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변화> 신입활동가 이야기
- 오리 -
2022년, 저는 경기도로 이사 오면서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 코로 느껴지는 공기,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저 자신조차 어색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과거의 추억과 향수에 머물며 안락함을 느꼈지만, 어느 날 우연히 구인란을 살피던 중 ‘두레방’이라는 이름이 제 직감을 사로잡았습니다. 직감에 이끌려 입사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1년 대체인력으로 두레방쉼터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대한민국 성인 남자는 모두 군인이라고 생각했고, 외국 남성도 대부분 군인일 것이라 믿으며 자랐습니다. 주말이면 어른들을 따라 동두천과 의정부를 다니며, 그곳에서 접한 군인들의 생활과 유흥문화는 어린시절 제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 저의 사회적 시선과 세계관에도 은연중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두레방쉼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어린날의 기억들 중 특히 유흥문화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들이 해부되는 모습을 보며 큰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이전에, 저는 스스로 꼰대스러운 판단을 먼저 내리곤 했습니다. 더불어 이주여성 내담자들과의 언어 소통의 한계는 저를 더욱 힘들게 했고, 하루하루 직장인으로서의 ‘최선’만을 반복하며 제 역할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라는 시간은 제 안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서서히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레방쉼터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겪은 신체적·심리적 상처의 깊이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길을 찾아가는 힘과 용기를 보면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쉼터에서는 단순한 거주 지원뿐 아니라, 의료적·법률적·직업훈련지원이 함께 이루어지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단순한 업무 이상의 큰 배움이었습니다.
1년간의 대체근무를 마친 뒤, 잠시 쉼터를 떠났지만 그 경험은 제 안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반년이 지난 후 저는 다시 두레방으로 돌아왔고, 현재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입사 후에는 ‘성매매방지상담원 양성교육’을 이수하며 현장의 경험과 이론을 연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상담원으로서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사회적 편견을 바꾸어가는 과정임을 배웠습니다. 의정부와 동두천의 미군기지 인근 클럽거리를 답사하고, 평택의 안정리와 서정리 일대를 탐방하면서, 클럽이 위치한 지리적 상황과 클럽건물의 구조적 특징 등은 내담자들이 너무도 낯선 타국에서 신체와 정서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꼈을 불안과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더불어 미군기지 주변 여성 인권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전쟁 이후 유지되어 온 한미동맹과 동아시아 안보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문제의 역사적 맥락 또한 다시 실감하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반군사주의’라는 단어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에 맞서는 실천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두레방 활동가로서의 실천은 단순히 피해자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 속 군사주의적·성착취적 문제를 질문하고 바꿔나가는 운동도 포함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레방쉼터에서의 매일은 결코 단조롭지 않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처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연대’의 의미를 다시 배우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어려움도 있지만, 동료 활동가들과의 협력, 쉼터를 거쳐 간 내담자들의 변화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활동가로서의 책임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공감과 배려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면, 우연처럼 선택했던 이 직업은 제 삶의 상당한 부분을 변화시켰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더 성숙하고 성장해 가기 위해 삶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저에게 두레방쉼터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인간에 조금 더 집중하고 사회 구조적 문제에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활동가로서, 국가 이익이나 경제성장의 명목으로 군사주의가 활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그 속에 피해를 받은 여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는 활동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인지하고 바로잡으려는 작은 힘이 되려 합니다.
