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경수 (기지촌여성인권연대 활동가)
지난 5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466호에서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의 변론 재판이 진행되었다. 지난 2014년 6월 122명의 기지촌 미군 위안부 당사자들인 원고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이래 8번째 열리는 재판이었다. 한국 정부가 직접 미군을 위한 기지촌을 형성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관리해오면서 이들 기지촌 여성들의 이익과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의 활동가로 이 재판에 방청을 갔다.
민사대법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법정보다 넓은 장소였지만 비어있는 자리는 많지 않아 보였다. 매번 드문드문 진행되는 재판이었지만, 재판을 놓치지 않고 참석하려는 이들이 많아보였다. 특히 법정 내에는 나이 든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삼삼오오 재판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는 모습이 한창이었다. 두레방이나 햇살사회복지회 같은 단체의 활동가들, 자원활동가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기자일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시끌법적하던 법정은 여느 때처럼 판사들이 법정에 들어오면서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날 공판은 원고측 변호인단이 제출한 영상물을 함께 확인하고, 해당 영상물을 촬영한 증인에 대한 신문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먼저 30분 분량의 영상을 증인과 함께 시청했다. 영상에는 과거 성병관리소 검사원과 성병진료소 간호사의 인터뷰가 촬영되어 있었다. 이 영상에 대해 증인인 사진작가 조 모씨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촬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상에는 1972년부터 파주의 성병관리소 검사원이었던 강 모씨의 인터뷰가 먼저 촬영되어 있었다. 그는 성병관리소 등의 위치를 설명하며 당시 기억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국가가 파주 내 병원 16곳에 아가씨들을 관리하라고 지정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검사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당시 4~5천명의 여성이 보건증을 갖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당시 보건증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영상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했던 간호사 이 모씨의 진술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파주 성병진료소에서 1983년부터 1990년까지 근무했다. 그녀는 당시 검사는 파주의 3곳에서 진행했고, 검사에서 성병이 검출된 낙검자의 치료는 진료소에서 별도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 1회 검사를 받지 않으면 점검을 나가 보건증에 도장이 없는 여성들을 잡아오는 식이었다며, 당시 검사 방식이 얼마나 강제적이었는지 보여주었다.
이 모씨는 83년 당시 한 곳에서 검사하는 인원이 400~500명 가량 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산부인과 의자 위에 올라가서 검사받는데도 매주 검사를 받아 익숙하다보니 정해진 시간에 검사가 가능했다는 말도 말했다.
마지막은 이 영상을 촬영한 조 모씨의 증인 심문이었다. 파주 현장사진연구소 소속의 사진가인 조씨는 파주 신도시 개발로 사라져가는 자연 마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선배의 권유로 앞선 인터뷰 등의 촬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사진가로서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영상에 담아내려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직접 만난 위안부의 상황이 어땠냐는 원고측 변호사의 질문에 대해 할머니들은 생활보호대상자로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살고 있다고 무겁게 말했다. 조씨는 인터뷰한 할머니 중에는 국가의 책임이 있는데 지금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다며 국가를 원망하는 이도 있었다고 말했다. 증인의 진술을 들으면서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9차 변론은 7월 8일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 변론에서는 원고들의 당사자 진술이 예정되어 있다. 어느덧 국가배상 소송도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10차 변론까지 원고 4명의 당사자 진술이 진행된다면, 아마도 올해 안에는 1심 재판의 결론이 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