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이른 추위가 찾아온 가을날 주말, 나는 두레방데이 행사에 가기 위해 세 번의 버스 환승을 했다. 서울 북쪽의 외곽 지역, 그것도 기지촌을 찾아 떠나는 초행길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낯선 장소에서 나는 더 낯선 사람들을 마주할 터였다. 두레방에서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여성 성매매나 성폭력 등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런 나에게 ‘기지촌 여성’이란 단어는 낯선 것일 수 없었지만, 인식적 차원에서 안다는 것 이상의 것, 즉 그녀들을 직접 만나서 그녀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직적접인 행동을 해본다거나 한 경험이 내게는 없었다. 더구나 두레방에서 만나는 기지촌 여성들은 현재는 대부분 필리핀, 러시아 등 타국에서 한국에 이주해 온 여성들이다. 그들의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배경이 또 내가 미리 느끼는 낯설음의 한 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두레방은 미군 기지 담벼락과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마주하여 자리잡고 있는 동네 한쪽에 있었다. 미국 군대가 군사훈련을 하는 기지 아래, 여느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거 같은 소박한 한옥식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가운데 미군을 주 고객으로 하는 소규모 클럽, 식당들이 자리잡은 마을 풍경이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청명하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해가 잘 비치는 너른 야외 마당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준비된 테이블과 의자들을 채워나갔다. 기지촌은 두레방이 있는 뺏뻘 외에도 동두천 등지로 지역적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들었다. 일을 하기 위해 멀리 한국에 같이 와있는 소중한 친구들이, 거리 상 서로 떨어져 있어서 혹은 일상에 바빠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했던 것일까? 언어가 달라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잘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 자리에 함께 모인 그녀들은 함께인 것 자체로 정말 신이 나고 즐거워 보였다. 점심 식사는 한국은 물론 필리핀,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고유 음식들이 이색적으로 조합된 차림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그녀들이 음식을 직접 준비해 왔다고 하는데, 그 정성스러움에는 고향집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페이스 페인팅을 받았다. 내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려준 여자아이는 어느 기지촌 여성의 딸로, 현재 한국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는 아직 서툴지만 미술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한 그 꼬마는 빠른 속도로 훌륭한 바디 페인팅을 선사해 그날 행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행사는 두레방에서 기지촌 여성들과 같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여러 가지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건 단연 노래 경연이었다. 필리핀 가요나 무언가 내가 잘 모르는 노래들을 들을꺼라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 랩댄스 곡에서 부터 한국 발라드와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친숙한 노래들이 그녀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각자의 개성있는 음색 속에서 이어졌다. 어쩌면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한국 이주에의 꿈을 키웠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이주해 와 살면서 한국이라는 장소와 문화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한국 노래는 더 특별한 무엇이 되어주었을지 모른다. 그녀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노랫말과 멜로디를 통해 나는 직접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그녀들에게서 자신의 사는 이야기, 현재와 미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 역시도 노랫말과 멜로디를 따라 하기도 하고 팔을 높이 들어 흔들며 노래로 이야기하는 그녀들에게 응답해주려 하고 있었다.
행사의 마지막 대단원은 풍물패 장단에 맞춰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흥겹게 어우러져, 하루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 받은 지지와 고마움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페이스 페인팅을 해준 소녀의 손을 잡고 원을 돌고 전통춤 동작을 따라하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보려 했다. 그 소녀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너무 반가울 것이다. 그녀가 한국의 학교와 또래들 속에서 자신의 그 재능과 예쁜 마음을 간직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또는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히 해내고자 글로벌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 오늘날 세계가 이런 모순을 해결해 줄수는 없어도, 그녀들 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큰 힘이, 기댈 어깨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 그 새삼스런 깨달음이 하루 동안 내가 얻은 전부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앎이 오늘도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문득 강렬하게 되살아나 힘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