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센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던 중 두레방으로 2주간 파견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두레방이 기지촌여성을 위해 설립된 단체라는 짧은 지식만 갖고 의정부에 있는 두레방으로 첫 출근을 한 날 두레방 입구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연세 지극한 여성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뜨개질하고 있던 연세 지긋한 한국여성들은 전쟁고아가 되면서 기지촌에 유입이 되었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60년~90년대까지 기지촌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이 기지촌 여성으로 내몰리면서 성매매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보건소에서 3개월마다 건강검진을 실시했고 성병에라도 걸린 여성이 나오면 수용소에 모아 놓고 치료를 했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성매매에 노출되어 있는 기지촌여성들의 실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시적으로 승인하고 관리했었다니 국가의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레방에서는 작년에 국가를 상대로 기지촌에서 일했던 한국여성들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진행 중에 있다고 했다. 어느 때 보다 대중의 관심과 문제인식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되며 소송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두레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연세 지긋한 한국여성분들만 만났는데 문득 현재 기지촌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여성은 없는지 물었더니 현재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여성은 거의 없으며 대다수 외국인여성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레방은 한국여성뿐 아니라 외국인여성에 대해서도 의료지원, 법률지원, 상담지지, 교육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대다수가 외국인여성으로 E-6비자(예술, 흥행비자)를 갖고 근로계약을 한 후 입국하지만 현실은 기지촌 클럽에서 미군을 접대하고 주스를 팔아야 되며 사업주에 의해서 성매매에도 노출이 되는 등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외국인여성들이 나중에 계약했던 근로조건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줘야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클럽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클럽을 나오고 싶어도 외국인여성들과 클럽 관리자인 마마상이 같이 살면서 감시를 하거나 사업주가 CCTV를 설치해 놓고 감시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외국인여성이 클럽에서 탈출하기가 굉장히 어려우며 외국인여성들의 외출시간까지도 관리자 또는 사업주가 통제를 하기 때문에 두레방 활동가들도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여성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레방에서는 클럽주변에서 외국인여성들을 대상으로 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웃리치가 뭘까? 나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온 말이었지만 내가 직접 두레방 활동가분들과 같이 주간 아웃리치활동에 동참하면서 아웃리치가 두레방을 홍보하고 외국인여성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주간 아웃리치활동으로 만났던 외국인여성들은 4명~5명에 불과했지만 꾸준한 아웃리치 활동을 하다보면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 알음알음 외국인여성들 사이에서 두레방의 존재가 알려지게 될 것이고 외국인여성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두레방을 찾아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니 아웃리치 활동이 상당히 중요한 활동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파견근무가 끝나갈 무렵 두레방 활동가분이 한 클럽에서 외국인여성 4명이 탈출을 해서 지인의 집에 숨어있다는 연락을 받고 외국인여성들을 만나 상담을 한 후 사업주를 상대로 법적대응을 해보는 것이 어떤지 물었는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다시 그 외국인여성들을 만나러 가는데 외국인여성들에게 동의를 구했으니 나도 같이 가자고 해서 외국인여성들을 만났다. 다시 만난 외국인여성들은 그 사이에 임시직이지만 공장에 취업을 했고 클럽에서 받았던 월급 40만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외국인여성들은 신분의 불안정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적 분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번거로움과 사업주를 다시 만나야 될 수 도 있다는 불안한 상황을 피해 법적대응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국인여성들이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사업주인데 외국인여성들이 클럽을 탈출하면 사업주가 사업장이탈로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할 수 있고 그러면 외국인여성들은 미등록외국인 신분이 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피해자인 외국인여성들이 원인제공자인 사업주의 신고여부에 따라서 체류신분의 보장을 받을 수 없는지 외국인이지만 피해자인데 국가에서 왜 보호를 해주지 않는지 모순된 현실 앞에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E-6비자를 갖고 입국한 외국인여성들이 사업주의 사업장이탈신고로 미등록외국인이 되면 이 여성들의 아이도 무국적자가 된다는 것이다. 무국적자인 아이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데 아이의 예방접종부터 교육까지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보호도 받기 어렵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가 사회적인 문제임을 인정하고 국가차원에서 테두리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두레방에서 파견근무를 2주간 짧게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두레방은 기지촌에 있는 한국여성들을 위해 29년이란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상담지지, 의료지원, 법률지원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한국여성들이 신뢰할 수 있고 친숙하게 다가와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최근 의정부에 있는 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되면서 두레방은 어떻게 하면 한국여성들과 같이 이주하여 안정적인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기지촌여성의 비중이 외국인여성으로 바뀌면서 외국인여성들에게도 상담지지, 의료지원, 법률지원뿐 아니라 출입국관리소, 고용노동부와 연계된 업무지원, 아웃리치활동 등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으며 최근 동두천에 있는 미군기지 잔류가 확정되면서 외국인여성들과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동두천에 작은 사무실 한 개를 더 개소했으며 앞으로 이 장소가 외국인여성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사랑방과 같은 장소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파견근무를 통해 두레방과 기지촌여성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파견근무를 허락해 주신 두레방 원장님과 활동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