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귀게 된 두 명의 친구
한국에 온 지 7개월이 흘렀다. 새로운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을 이해하는 데는 한 달 혹은 두 달의 시간이 주어진다. 클럽 주인이 너그럽다면 세 달이 주어질 수도 있다. 빨리 익혀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술을 팔아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클럽 주인이 바로 다음 날 나를 다른 클럽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 내가 지금쯤이면 일에 잘 적응했을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겠지만 7개월 동안 그리고 지금도 나는 내가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마냥 느껴진다.
내가 다른 클럽으로 옮겨질 거라 생각하자 나는 시간 개념을 상실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클럽의 다른 친구들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 1달이 꼬박 걸렸고 일을 있는 그대로 할 수 있게 되기까지 3개월, 여기 꼼짝 않고 1년 6개월을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6개월이 걸렸다. 나는 다시 이런 적응기간을 마주할 수 없었다.
마마(클럽 주인)는 여기 온 첫 달 클럽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여성에게 나를 모니터하라고 시켰다. 우리는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는데 가장 나이가 많고 한국에 온지 가장 오래된 여성이었다. 당시 그녀는 필리핀으로 돌아갈 날을 1개월 정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마마는 언니에게 내가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다른 여성들과 사이는 괜찮은지 클럽에서 일을 잘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언니는 비록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손님들에게 잘 한다고 마마에게 얘기하였다. 물론 내 주스 포인트(역자 주: 기지촌의 클럽들은 이렇게 주스 포인트제로 돌아간다. 클럽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1달에 올려야 하는 주스 포인트가 정해져 있다.)는 나의 이런 장사 수완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 언니가 나를 잘 봐줘서 다른 클럽으로 옮겨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나는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언니가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를 다른 여성이 대체했는데 그 친구는 겨우 4개월을 있었다. 그녀 역시 떠나고 마마는 나를 카운터에서 일하도록 했다. 마마는 내가 한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장부 정리하기가 쉽다는 이유를 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카운터에서 일하는 진짜 이유는 술을 많이 팔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운터에서 일하면 팁을 받기가 수월하다. 클럽에 남을 수 있도록 뒤를 봐줬던 여성이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는 언니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 2년 동안 꼼짝 못하고 보낸 시간들을 그저 잊고 싶어 했다.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현재는 주말에 많은 군인들이 밖으로 나오고 마마가 카운터에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일을 보고 있다. 내가 카운터를 보면 마마는 술을 만들거나 서빙을 한다. 그 반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밤에는 나는 그저 바에 앉아 거의 매일 밤 클럽에 들르는 군인 한명과 어울렸다. 그는 늘 혼자였고 다른 여성들과도 대화하지 않았으며 혼자 술을 마셨고 다시 부대로 복귀할 시간 10분전까지 밤새 바에 앉아있었다. 그 이외에 클럽 안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것처럼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얽히고 얽혔다는 것을 느꼈다. 어쨌거나 나는 계산대에 갇힌 상태였기 때문에 적어도 대화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기 수월했다.
별로 안 바쁜 저녁, 나는 그냥 카운터에 앉아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손님들을 나누는 단 하나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박살나고 싶은 군인들. 그는 나에게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사람이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적어도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구를 치고 싶은 사람, 춤을 추고 파티를 하고 싶은 사람, 즐기고 싶은 사람 (그리 썩 깨끗하지 못한 즐거움, 그래서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려고 하는 부류), 마지막으로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일부. 군인들이 클럽에 들어올 때마다 우리 둘은 그가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지 맞추려 했다. 이 게임에서 나는 매번 이겼다. 매일 밤 클럽을 지키면서 나는 사람들이 뭘 원하면서 여기에 오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또 군인들이 얼마나 취했는지를 1에서부터 10까지 점수로 매기기도 하였다. 이 게임에서는 그가 항상 이겼는데 그가 술을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취했을 때랑 그저 부산스러울 때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게임들은 일을 하면서 너무 지루해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는 미군 전차 대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반사회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가 많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지낸지는 1년,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 일 년 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집에 너무 가고 싶지만 공항에 마중하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벗어나기를 학수고대하지만 돌아갈 가족이 없기도 하다.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사귄 친구들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는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누구도 그에 대한 얘기를 할 사람이 없고 그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중요하다면 너는 나를 친구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그는 나에게 편지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미국에 돌아가서 읽어볼 때 최소한 자신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축하해주었던 사람(물론 그 사람이 다른 대륙에 살고 있더라도)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건 이상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지난 밤 나는 자신들이 보병보다 낫다는 전차 대원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너의 이름을 힐끗 보았고 샤피 펜으로 바에다 적어놓았다. 마지막 날 여기서 내가 너의 팔에 메시지를 적었던 그 샤피 펜으로 말이다. 이 메시지는 지워지지 않고 며칠 동안 너의 팔에 남겨질 테니까 부대로 돌아가자마자 박박 문질러서 지우고 싶을 거라고 내가 너에게 말했었지. 너는 괜찮다고 하며 지우지 않을 거라고 했어. 미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볼 것이고 누가 그랬냐고 물어볼 거라고. 만약 사람들이 물어보면 너는 묘한 소녀를 친구를 사귀었다고 그녀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꽤 강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니가 나에 대해 얘기했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에게 니 얘기를 할 거야.
