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자 (도쿄대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박사과정)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반,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 목적지까지 지하철 타고 또 한 시간. 10월 15일 “미군 위안부의 숨겨진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심퍼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로 향한 여정이다. 2014년 6월25일, 미군 위안부 122명이 원고가 되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시작되었다. 2015년 10월30일에 제5차 변론기일이 예정되어 있어 그 날까지 한국에 머무르려 했지만 출발 직전에 연기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든든한 증거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사각지대라 불리는 곳, 기지촌. 이 곳은 1957년부터 미군에게 섹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국가사업의 일부로 구성된 곳이었고, 기지촌에 편입된 여성들은 모집부터 성병관리까지 국가성장을 위해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으로 소송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기지촌에서 일어난 모든 사실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소송 과정 자체가 이미 의미를 갖고 있다. 심포지엄은 소송의 의미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인상적인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이 드신 한 위안부 여성이 옛날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 얼굴을 안 보여주지만 젊은 시절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들고 있는 주름 가득한 손이 왠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상에 남은 한 장은 두레방 건물의 예와 지금. 앗 여기구나…
회의실 안에는 네모나게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긴 탁자가 늘어서있었다. 토론장이었다. 연구발표와 재판 경과에 관한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관심 깊게 들었던 주제는 ‘국가폭력 피해자인 미군 위안부들의 신체적 질환’이었다. 여성들의 질병에 관한 특징을 국가검진 데이터의 기초적 분석을 통해 밝히면서 ‘여성들의 건강문제를 효과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정책 또는 사회적 지원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것이었다. 많지도 않는 연구 중에서도 역사나 사회과학에서 논하는 여성의 모습은 그나마 가시화되가고 있지 않나 싶지만 국가폭력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작용된 것이냐에 대해 숫자로 드러내는 신선한 연구로 보였다. 이렇듯 기지, 국가, 폭력, 성매매… 그리고 건강상태, 노후의 고독까지, 기지촌 성매매 문제를 인간 삶의 전체적 문제로 책상 위에 올리려는 시도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연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 과정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우리를 보고 외화를 잘 벌어다 준 ‘애국자’라고 했어요!” 원고 당사자인 한 여성이 거의 외치다시피 말했다. 여성들은 그 억울함을 잇따라 힘껏 외쳤다. 당연히 보상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그 분들은 강하다. 피해자라고 동정받을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삶의 권리와 명예를 걸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아주 강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안 들린다. 열심히, 그리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데 관심 밖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사각지대에는 계속 또다른 피해자를 생산하고 있다.
이 글에 ‘발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걸음’을 내디뎠을 때, ‘발견’이라는 말을 썼다. 분명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때까지 서양사람들이 전혀 몰랐기에 ‘발견’하게 된 그 땅처럼 제발 발견이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 때처럼 짓밟지는 말라는 마음을 담아서.
얼마 전에 도쿄에 있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기지촌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 언제나 찾고 있다는 뉴스거리, 하지만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사전에 일본군 위안부를 그렇게 비난해놓고 니네 나라에서도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냐는 반응도 예상하면서 아주 조심스러웠지만 아직 그 수준도 안 되는 분위기에 많이 실망했다. 아니, 한국에서도 이슈가 안 되는데 어떻게 일본에 와서 큰 기대를 한 것이냐. 그런 자문을 되풀이하면서.
이제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기회로서의 소송이 되기를 간절이 바라면서 12월 4일에 연기된 다음 변론기일을 기다린다.
2015.11.2,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