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두레방, jungmin.duck@gmail.com)
지난 2월 <인신매매 일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쟁점 토론회: 예술흥행비자 소지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 토론회는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에서 작년 9월 일본으로 인신매매 실태조사를 다녀온 후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논의하고자 마련한 자리이다.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는 E-6-2비자(예술흥행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개선하고자 2014년 구성한 네트워크이다. 현재 두레방, 살림,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등의 현장단체들과 공감, 어필 등의 법률가 단체에서 참여하고 있다.
토론회는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의 일본 방문팀을 대표해서 소라미 변호사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소라미 변호사는 일본 내 흥행자격(한국의 예술흥행 비자와 비슷)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1980년에 총 20,580명이던 흥행자격 소지 외국인이 2000년에는 총 103,264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여성의 경우 많은 수가 광범위한 성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설명하였다. 필리핀 여성들이 입국하게 되는 루트는 현지 기획사와 일본 기획사, 일본 내 유흥업소가 다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이주여성들의 수는 2004년, 2005년까지 8만 명 수준으로 유지되다가 2006년 8,806명으로 급감해 2008년 이후 2000~3000명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미 국부무의 인신매매 연례 보고서가 크게 작용하였다. 2005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한 한국과는 다르게 인신매매 문제에 관한 별다른 법적 제재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일본은 미 국무부가 제정하는 인신매매 연례 보고서를 통해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후 일본 정부는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에서 주로 지적 받은 흥행비자 소지 이주여성의 입국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법, 출입국관리법, 풍속영업법 등을 개정하였다. 한국처럼 특별법을 신설한 것은 아니지만 형법에 인신매매죄를 만들고 입국관리법에는 인신매매에 대한 정의 규정을 넣었다. 나아가 흥행비자로 입국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외국의 교육기관에서 해당관련 과목을 2년 이상 전공”했거나 “2년 이상 외국에서 연예활동경력(공연했던 업소의 납세 증명서, 공연 당시의 사진, 공연업주의 서명 등 서류제출 필요)”을 가진 경우로만 한정하는 등 흥행비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더불어 인신매매 관련 범죄를 저질렀거나, 과거 5년간 외국인 불법취업에 관여한 자, 과거 5년간 외국인의 밀입국을 위해 문서 위조에 관여한 자, 밀항 또는 매춘방지법에 정한 범죄를 저지른 자, 폭력조직 단원의 경우에는 외국인 연예인을 초청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등 초청업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또한 13평방미터 이상의 무대, 출연인수에 따른 대기실을 구비하고 영업허가서, 등기부등본, 손익계산서, 관리 경영자 및 상근직원의 리스트, 시설도면, 시설사진 등을 제출해서 증빙하도록 하는 등 외국인이 일하게 될 사업주에 대하여도 초청업자와 마찬가지로 인적 결격사유를 적용하도록 했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 결과 초청기관 1000곳 중 800 곳이 초청 불가 판정을 받았고 영업점 대부분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수치상의 성취가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을 일본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현재 매년 4,000여명 수준으로 입국하고 있는 한국의 예술흥행비자 소지 이주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현실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이런 수치상 성취는 연구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NGO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가 만난 일본 NGO들은 일본 정부가 인신매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구체적인 대응에 나선 점에 대해서는 유의미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상의 변화는 일본 정부가 인신매매 방지와 적발에만 초점을 맞춰 치안유지 차원에서 범죄가능성이 있는 이주자의 입국을 차단하는 출입국관리 강화에 편중되어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을 했다. 나아가 흥행비자로 입국하는 필리핀 여성의 숫자가 줄기는 했으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일례로 흥행비자로 입국하는 필리핀 여성의 숫자가 감소한 대신 위장결혼으로 입국하거나 체류하는 필리핀 여성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어진 발제에서 오사카 휴라이츠 워치의 제퍼슨 씨는 일본 NGO들의 평가에 동의하며 흥행자격으로 일본에 입국한 여성들의 문제가 기능연수생, 간병인 등 다른 직업군이 갖는 문제와 알선, 운송, 고용 패턴이 비슷하다며 오히려 인권이 침해된 부분은 일본에 도착한 후의 직업, 근무 조건 및 임금에 대한 사기이기 때문에 필리핀에서부터 시작되는 착취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겪는 착취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연예인, 기능연수생, 간병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 및 도움 제공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점은 고용주 및 브로커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기소에 더 큰 관심과 지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연예인, 기능연수생, 간병인에 대한 인신매매는 소위 새로운 반인신매매 시스템 하에서도 줄어들거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남대 사회학과 신지원 교수,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연대 정미례 대표,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안서진 연구원의 패널 토론, 청중들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패널들과 청중들은 공통적으로 예술흥행비자로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인권침해가 심각하고 광범위 하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씩 의견을 달리했다. 일반화해서 얘기하기는 약간 힘들지만 조금 무리수를 둬 본다면 주로 현장 단체들이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예술흥행비자 소지 이주여성들이 이 시스템의 피해자들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자 발급을 중단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특단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면 연구자들은 여성의 이주 문제, 인신매매 문제를 단순화해서 바라보게 되면 이주자의 출입국 강화에만 편중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토론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되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두 가지의 의견이 충돌한다거나 두 가지 입장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던가 하는 이상적인 토론의 분위기는 그 날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토론회 중간 중간에 혹은 토론회가 끝나고 나중에 간략하게 참석자들 몇몇으로부터 연구자들이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니냐는 조금의 감정 섞인 소회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토론회를 지켜본 내 입장은 두 의견이 서로의 연구와 활동에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토론 내용을 들으면서 두레방에서 몇 년 전 한 이주여성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내가 진행하고 있는 한글교실 학생이었다. 