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두레방 상담실장)
소위 “이자스민 법‘이라고 하며 작년 11월 핫이슈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떤 법안인지 자세히 알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은 이자스민의원을 비난하는 말들을 퍼부었다.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 대표발의자도 아니었던 이자스민의원을 들먹이면서 외국인포비아로 둔갑하여 십자포화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외국인, 좀 더 정확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들은 어떻게 불법체류자가 되는가
두레방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성들은 E-6-2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비자는 예술흥행의 목적으로, 즉 공연을 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자격을 주는 비자이다. 하지만 실상은 여성들이 클럽 안에서 가수가 아니라 접객원으로 일을 하고 있어 이 비자가 가지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난 지 오래다. 심각한 경우 성매매를 강요받는 일이 많아 여성들이 견디다 못해 작업장을 이탈(도망)하는 수가 빈번하고 E-6-2 비자는 작업장을 이탈하면 자동으로 비자가 말소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등록(불법) 신분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 성매매를 강요받았던 클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미군의 도움이 컸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클럽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미군과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자녀도 낳게 된다. 결혼하겠다는 약속도 지키기 않고 자신의 자녀조차 책임지지 않은 채 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아이와 여성은 불법체류자의 상태로 어렵게 한국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미등록 아이들은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들을 구제할 만한 법안은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 않았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E-6-2비자에 대한 관리도 아직까지 안 하고 있는 현실이다. 적어도 두레방에서 봐온 소위 불법체류 여성들은 대부분 위와 같은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레방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미등록여성들의 자녀 이야기
여성은 그렇다 치고 불법체류자의 자녀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떨까.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아프면 당연히 병원비 걱정부터 든다. 학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에 갈 수가 없다. 받아주는 학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늘어난 여성/이주민 쉼터 또한 미등록 여성들에게는 좁은 문이기 마찬가지이다.
여성들은 미등록 신분으로 자녀를 한국에서 출산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계속적인 이런 불안한 삶은 언어적 문제로 발생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성장을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나라사람도 아버지의 나라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크게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미등록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아이들이 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고 두레방 주변에도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훌륭히 성장한 사람들이 있지만 결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라 볼 수 없는 현실인 것만은 사실이다.
제노포비아
사실 “이자스민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의원이 대표발의를 하고 이자스민 의원 등 다른 동료의원 10명이 공동발의를 한 것이다. 내용도 미등록된 아동들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자고하는 것일 뿐 그 외 더한 것도 뺀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왜 대표발의 하지도 않은 이자스민의원의 이름을 내걸며 이법에 대한 부정적인면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집단주의 성격을 버리지 못한 채 이방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인가?
E-6-2비자 문제를 중심으로 얘기했지만 사실 한국의 이주민 정책은 그 자체로 주먹구구식이라 언제든지 미등록자를 양산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보고되어왔다.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 폭력 등등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현대판 노예 제도라고 지탄 받던 산업연수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며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것도 벌써 10년 전이다. 이제 그 이주민들의 아이들이 커가고 이들의 인권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이제 한국정부는 본격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놓인 것 같다. 공장, 농장, 클럽 업주 등 즉 한국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든 비자 시스템에 대해 개정과 관리가 필요하고 또한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