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정육자
‘기지촌’이란 단어는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기호로 존재한다. ‘기지촌’에는 여성들이 있고 여성들을 만나러 미군들이 들락거리는, 그 전체적인 윤곽이 두렷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머리 속에 어떤 확실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생활이 있고 사회가 있다. 현재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기지촌’을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경기도 미군기지 인근에 위치하는 B초등학교. 거기에 설치된 다문화반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2014년 3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였다. 다문화반 아이들은 인종과 민족, 부모의 출신지역, 본인의 출생지 등 모두가 다양하고, 따라서 학생들의 사용언어, 습관, 피부색 등 당연히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드문 케이스였다. 경기도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도 몇 군데 있으나, B초등학교 외에는 특정 나라나 특정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가 있고 거기서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외국인이 많아도 다양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B초등학교의 특수 환경은 미군기지 때문이라고 담임교사가 설명한다. “영어가 되니까……” 미군기지와 미군기지에 의해 형성된 ‘기지촌’에 모여서 사는 외국인들은 영어 생활권이기 때문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다문화반 아이들의 가정 환경은 다양하다. 아이들 부모의 직업을 알면 그들의 생활과 사회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선교사가 있다고 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흑인 전용 미용실에서 일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들, 아니면 미군기지 내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사업하는 아버지도 있다. 생활환경 면에서도 한부모가정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양부모가 모두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돌봄이 없어 아이가 혼자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법적 지위가 불안정한 미등록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한 학교에 모이는 것은 B초등학교 이외에는 없고 매우 특수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B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미국 시카고주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하는 미국학교가 있다. 영어로 교육이 실시되기 때문에 언어적 부담은 거의 없으나 비싼 등록금은 부모들에게 큰 부담을 준다. 한부모의 경우 생활비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하기에 바쁘고 그로 인해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다. 이렇게 방치되거나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에도 자녀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가정도 있다. 한편 부모가 비영어권 출신인 경우 미국학교라는 선택도 없다.
등록금의 부담이 없이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한국어를 비롯한 여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는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개설된 것이다. B초등학교에서 다문화반이 개설은 2012년 가을이었다. 미등록 외국인 아이들읠 경우도 국제조약이나 한국법에서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인정되므로서 학생들의 입학은 의무교육에 한해서는 학교마다 교장 재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B초등학교와 부설 유치원에는 해마다 외국인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신학기는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필자가 찾아갈 때마다 중도 입학을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특히 필자가 처음으로 B초등학교 다문화반을 찾아간 후, 다시 방문한 불과3개월 사이에 학생 수가 거의 2배가 되어 있었다. 다소 과밀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다문화반은 B초등학교 전체 학생의 20%가 넘는 50여 명의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오가고 있다는 표현은 다문화반이 학생들을 일반 학급에 보내기 위한 과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반은 아이들의 배경언어도 다르고 학습진도와 학교문화에의 적응 속도도 다른 상황에서 개인별 지도도 필요하기 때문에 늘 인력이 부족하다. 작년까지만해도 담임교사 한 명과 계약 언어강사 세 명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나 올해들어 담임교사 한 명만이 지도하게 됐다고 한다. 지방자치제의 다문화센터나 대학생 봉사, 그리고 NGO 등과의 제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문화차이로 인한 학생들의 충돌도 교사들의 지도가 미치지 않는 빈틈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내려오는 예산은 늘 불안정하며 때때로 갑작스레 예산에 관한 통보가 내려오기도 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교육방침을 세우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2015년도 예산은 2014년의 10분의 1이 되었다고 한다.
B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반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교육이 어려운 상황이다. B초등학교를 들러싼 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특수하기 때문이다. 즉, 다문화반 아이들이 한국 전체로 보면 극소수자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담임교사가 요즘 상황을 ‘트랜드가 바꿨다’는 표현을 했다. 다문화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사회적 이슈가 바뀌었고 유행 탄 것이라고. 아이들의 교육이 이슈로 좌우되는 것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실이다.
예산과 관련해서 강사의 인건비도 복합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다음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해 소개할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