘전,’ ‘후’라는 단어는 때론 문장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 듯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사건 조사의 경우, 전이냐? 후냐?는 사건을 크게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진술이 된다. 이것을 어떻게 외국인 피해자가 이해했고, 그 질문과 대답을 어떻게 한국인 통역인이 통역하여 전달했는지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큰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 피해자로 인식되는냐? 피의자로 인식되느냐?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번복되는 통역인을 통한 진술 과정 속에서 아달리아는 피해자로 인식되기보다는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두 번째는, 내국인의 사건과는 달리, 통역으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을 줄이고자 수사기관이 적절한 설명 없이 일을 진행시켜 외국인 피해여성으로서는 인권의 침해로 인상을 받아 진술을 강요받는 듯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들더라도, 인력을 더 들여서라도 피해자이든 피의자이든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세 번째는, 한국 내에서 벌어진 성매매에 관련된 사건이기에 외국인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출신국에 대한 이해가 적다는 것이다. 한국을 많이 또는 오래 경험해 보지 않은 이 외국인 피해여성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생각이 정립되어 반응하기까지의 과정이 출신국의 사회와 문화가 사건이 벌어진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수사기관에서는 “왜 경찰에게 알리지 않았냐?”이다. 경찰이 부패해 신고자가 피해를 볼 수 있어 수사기관을 불신하는 엘살바도르의 상황, 치안이 열악하여 납치와 느닷없는 죽음이 횡행하는 출신국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의 형사는 계속 의문만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렇게 심한가?” “그래도 그렇지….”
네 번째는, 덩그러니 성매매 현장에 아무런 대비 없이 혼자 남겨진 피해자(본인은 아달리아가 피해자라고 믿기에)는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지만 대비를 충분히 해온 가해자들(모집자, 인계자, 관리자 등)은 인적정보가 부족하여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 계약자는 또 다른 피해자일지 모를 외국인 여성의 이름으로 계약이 되어있고, 감시인도 경찰을 의식해 거리를 두고 따라다녀서 CCTV에는 피해자들만 보이는 상황이다.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주로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Mr. Kim, Mr. Lee 등으로 부르기 때문에 진짜 이름을 알 수가 없고, 이 사례에서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식의 흔한 스페인 이름의 ‘알레한드로’ 만이 아달리아의 진술 속에 존재할 뿐이다. 아달리아의 사례는 이러한 몇 가지 문제의 돌들이 쌓여 나로 하여금 넘을 수 없는 높은 벽과 마주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먼 나라 엘살바도르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아달리아는 좀 전에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바로 옆방에서 스카이프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어머니가 해주는 기도를 따라하며 아멘을 말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가족이 걱정이 되고 보고 싶어 목에 걸린 묵주를 만지며 울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화상통화를 하며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힘을 얻었는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사무실 맞은 편 소파에 앉아 목에 걸린 묵주를 만지며 눈을 감는다. 가족이 본인으로 인해 해를 당하지 않기를, 속히 엘살바도르에 돌아갈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