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경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
122명의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7번째 공판이 열렸다.
3월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66호 법정은 동두천, 의정부, 평택 등에서 온 원고들과 이 소송의 역사적 증인이 되기 위해 참석한 이들로 북적거렸다. 2014년 6월에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9개월이 지났다. 지난 소송까지는 점잖은 목소리의 친절한 남성 재판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카랑카랑한 굵은 목소리의 여성 재판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재판이 시작된 후 원고측과 피고측은 각자 주장의 요지를 바뀐 재판장에게 설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어 증인신문이 시작되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2년 가량 의정부 보건소에서 의료사무관으로 근무한 의사 선생님이다. 문정주 선생은 가정의학 전문의로서 공공의료와 지역사회 의료 체계에 관심이 많아 1995년 의정부보건소 의무사무관으로 지원했다. 문 선생이 담당할 분야는 성병검사 업무. 그러나 문 선생은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사람을 건강하게 할 목적의 ‘의료’ 또는 ‘진료’와는 전혀 다른 성병검사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배경에 대해 그는, 법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의료행위로 보았을 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성병검사와 치료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행정적으로 특별하게 관리된 여성들
기지촌 여성들이 의무적으로 주 1회 보건소에 와서 성병검사를 하고 패스에 도장을 받아가는 모습을 문 선생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표현한 문 선생은 예전부터 근무했던 보건소 간호사 공무원이나 다른 직원들이 아주 무신경하고 당연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문제를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했다. 여성들의 성병 검사는 옷을 벗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10분 가량 소요되었다고 한다. 준비시간보다 검사시간이 더 짧았다. 검사를 하기 전 또는 후에 여성의 상태를 묻는 문진의 과정은 없었다. 그야말로 묻지마 검사였다고 했다.
검사를 한 간호공무원들이 무뚝뚝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한 사람이었을까? 문 선생은 간호공무원들이 기지촌 여성이 아닌 결핵 환자를 대할 때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환자의 상태를 듣고 부작용에 대한 안내와 조치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의료행위자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이 특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지촌 여성들이 특별한 대상으로 관리되었다는 것은 성병검사 주기와 보건증에서도 나타난다. 일반 유흥업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월 1회 성병검사를 하였으나, 미군부대 기지촌에서 일하는, 특수업태부라고 분류된 여성들은 주 1회 성병검사를 했다. 검사항목과 결과를 알 수 있는 건강진단결과서인 보건증도 달랐다. 일반 유흥업소 여성들의 보건증은 장티푸스, 결핵, 피부질환, 성병 등 검사항목과 결과가 있는 증명서 서식으로 되어 있으나, 패스라고 불리는 특수업태부 여성들의 보건증은 검사 날짜가 있는 도장만 찍혀있었다고 한다. 특수업태부 여성들은 진료차트나 진료기록이 없다. 다만 언제 누가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양성 또는 음성을 표시하는 문서 대장에만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번 소송을 위해 보건소가 관리했던 문서대장을 요청했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게 정부와 보건소의 답변이다.
문 선생은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검사가 무료였다는 표현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의료는 환자의 상태를 듣고 치료의 부작용을 포함한 내용을 알려주어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검사는 행정 처리처럼 강제적으로 주 1회 여성들이 검체를 제공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한다.
검사 결과 이상이 확인되면 여성들은 의무적으로 벤자신 페니실린 근육 주사를 맞아야 했다. 과거에는 낙검, 즉 성병에 걸렸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치료를 위해 일주일 정도 수용시설에 갇혀 있어야 했다. 문선생이 근무하던 시기에는 강제로 입원시키는 수용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치료인 벤자신 페니실린을 맞아야 했고 보건증인 패스에 도장을 받을 수 없었다. 일주일 후 다시 검사를 받아 이상이 없어야 패스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들은 그 도장을 받는 것 외에 보건소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보건소는 사업 예산으로 독감 예방접종이나 성병 예방 물품을 여성들에게 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가장 빈번하게 보건소를 찾는 이들인데, 그런 서비스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문선생이 들은 답은, 그들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보건소는 성병 검사와 벤자신 페니실린 주사 처치 외에 여성들의 건강에 대해 어떤 서비스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여성들은 검사와 치료의 선택권도 없었다고 한다. 성병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을 때 외부 산부인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고 치료하겠다는 여성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성병 검사 결과 양성 진단을 받았을 때 다른 병원에서 재검을 하거나 치료를 받을 환자의 권리가, 이 여성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요청은 실랑이처럼 취급되었다.
성매매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관리해온 당국
사회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그 당시 윤락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은 상식이라 할 것이다. 문 선생은 보건소 직원들로부터 여성들의 주 1회 성병검사 이유가 미군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락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가만있는지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윤락행위 업소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니고 클럽 같은 곳에서 술 먹고 그랬을 텐데, 그런 곳에서 윤락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경찰이나 사법 당국이 알 텐데 왜 단속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 선생은 경찰과 보건소 직원이 함께 실시하는 합동단속에 대해 듣게 되었다. 미군부대 인근 고산동 뺏벌의 경우 클럽 입구에 검사를 통과한 여성들의 사진이 붙어있는데,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보유한 패스에 찍힌 날짜가 유효한 지 확인하는 단속을 보건소 직원들이 경찰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이 합동 단속을 ‘토벌’이라 불렀다.
늦가을 저녁 보건소 업무가 끝나는 6시가 다 된 어둑해질 무렵 한 여성이 헐레벌떡 보건소로 들어와 책상위에 패스를 올려놓고 검사해달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보건소 문이 닫히는데 이렇게 다급하게 와서 검사를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 여성은 단속이 심해서 이게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패스에 도장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행위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등급표시와 같았다.
증인신문을 마치고 재판장은 원고측 변호인에게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국가의 위법행위가 언제까지 이루어졌다고 보는지, 위법한 상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이 사건에서 위법행위의 근거가 되는 규정들이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인들에게 제한된 것인지 구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진술서나 면접보고서가 없는 원고들의 경우 관련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건소나 정부 기관들은 여성들의 성병 검사와 치료에 대한 문서대장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근무했던 의사가 대장에 기록했다고 증언했지만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도록,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국가가 관리했던 기록들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재판부에 제출한 회의록이나 규정 등 문서들이 매우 많지만, 더 찾아봐야 한다. 보건소가 관리했던 성병검사 대장도 찾아야 하고, 1970년대~80년대 보건소에서 성병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찾아야 한다. 가해자 편에서 작성한 기록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정주 선생처럼 이 사건을 증언해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