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레방”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20년째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영임입니다.
두레방은 1986년 3월 의정부 기지촌에서 성매매하는 여성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로서 올해 30주년을 맞았습니다. 30년동안 두레방은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상담, 치유 프로그램, 자활사업, 출판,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하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에도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그 30년중 20년 동안 매일 기지촌여성들을 만나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이야기들을 여성들과 나누었고, 그녀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 사람중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한미 양국간의 견고하고도 기나긴 세월의 동맹관계가 기지촌여성들의 삶 속 깊숙이 불평등한 개인관계로 복제되고, 사회적 낙인 또한 여성들의 삶 속 깊은 곳까지 내면화되어 여성들의 삶이 고통스럽고 황폐화된 모습들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기지촌여성들과 자녀들의 삶이 피폐화되었는지, 그 책임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활동하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들도 우리처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함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 수 있게 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9차 변론에 증인으로 참여했던 박영자 씨는 122명의 원고중 유일하게 당사자 신문을 당당하게 공개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원고들이 박영자 씨처럼 증언할 기회는 없었더라도 박영자 증인이 증언하는 동안 방청석의 동료여성들은 내내 같이 공감하고 화답하면서 박영자 증인의 말에 동참했던 사실을 재판장님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이 어떻게 판결이 나든 수십 년, 거의 젊은 날들의 대부분을 기지촌에서 생활하며 겪었던 여성들의 삶이 보상받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재판에 참여한 122명의 원고들 대부분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부터 긴긴 세월동안 험악한 기지촌성매매를 겪으며 살아오셨고, 사회의 다른 장에서 살아갈 기회도 가능성도 이미 사라진 분들이십니다.
저희들이 제출한 모든 자료와 모든 증언자들이 이미 진술하였듯이, 한미 양국정부의 관료들과 업주들, 손님인 미군들은 그녀들을 이용했을 뿐 그녀들의 삶을 걱정하거나 책임지지 않았고, 사회나 가정은 낙인찍고 멀리 하고 나쁜 여자로 만들고, 제도가 짊어져야 마땅한 책임까지도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서 사회복귀를 하고싶은 의지마저 저버리도록 하였습니다.
비록 소송에 참여한 여성들은 122명이지만 60년대, 70년대를 기지촌에서 머물렀던 여성들은 20만 명 이상, 그 자녀들인 혼혈아동의 출생은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민간단체들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듯이, 1994년부터 오늘까지, 기지촌과 한국성매매사업장에는 필리핀 및 동아시아의 외국인이주여성들이 한국정부가 발급해 주는 E-6 비자(예술흥행사증)로 해마다 3-4천 명씩 입국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한국의 기지촌에서 성착취인신매매피해자로서 살아가다가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군인 남자친구, 업주와 프로모터, 또는 손님으로부터 임금착취나 체불,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이용당하고, 버려집니다. 70년대 전후 한국 기지촌의 전형이 이주여성에게로 똑같이 복제되는 현실을 두레방은 현장에서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그리하여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은폐된 성매매공간인 기지촌에서 수십년간,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던 기지촌여성들에게 양국 정부에 의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한국여성들을 어떻게 이용했고, 버려졌는지를 밝히고 판단하는, 저희 몇몇 민간단체들뿐만 아니라 한국역사에서 매우 뜻깊고 귀중한 기회입니다.
이 재판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한 데에는 10 여 년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문제가 과연 공익소송인가를 판단하고 법리해석을 해줄 수 있는 변호인단을 꾸리기가 쉽지 않았고, “기지촌”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정치적인 위험, 일반인들의 지지를 받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정서 등등,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해주는 몇 안되는 그룹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힘을 합하여 저희는 이 재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장님의 판결은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늦게나마 한국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비록 지나온 세월을 보상받을 수는 없다손치더라도 우리 후손들에게는 국가에게 필요한 것이 국방의 안전, 경제적인 안전과 함께 일순위로 자국민보호의 의무,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점을 이 재판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재로써는 이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줄 유일한 판단이 이 재판에 집중돼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간곡히 호소합니다.
끝으로 박영자 증인의 소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도 기지촌에 팔려오지 않았으면 남들처럼 결혼하고 애낳고 살았을 것 아닌가요?”
2016년 12월 30일 두레방 원장 유영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