치과문제였는지 다른 건강상 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녀는 두레방이 자신에게 의료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두레방의 의료지원 절차상(원칙적으로는 한국의 클럽에서 일하다 발생한 건강상 문제에만 지원이 가능하다) 그녀에게 이것저것 묻고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기획사에 이에 관해 의논을 해보았냐고 물어보았다. 이주여성들이 예술흥행 비자로 한국에 입국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그 계약서에는 ‘항상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보건 당국에서 건강 진단을 받아야 하며 그 비용은 기획사가 부담한다.’라는 조항이 보통 들어가 있다. 그녀는 기획사에 얘기를 해보았는데 그쪽에서는 두레방이라는 곳이 있으니 그쪽에서 치료 지원을 받으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 말을 하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만약 두레방이 의료지원을 하지 않았으면 기획사가 어떤 핑계를 댔을까? 만약 그랬다면 혹시 이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기획사 측에 좀 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까?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전에 두레방은 언니들이 아파도 지원을 해줄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 많았다. 이런 경험들이 성매매특별법 제정 시 전국에 이런 지원기관을 둘 수 있도록 했는데 결국 의도치 않았지만 어떤 부분에선 인신매매범(말이 좋아 기획사)들의 반인권적 행위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냐. 도움까지는 좀 심하고 그들에게 만약 있다면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결과적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두레방에서 의료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획사들은 애초부터 여성들의 웰빙과 건강에는 관심이 1도 없는 집단이기 때문에 두레방의 의료지원 시스템이 이주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만’ 갖추고 있는 것은 문제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는 토론회 몇몇 토론자들의 의견을 현장에서 활동하는 나는 나의 이런 경험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았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정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두레방은 좀 더 여유 있게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활동가들의 활동비도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되었고 긴급구조를 위한 기동성 있는 차량도 생겼으며 의료지원, 법률지원 등 넉넉하진 않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재정상황에서 활동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정부에서 보조를 받는 돈은 써야 할 항목이 정해져 내려왔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국가의 간섭을 받는 결과를 가져왔고 두레방의 활동이 과거보다는 자선활동을 하는 기관과 비슷한 색깔을 많이 띠게 되었다. 두레방의 목표인 여성들의 조직화와 임파워먼트는 물론 자선활동으로도 어느 정도 달성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지촌과 같은 이중, 삼중적 착취구조에서 이러한 자선활동만으로 자신이 가진 힘을 자각(임파워링)하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해서 자신에게 혹은 우리 공동체의 다른 누구에게 닥친 부정의에 목소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여성들을 조직하고 임파워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한국인으로 기지촌에 수십 년째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과 다르게 이주여성들의 조직화에는 여러 어려움이 존재한다. 언어(문화)는 물론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주여성들이 기지촌에 들어오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두레방의 활동을 이주여성 분야로 바로 확장하지 못한 것도 언어/문화의 문제가 가장 컸다. 지역의 많은 여성단체들이 이주여성 분야로 활동을 확장하지 못하는 큰 이유도 이것으로 알고 있다. 이주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두레방은 아예 듣보잡이거나 시간이 날 때면 들릴 수 있는 기관이지 반드시 알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시민단체나 여성단체를 들어보거나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고 있다 하여도 두레방이 믿을 수 있는 여성/시민단체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클럽에서의 일은 보통 아침까지 계속되는 고된 일이고 직업의 특성상 계속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주로 낮에는 잠을 자거나 잠깐 짬이 나더라도 미군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장을 보는 등 할 일이 많은 것이다. 심한 경우 주스쿼터를 채우지 못하면 아예 숙소 밖을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두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두레방에서는 이들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한글교실, 공예교실, 공동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영어교실이나 K-pop 교실 등을 열기도 하지만 의정부와 동두천 기지촌의 규모를 봤을 때 여성들의 참여도는 미미한 편이다.
두레방은 작년 여름부터 실질적인 여성의 조직화와 현장접근을 위해 동두천에 작은 방을 마련하여 일주일에 이틀을 할애하여 활동하고 있다(두레방 상담소 본부는 의정부 캠프 스탠리 주변에 있는데 경기북부 기지촌이 주로 동두천 캠프 케이시 주변에 있기 때문에 동두천에 센터를 열기 전까지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상담이나 아웃리치가 불가능하였다). 매주 1회 장을 보러 나오는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낮 아웃리치를 진행하고 클럽이 문을 여는 밤에 진행하는 밤 아웃리치도 월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아직 성과를 내기에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현장접근이 쉽지 않아 늘 고민이 많다.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에서도 기지촌 정세만 얘기하지 말고 여성들의 조직화, 임파워먼트에 관한 노하우들을 함께 다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른 현장 단체들은 어떤 식으로 여성들을 조직하는지,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하는지 이런 것들이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조직화할 수 있을까? 이 여성들은 노조 등의 결사체를 구성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단결해서 자신들에게 형편없는 노동환경을 제공하는 업소에 항의할 수 없을까?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착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기획사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을까? 두레방에서 이런 방향으로 여성들을 조직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등등이 현장에서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나는 법(개정, 폐지, 제정)은 우리 삶과 운동에서 꼭 필요하지만 운동의 일부분이고 일부분이어야만 하며, 대체적으로 법은 뒷북일 경우가 많고 작정하고 법을 따돌리거나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이나 집단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소라미 변호사의 발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흥행자격 비자로 일본에 입국하는 여성들이 줄어들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일부는 법의 다른 허점을 이용해서 일본에 입국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어쩌면 더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삶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끝판왕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전 지구의 브레이크를 꽉 밟지 않는 이상 어떤 법도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이주의 행렬을 막을 수 없다. 나는 두레방의 운동이 이러한 젠더화된 천민 신자유주의의 한가운데서 차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주여성들이 단결해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일어서는데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