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레방×이룸×역사문제연구소 공동주최-동두천,의정부 기지촌 답사
- 소양 (두레방 자원활동가) -
지난 5월 23일, 두레방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역사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동두천 성병관리소 x 기지촌 빼뻘 답사' - 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가 있었습니다. 신청 접수가 빠르게 마감되고 대기 인원이 생길 만큼 높은 관심을 받은 이번 답사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온 참여자들의 자기소개와 함께 동두천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부터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농성 634일째를 맞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농성장이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지완님의 해설과 함께 경기도 일대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던 성병진료소의 역사, 그리고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에 관한 공대위 최희신 집행위원장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존을 위해 방치된 건물 내부와 부지 청소 활동을 이어온 지역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두천시가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을 내세우며 가림막을 씌우고 접근할 수 없게 막아둔 성병관리소 정면을 멀리서나마 바라보았습니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아쉬웠지만, 초목이 우거진 성병관리소 건물을 뒤로하고 캠프 케이시 앞 보산동 관광특구의 클럽거리로 향했습니다.
보산동 일대 답사는 한미우호의 광장 주차장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미우호의 광장 옆에는 잦은 하천의 범람과 침수에 대비해 설치한 보산2 빗물펌프장이 있는데, 그 사이의 보도블록 자리가 바로 1992년 10월 28일 ‘윤금이 씨 피살 사건’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캠프 케이시 정문 앞으로 향하며 당시 일어났던 규탄운동과 동두천 미군 기지에 대한 역사문제연구소 우영님의 안내를 들은 뒤, 다시 보산동 클럽거리로 이동하여 두레방의 나길 활동가로부터 외국인 전용 클럽의 운영 현황과 이주 여성들의 상황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낮이라 조용하고 인적 드문 클럽거리였지만 리모델링으로 재개업을 준비 중인 클럽의 모습에서 오랜 기지촌 성산업의 흔적과 여전히 기지촌으로서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동두천 클럽거리의 과거와 현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특구와 양키 시장을 지나 도착한 다음 행선지는, 동두천의 지명이기도 한 하천 동두천 상류 지역 광암동에 위치한 캠프 호비 앞 턱거리마을이었습니다. 한적한 전원 풍경 사이로 운영을 중단한 몇 개의 클럽을 지나 관광버스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목의 초입에는 도로의 양옆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옛 기지촌 업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병과 기지 재배치 이전까지 가장 번화한 기지촌 중 하나였던 턱거리마을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는, 레이놀드라는 미군 병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기지촌 여성 '박순자의 묘'입니다. 화강암 비석에는 “박순자 가지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묘지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캠프 호비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과 기다림의 표상으로서의 ‘순자’의 이야기는, 미군에 의한 살해와 업주로부터의 착취로 악명 높았던 턱거리마을에 대한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과 간극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극은 기지촌의 역사를 기지촌 여성들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개입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의정부 빼뻘마을로 이동하는 길에 무연고 묘들을 이장하여 ‘상패근린공원’으로 탈바꿈 중인 상패동 산 16번지의 상패동 공동묘지 앞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곳에서 비석도 없이 묻혔다고 하는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들을 생각하며 모두 함께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빼뻘마을에서의 답사는 캠프스탠리 앞 마을 초입의 20여년 간 두레방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옛 고산성병진료소 건물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정부와 동두천 기지촌에서 30년간 활동해온 두레방 정강실 활동가의 해설을 통해서 초창기 두레방의 대표 프로그램인 빵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골목 안쪽의 옛 사무실 앞에서 하루하루의 평범한 생활 속 기지촌의 구조적 착취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차별적인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매일 전화를 걸고 발로 뛰며 언니들이 잘 계시는지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이었던 공동 식사와 기지촌의 폭력적인 환경에 방치되었던 혼혈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놀이방과 공부방 활동, 일주일간 기지촌 여성과 대학생들이 함께 생활했던 ‘기활(기지촌 활동)’ 등 두레방의 주요 프로그램에 얽힌 언니들과 동고동락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답사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두레방 김은진 원장님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기용 활동가의 발제, 기지촌과 집결지를 조성하고 관리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이윤을 얻어온 지자체들이 도시개발의 논리와 성산업에 대한 낙인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현장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집결지 폐쇄가 '탈성매매'로 이어지지 않고 여성들이 다른 업종과 지역을 순환하고 이동하게 되는 문제는 지역 단위로 분리되어 활동하는 단체들이 이러한 이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역할의 한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고 폐허로 남아 있는 공간을 정비하기 위해, 지자체가 나서서 돌보아야 한다는 김주희 교수님의 제언도 있었습니다.
