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가’에 대한 사유
*주디
활동가로 나를 명명하는 것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습니다. ‘활동이란 무엇인가?’, ‘활동가란 무엇인가?’ 임금활동가가 ‘활동가’라는 단어를 독식하고 있는 요즈음, (두레방활동가가 되기 전) 무임금활동가로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명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곧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문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두레방쉼터에 들어와 ‘반성매매활동가’로서 자신을 정체화한 후에는 ‘임금노동/활동’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저임금과 무임금,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이 구분되지 않는 환경에서 활동하는 바깥의 동지들과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초단기간 계약이라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동지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습니다. 지금도 저임금 또는 무임금으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동지들을 떠올리며 제가 정리한 ‘활동’과 ‘활동가’의 의미에 큰 영향을 끼친 한나 아렌트의 말을 옮겨 적어봅니다.
아렌트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먹고, 싸고, 소비하는 삶 너머에 있는 공적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는 삶, 활동적 삶vita activa입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활동성, 즉 행위action였습니다. 이는 단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나 작업을 넘어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약자나 동물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주거나 후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행위는 아주 작은 도움이 될 수도, 또는 삶을 바꾸는 구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지언정 공적인 문제제기 없이 사적으로 행한 도덕적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으로 행동하고, 공적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고, 도덕적인 것을 넘어선 정치적인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쉼터에서 일을 하며 놀랐던 것은 입소자들과 관련된 일 대부분이 아주 기초적인 돌봄노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지촌 여성운동사’ 논문을 읽고 공부했던 제가 생각한 ‘운동(활동)’이라는 방향성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돌봄’이 그 어느 때보다 화두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옛날부터 꾸준히, 아주 오랫동안 약자/피해자들을 돌봐온 두레방 활동가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을. 국가폭력과 성매매, 작금의 여성인권과 전인권적인 활동 등 두레방이 하는 모든 활동의 기반에는 개인적인 도움을 넘어선 선배 활동가들의 공적 (돌봄)노동이 있었습니다. 사적인 도움을 넘어서 공(개)적으로 행동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는 삶, 도덕적인 것을 넘어선 정치적인 행위action로 두레방 활동가들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왔고, 현재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때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반성매매활동가’, ‘두레방활동가’로서 쉼터에서 제가 하는 그 모든 활동은, ‘타인을 돕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의 해방과 그들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행위action입니다. 제 힘이 닿는 한 이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서든 자랑스럽게 “저는 ‘두레방활동가’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신 선배 활동가, 동료 활동가들에게 무한히 감사합니다.
‘활동/가’에 대한 사유
*주디
활동가로 나를 명명하는 것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습니다. ‘활동이란 무엇인가?’, ‘활동가란 무엇인가?’ 임금활동가가 ‘활동가’라는 단어를 독식하고 있는 요즈음, (두레방활동가가 되기 전) 무임금활동가로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명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곧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문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두레방쉼터에 들어와 ‘반성매매활동가’로서 자신을 정체화한 후에는 ‘임금노동/활동’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저임금과 무임금,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이 구분되지 않는 환경에서 활동하는 바깥의 동지들과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초단기간 계약이라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동지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습니다. 지금도 저임금 또는 무임금으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동지들을 떠올리며 제가 정리한 ‘활동’과 ‘활동가’의 의미에 큰 영향을 끼친 한나 아렌트의 말을 옮겨 적어봅니다.
아렌트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먹고, 싸고, 소비하는 삶 너머에 있는 공적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는 삶, 활동적 삶vita activa입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활동성, 즉 행위action였습니다. 이는 단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나 작업을 넘어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약자나 동물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주거나 후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행위는 아주 작은 도움이 될 수도, 또는 삶을 바꾸는 구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지언정 공적인 문제제기 없이 사적으로 행한 도덕적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으로 행동하고, 공적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고, 도덕적인 것을 넘어선 정치적인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쉼터에서 일을 하며 놀랐던 것은 입소자들과 관련된 일 대부분이 아주 기초적인 돌봄노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지촌 여성운동사’ 논문을 읽고 공부했던 제가 생각한 ‘운동(활동)’이라는 방향성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돌봄’이 그 어느 때보다 화두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옛날부터 꾸준히, 아주 오랫동안 약자/피해자들을 돌봐온 두레방 활동가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을. 국가폭력과 성매매, 작금의 여성인권과 전인권적인 활동 등 두레방이 하는 모든 활동의 기반에는 개인적인 도움을 넘어선 선배 활동가들의 공적 (돌봄)노동이 있었습니다. 사적인 도움을 넘어서 공(개)적으로 행동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는 삶, 도덕적인 것을 넘어선 정치적인 행위action로 두레방 활동가들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위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왔고, 현재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때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반성매매활동가’, ‘두레방활동가’로서 쉼터에서 제가 하는 그 모든 활동은, ‘타인을 돕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의 해방과 그들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행위action입니다. 제 힘이 닿는 한 이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서든 자랑스럽게 “저는 ‘두레방활동가’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신 선배 활동가, 동료 활동가들에게 무한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