지난 밤 나는 전차 대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부대에서 전차 대원들이 제일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바에 적어놓은 너의 이름을 가리키면서 나도 알고 있다고 말했어.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랑 친구거든.”
THE TWO ACCIDENTAL FRIENDS I MADE
I’ve been in South Korea for seven months now. New girls are only given a month or two to get the hang of a job, three months if the club owner is lenient. You have to learn fast, do as you’re told, and earn money off drinks as much as you can; otherwise, the club owner can have you transferred to another club the very next day. You would have thought that I’m already well-adjusted to my job by now. However, seven months in and I still feel like I’m a fish out of water.
I already lost count of the times when I thought I would be transferred to another club. That’s something I always tried to keep from happening. It took me a full month before I could even warm up to the girls, three months to learn to do the job as it is, and six months to accept the fact that I’ll be stuck here for a year and six months more. I can’t deal with another adjustment like that.
During my first month here, Mama (the club owner) had me monitored by a girl she trusted the most about bar stuff. We call her Eonni, being one of the oldest girls and also one who’s been here the longest. At that time, she only had a month more before she was to go back to the Philippines. Mama would constantly ask her how I was doing at home, how I interacted with the other girls, and how well I did my job at the club. Eonni, although not very satisfied with my work, would tell Mama that I was doing well with customers even though it didn’t reflect in the points that I earned. Until now, I have been grateful for each time she covered up for me so I wouldn’t get transferred to another club.
When Eonni went back to the Philippines, she was replaced by another girl who stayed on the post for only four months. This new girl left so soon, too, so Mama had me work behind the bar. She said the reason for that is because I can write Hangul so keeping tabs at the bar would be easier. I know better though. I know the real reason is that I don’t earn much off drinks. Putting me behind the bar would help me earn more off tips. Eonni didn’t even know that the girl she had fought for to stay at the club would be taking over her own post. We didn’t keep in touch. She said it would be better off that way. She just wanted to forget that she was stuck in South Korea for two years. It’s completely understandable.
I work behind the bar now on weekends, when a lot of soldiers come out and Mama needs help around the bar. She would be mixing and serving drinks while I run the cash register, or vice versa. On nights when business is slow, I would just sit at the bar and hang out with a soldier who comes in almost every night. He would keep to himself, not talk to any of the girls, buy himself a drink, and sit on the bar stool all night until there were only 10 minutes left before their curfew back at the barracks. Being the only other person in the room who doesn’t like talking to people, I feel like we kind of just got stuck with each other, like we only became friends by default. I’m trapped behind the bar anyway so at least talking would help pass the time.
On not so busy nights, I would just sit behind the counter and observe people coming in. At first, I only had one category for all the people coming in: soldiers who just want to get smashed. He’s the one who told me about character profiling. It didn’t take me too long to realize that there are at least four types of soldiers coming in: those who want to play pool, those who want to dance and party, there are some who want to just have fun (not-so-clean fun, though, so we try to avoid them at all costs), and few who just want to hang out and chill after a long day at work. Every time a soldier walks in, we both will try to guess which category he falls in. I always win at this game. Being at the bar every night, I know what most of the people coming in want. We would also rate how drunk soldiers are in a scale of one to ten. He would always win at this though because he drinks and he knows if people are too drunk or just buzzed. That’s one way not to get too bored at work.
He is a tanker in the US army. He said he doesn’t have too many friends because he’s anti-social. He stayed in South Korea for a year and his biggest regret is not trying harder to make friends with the people he had spent a year with. He said he cannot wait to go home but the sad thing is nobody’s going to meet him at the airport. Some people cannot wait to get out of here, but some people don’t even have a family to come home to. He’s envious of people who’ve got stories to tell about friends they made even though they’re away from home. He said nobody would do that for him. Nobody would tell a story about him, and he’s got no story to tell as well. I told him that he already won a friend in me, if that counts.
When he was about to leave South Korea the next day, he made a request for me to write him a letter that he could open and read once he’s back in the US so that he could at least feel that there’s someone who welcomed him back home even though that person’s in a different continent. It was an odd request, but I willingly did it for him. Here’s the letter I wrote him:
“I met a Tanker last night who said tankers are way better than infantrymen. I glanced at your name that I wrote on the bar with a sharpie, the same sharpie that I used to write a message on your arm on your last night here. I told you that it’s going to stay on your arm for a few days so you might want to scrub it off as soon as you get back to the barracks. You said it’s okay, you won’t even try to erase it so once you get back to the US, people would see it and ask who wrote it. You said if they do ask, you will say that you made friends with this weird girl who has pretty strong opinions about pretty much everything. Since you’re saying that about me, I will tell people about you, too.”
I met a Tanker last night. He said tankers are the greatest guys in the army. I pointed at your name that I wrote on the bar and said, “I know so. I am friends with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