빠듯한 하루 일정의 답사와 짧은 간담회에서는 해결할 수 없을 깊은 고민과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이 들어가는 언니들과의 관계 맺기에 관한 이룸 활동가의 진솔한 고민을 들으며 한 생애를 망라하는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온 두레방의 역사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실감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온종일 계속된 답사 일정에도 불구하고 밤늦도록 이어진 뒤풀이 또한 기지촌과 성매매 집결지를 향한 페미니스트 관점의 개입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연대자들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기 위한 후속 행사로 이어지고, 의정부와 동두천, 평택에서 진행해 온 두레방의 기지촌 평화 기행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어 기지촌 문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두레방×이룸×역사문제연구소 공동주최-동두천,의정부 기지촌 답사
- 소양 (두레방 자원활동가) -
지난 5월 23일, 두레방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역사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동두천 성병관리소 x 기지촌 빼뻘 답사' - 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가 있었습니다. 신청 접수가 빠르게 마감되고 대기 인원이 생길 만큼 높은 관심을 받은 이번 답사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온 참여자들의 자기소개와 함께 동두천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부터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농성 634일째를 맞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농성장이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지완님의 해설과 함께 경기도 일대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던 성병진료소의 역사, 그리고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에 관한 공대위 최희신 집행위원장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존을 위해 방치된 건물 내부와 부지 청소 활동을 이어온 지역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두천시가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을 내세우며 가림막을 씌우고 접근할 수 없게 막아둔 성병관리소 정면을 멀리서나마 바라보았습니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아쉬웠지만, 초목이 우거진 성병관리소 건물을 뒤로하고 캠프 케이시 앞 보산동 관광특구의 클럽거리로 향했습니다.
보산동 일대 답사는 한미우호의 광장 주차장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미우호의 광장 옆에는 잦은 하천의 범람과 침수에 대비해 설치한 보산2 빗물펌프장이 있는데, 그 사이의 보도블록 자리가 바로 1992년 10월 28일 ‘윤금이 씨 피살 사건’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캠프 케이시 정문 앞으로 향하며 당시 일어났던 규탄운동과 동두천 미군 기지에 대한 역사문제연구소 우영님의 안내를 들은 뒤, 다시 보산동 클럽거리로 이동하여 두레방의 나길 활동가로부터 외국인 전용 클럽의 운영 현황과 이주 여성들의 상황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낮이라 조용하고 인적 드문 클럽거리였지만 리모델링으로 재개업을 준비 중인 클럽의 모습에서 오랜 기지촌 성산업의 흔적과 여전히 기지촌으로서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동두천 클럽거리의 과거와 현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특구와 양키 시장을 지나 도착한 다음 행선지는, 동두천의 지명이기도 한 하천 동두천 상류 지역 광암동에 위치한 캠프 호비 앞 턱거리마을이었습니다. 한적한 전원 풍경 사이로 운영을 중단한 몇 개의 클럽을 지나 관광버스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목의 초입에는 도로의 양옆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옛 기지촌 업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병과 기지 재배치 이전까지 가장 번화한 기지촌 중 하나였던 턱거리마을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는, 레이놀드라는 미군 병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기지촌 여성 '박순자의 묘'입니다. 화강암 비석에는 “박순자 가지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묘지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캠프 호비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과 기다림의 표상으로서의 ‘순자’의 이야기는, 미군에 의한 살해와 업주로부터의 착취로 악명 높았던 턱거리마을에 대한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과 간극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극은 기지촌의 역사를 기지촌 여성들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개입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의정부 빼뻘마을로 이동하는 길에 무연고 묘들을 이장하여 ‘상패근린공원’으로 탈바꿈 중인 상패동 산 16번지의 상패동 공동묘지 앞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곳에서 비석도 없이 묻혔다고 하는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들을 생각하며 모두 함께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빼뻘마을에서의 답사는 캠프스탠리 앞 마을 초입의 20여년 간 두레방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옛 고산성병진료소 건물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정부와 동두천 기지촌에서 30년간 활동해온 두레방 정강실 활동가의 해설을 통해서 초창기 두레방의 대표 프로그램인 빵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골목 안쪽의 옛 사무실 앞에서 하루하루의 평범한 생활 속 기지촌의 구조적 착취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차별적인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매일 전화를 걸고 발로 뛰며 언니들이 잘 계시는지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이었던 공동 식사와 기지촌의 폭력적인 환경에 방치되었던 혼혈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놀이방과 공부방 활동, 일주일간 기지촌 여성과 대학생들이 함께 생활했던 ‘기활(기지촌 활동)’ 등 두레방의 주요 프로그램에 얽힌 언니들과 동고동락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답사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두레방 김은진 원장님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기용 활동가의 발제, 기지촌과 집결지를 조성하고 관리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이윤을 얻어온 지자체들이 도시개발의 논리와 성산업에 대한 낙인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현장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집결지 폐쇄가 '탈성매매'로 이어지지 않고 여성들이 다른 업종과 지역을 순환하고 이동하게 되는 문제는 지역 단위로 분리되어 활동하는 단체들이 이러한 이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역할의 한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고 폐허로 남아 있는 공간을 정비하기 위해, 지자체가 나서서 돌보아야 한다는 김주희 교수님의 제언도 있었습니다.
빠듯한 하루 일정의 답사와 짧은 간담회에서는 해결할 수 없을 깊은 고민과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이 들어가는 언니들과의 관계 맺기에 관한 이룸 활동가의 진솔한 고민을 들으며 한 생애를 망라하는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온 두레방의 역사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실감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온종일 계속된 답사 일정에도 불구하고 밤늦도록 이어진 뒤풀이 또한 기지촌과 성매매 집결지를 향한 페미니스트 관점의 개입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연대자들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기 위한 후속 행사로 이어지고, 의정부와 동두천, 평택에서 진행해 온 두레방의 기지촌 평화 기행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어 기지촌 문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공유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