신입 활동가 이야기
- 나나 -

안녕하세요 평택 여성인권상담센터 품 신입 활동가 나나입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라는 길에 처음 도전하면서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또 잘 할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입사 후 성매매 여성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책과 기사 등을 접하면서 내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평택에 거주한지 15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택역 주변에 ‘삼리’라는 공간과 집결지 여성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에서 ‘삼리 철거’라는 문구를 스치듯 보았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센터품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때론 저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교육이 있고, 배움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특히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평화네트워크에 참석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군 주둔으로 인한 피해를 겪는 여성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여성 인권’ 이라는 주제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택 공익활성화 사업으로 ‘페미의 품격’을 담당하며 다양한 강의를 접하고 성평등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저는 사회복지사이자 여성 인권 활동가로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현장에서 만나는 한분 한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활동가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우연한 변화> 신입활동가 이야기
- 오리 -
2022년, 저는 경기도로 이사 오면서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 코로 느껴지는 공기,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저 자신조차 어색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과거의 추억과 향수에 머물며 안락함을 느꼈지만, 어느 날 우연히 구인란을 살피던 중 ‘두레방’이라는 이름이 제 직감을 사로잡았습니다. 직감에 이끌려 입사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1년 대체인력으로 두레방쉼터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대한민국 성인 남자는 모두 군인이라고 생각했고, 외국 남성도 대부분 군인일 것이라 믿으며 자랐습니다. 주말이면 어른들을 따라 동두천과 의정부를 다니며, 그곳에서 접한 군인들의 생활과 유흥문화는 어린시절 제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 저의 사회적 시선과 세계관에도 은연중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두레방쉼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어린날의 기억들 중 특히 유흥문화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들이 해부되는 모습을 보며 큰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이전에, 저는 스스로 꼰대스러운 판단을 먼저 내리곤 했습니다. 더불어 이주여성 내담자들과의 언어 소통의 한계는 저를 더욱 힘들게 했고, 하루하루 직장인으로서의 ‘최선’만을 반복하며 제 역할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라는 시간은 제 안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서서히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레방쉼터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겪은 신체적·심리적 상처의 깊이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길을 찾아가는 힘과 용기를 보면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쉼터에서는 단순한 거주 지원뿐 아니라, 의료적·법률적·직업훈련지원이 함께 이루어지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단순한 업무 이상의 큰 배움이었습니다.
1년간의 대체근무를 마친 뒤, 잠시 쉼터를 떠났지만 그 경험은 제 안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반년이 지난 후 저는 다시 두레방으로 돌아왔고, 현재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입사 후에는 ‘성매매방지상담원 양성교육’을 이수하며 현장의 경험과 이론을 연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상담원으로서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사회적 편견을 바꾸어가는 과정임을 배웠습니다. 의정부와 동두천의 미군기지 인근 클럽거리를 답사하고, 평택의 안정리와 서정리 일대를 탐방하면서, 클럽이 위치한 지리적 상황과 클럽건물의 구조적 특징 등은 내담자들이 너무도 낯선 타국에서 신체와 정서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꼈을 불안과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더불어 미군기지 주변 여성 인권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전쟁 이후 유지되어 온 한미동맹과 동아시아 안보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문제의 역사적 맥락 또한 다시 실감하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반군사주의’라는 단어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에 맞서는 실천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두레방 활동가로서의 실천은 단순히 피해자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 속 군사주의적·성착취적 문제를 질문하고 바꿔나가는 운동도 포함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레방쉼터에서의 매일은 결코 단조롭지 않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처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연대’의 의미를 다시 배우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어려움도 있지만, 동료 활동가들과의 협력, 쉼터를 거쳐 간 내담자들의 변화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활동가로서의 책임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공감과 배려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면, 우연처럼 선택했던 이 직업은 제 삶의 상당한 부분을 변화시켰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더 성숙하고 성장해 가기 위해 삶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저에게 두레방쉼터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인간에 조금 더 집중하고 사회 구조적 문제에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활동가로서, 국가 이익이나 경제성장의 명목으로 군사주의가 활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그 속에 피해를 받은 여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는 활동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인지하고 바로잡으려는 작은 힘이 되려 합니다.
신입 활동가 이야기
- 나나 -
안녕하세요 평택 여성인권상담센터 품 신입 활동가 나나입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라는 길에 처음 도전하면서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또 잘 할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입사 후 성매매 여성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책과 기사 등을 접하면서 내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평택에 거주한지 15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택역 주변에 ‘삼리’라는 공간과 집결지 여성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에서 ‘삼리 철거’라는 문구를 스치듯 보았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센터품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때론 저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교육이 있고, 배움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특히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평화네트워크에 참석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군 주둔으로 인한 피해를 겪는 여성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여성 인권’ 이라는 주제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택 공익활성화 사업으로 ‘페미의 품격’을 담당하며 다양한 강의를 접하고 성평등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저는 사회복지사이자 여성 인권 활동가로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현장에서 만나는 한분 한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활동가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