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뉴스레터부터는 또 다른 이주여성의 글을 싣습니다. 현재 연재를 하고 있는 M(E-6 비자 소지자로 현재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 클럽에서 일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한국살이를 얘기한다면 L(바파인 등의 인권문제로 클럽을 도망쳐 현재 미등록으로 한국에 거주)은 미등록 이주여성으로 한국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와 대화를 해나가 예정입니다. 두레방의 이주여성 관련 활동은 클럽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여성들과 이렇게 이탈한 여성들을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I’ve been here about nine years. While I’m writing this, I have flashbacks about my life in Korea. In the very beginning, I was so excited. Had my airplane ticket on me, and was ready to fly to Korea soon.
한국에 산 지 벌써 9년여가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지난 9년간 한국살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에는 정말 신이 났었다. 비행기 티켓을 받고 나는 곧 한국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
I got so excited because my dream to perform as a singer was going to happen. Right before I got my visa for Korea, I did so much to prepare for my audition.
나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꿈이 곧 실현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들떠 있었다. 비자를 발급받기 전 나는 오디션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
At first I found out that Korea was hiring singers – a group band or solo performer. And yes I tried two options. I joined a band but we failed the audition. The next time around I tried again as a solo singer, and, yes, I passed the audition. I worked hard to prepare my singing for the audition. I decided to pick those songs that have high notes because I wanted to pass. Singing and performing in Korea would be a dream come true to me.
처음 한국에서 가수(밴드 혹은 솔로)를 고용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나는 두 가지 옵션 모두에 도전했었다. 밴드에 가입을 했으나 오디션에 떨어졌다. 그 다음에는 솔로로 다시 도전해서 오디션을 통과했다. 나는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 정말 열심이었다.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 일부러 고음을 내질러야 하는 곡들을 선곡했다. 한국에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내 꿈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I passed and got to Korea and met the promoter that I had never met when I was in Philippines. After I met him, we went to the place where I was assigned to work. I met my boss, who seemed nice. I met the girls who I would work with. They had smiles on their faces, and I felt their warmth as they welcomed me.
오디션에 통과하고 한국에 입국하고 나서 나는 필리핀에 있을 때는 만나지 못한 기획사 프로모터를 만났다. 그리고는 내가 일하기로 되어 있는 곳에 함께 갔다. 업주를 만났다. 그는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함께 일할 여성들도 만났다. 그들은 웃는 얼굴이었고 나는 그들에게서 환영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When I started work, I observed the girls work because I didn’t know what I had to do. They were talking to men they had never met before and asking for drinks. I thought, “What is this? What am I going to do? I never did anything like this back when I was in the Philippines.”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달리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다른 여성들이 일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들은 그 전에는 만난 적 없는 남성들에게 말을 걸었고 음료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는 “이게 뭐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필리핀에서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I got so amazed when I asked the Filipinas who had been working for one year before me. I saw them going out at night. And I asked, “Wow they can go out?” They answered, “Yes we’re going on dates with our boyfriends.” They didn’t tell me what was really going on.
한국에 온지 1년 되었다는 필리핀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와의 대화는 상당히 놀라웠다. 나는 그녀들이 밤에 놀러 나가는 것을 보았고 물었다. “와~ 밖에 나갈 수 있어요?” 그들이 대답했다. “그럼요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러 가는데요.” 그들은 진짜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As I started my second month in April 2007, I got to understand what “date with boyfriends” at night meant. It was a “bar fine.” Night after night at work, the club tried to push me to go out. The contract I had signed was a contract to perform as a singer, but while working, I didn’t perform at all. Not even once. Never.
And yet even though I was a singer, I had to do the things that the club forced onto me. What I had to tell myself was, “Oh, yes, I’m a singer.” A singer singing and performing in the hotel with different guys every weekend, especially when soldiers got paid.
2007년 4월 나는 두 달째 한국살이를 시작했고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진짜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파인(bar fine)”이었다. 클럽에서는 매일 밤마다 데이트하러 나가라고 나에게 압력을 넣었다. 내가 사인한 계약서에는 가수로서 공연을 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는 전혀 공연을 할 기회가 없었다. 단 한번도 말이다. 정말.
내가 가수라고는 하지만 클럽이 나한테 하라고 압력을 넣는 일들을 해야만 했다. 나는 내 자신에게 “그래 나는 가수야”라고 말해야 했다. 특히 군인들이 월급을 받았을 때 매주 다른 남자들과 호텔에서 노래를 하고 공연을 하는 가수 말이다.
I don’t really like what I did. But I was afraid because they would threaten me if I didn’t go. I also didn’t really know anybody else here in Korea.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데이트를 나가지 않으면 그들이 협박을 할까봐 두려웠다.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But was it worth it to me, getting that money from the “date with boyfriends”? No. I felt like I was in a prison with no freedom to express how done I was with the job, and I felt like I just had to be like a puppet for the Korean boss and bartenders.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로 돈을 버는 것이 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마치 직장에서 뭘 하고 있는지(얼마나 삶이 지긋지긋한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치 한국인 사장과 바텐더들을 위한 꼭두각시 같았다.
I had to work in that place that I called “hell” for at least six months before extending for longer, but I couldn’t stay. I endured working for about four months.
비자를 연장하기 전 6개월 동안 나는 내가 “지옥”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오직 4개월만을 버텼을 뿐이다.
I had the chance to escape from that “hell place,” so I took it. When I left, I felt like I was free. I was no longer a puppet. I ended my work in that “hell place” and ended having to go on “dates” (bar fines) with “boyfriends”. I could no longer continue.
나는 그 “지옥”에서 도망칠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를 잡았다. 도망쳤을 때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는 더 이상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나는 그 “지옥”에서 일을 그만두었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바파인)”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