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저는 사회학 박사이고, 한국 성매매정책과 성판매여성들의 역사에 관해 논문을 몇 편 썼습니다. 두레방의 활동에 관해서는 학부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특히 박사과정에서 문영미 선생님이 쓰신 페이 문 선생님의 일대기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레방과의 인연은 박사논문의 주제를 성매매정책으로 정한 뒤 자료를 구하러 몇 차례 방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일면식도 없는 연구자에게 귀중한 자료를 흔쾌히 대출해주신 유영임 원장님과 활동가들의 배려가 무척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논문을 무사히 마친 후 감사의 뜻으로 논문을 보내드렸더니, 원장님께서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모임에 초대해주셨습니다. 제 논문을 발표했던 2011년 6월 3일 모임에서 느낀 활동가들의 열정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당시 활동가들은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성판매여성들에 대한 정부 통제의 법적 구조를 규명한 제 논문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체류하던 기간과 겹쳐 재판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지만, 제 논문과 제가 발견한 정부 문서 몇 편이 재판의 증거자료로 제출되어 기쁩니다.
이 글은 제가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에 관해 소개해주길 요청받아 쓰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귀국 직후에 정민 씨가 부탁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쳐 이제야 쓰게 되어 송구합니다. 저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미국 의회도서관의 John W. Kluge Center에서 “The Transnational Politics of the ‘Toleration-Regulation Regime’: A Comparative-historical Sociology of Prostitution Policies in Northeast Asia after World War II”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Kluge Center는 세계적으로 매년 박사학위를 받은지 7년 이내의 젊은 연구자들 중 연구계획서에 대한 심사를 거쳐 12명에게 최대 11개월까지 Kluge Fellowship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구 조건은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박사논문을 쓰면서 성매매정책에 대한 미국 정부와 미군의 영향에 관해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지니고 있던 저는 Kluge Fellowship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12명의 Kluge Fellow 명단에 들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의회도서관에서 제 또래인 다른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11개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 연구계획서에 대한 5명의 심사평을 열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심사자들이 제가 한국 성매매정책의 특징으로 제시한 ‘묵인-관리 체제’ 개념과 제 연구가 지닌 ‘점령 연구(Occupational Studies)’로서의 비교역사사회학적 가능성을 우호적으로 평가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지면에 11개월간의 이야기를 다 전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19세기 초에 건설된 고색창연한 제퍼슨 빌딩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설렘, 1940-50년대에 출판된 낡은 책들의 향기, 처음엔 낯설고 긴장되었지만 조금씩 익숙해진 동료들과의 ‘브라운백 런치’와 술자리와 토론, 크고 작은 성취들이 준 기쁨, 고독과 자유, 출퇴근 시간에 참여 관찰한 워싱턴 사람들의 일상,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들과 녹음이 가득한 숲, 새로운 인연들과 그들이 선물해준 새로운 시각들… 이 스쳐지나가는군요. 물론 가장 큰 성과는 계획했던 연구를 상당 부분 진척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워싱턴에 머무르는 동안 의회도서관에서는 주로 20세기 전반과 2차 세계전쟁기 미군의 성매매 및 성병 통제에 관한 법률 자료들을,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소재한 미국 문서기록관리청 2관에서는 미군정기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주한미군의 문서들을 주로 수집하고 검토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묵인-관리 체제’에 대한 20세기 미군 성병 통제 정책의 영향을 더욱 명확히 밝힐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논문과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첫 번째 성과로 한국 기지촌 성매매정책의 ‘전사(前史)’로서 2차 세계전쟁기 미군의 성병통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금욕에서 예방으로: 2차 세계전쟁기 미군의 성병통제, 생명권력과 젠더」, [경제와 사회], 113호, 2017년 3월). 앞으로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미국에서 수행한 연구와는 관련이 없지만 올해 2월 [역사비평] 118호에 「잊혀진 자들의 투쟁: 한국 성판매여성들의 저항의 역사」도 발표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의 일상적인 투쟁과 지금까지 연구된 바 없었던 1977년 군산의 스티븐 알렌 바워맨 살인 사건 재판에 관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싱턴에 머무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을 두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워싱턴 일대에는 문서기록관리청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워싱턴 도심인 내셔널 몰에 있는 1관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메릴랜드에 있는 2관입니다. 전자는 건국부터 1차 세계전쟁기까지 자료들이, 후자에는 이후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주로 ‘덕후’를 방불케 하는 연구자들이 방문하는 후자와 달리, 전자는 워싱턴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1297년 마그나 카르타와 1776년 미국 독립 선언문 등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워싱턴 도착 직후인 2015년 9월초, 늦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주말에 연구자가 아닌 관광객의 설레는 마음으로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관리청에 부속된 박물관에는 “권리의 기록들”(Records of Rights)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미국의 소수자들, 곧 흑인, 여성, 이민자에 대한 미국 정부와 사회의 억압, 그리고 그것에 대항한 투쟁에 관한 미국 정부의 공문서들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뜻밖에도 20세기 초 미국 정부가 여성들에게 행한 성병통제의 역사를 마주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놀러 왔는데 공부하게 된 기쁨(? 또는 체념!)보다도 더욱 놀라웠던 것은, ‘아, 미국 사람들은 이처럼 어두운 기억을 ‘공식 역사’로서 기억하고 성찰하는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하나 스친 생각은 미국 정부가 ‘자국민’ 여성에게 행한 인권 침해는 이제 공식 역사로 편입되었지만, 미군 해외주둔지의 타국 여성들은 여전히 역사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이제야 그러한 기억을 역사로 만들고자 힘겹게 싸우고 있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의 노력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워싱턴을 떠나기 직전 연구 결과를 정리한 강연입니다. 체류 기간 동안 연구소 동료들을 비롯하여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제 연구 주제에 관해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 주제를 소개하면 대부분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학계에서 일상적인 예의와 약간의 미국식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제 연구 주제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은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11개월이 흘러 저는 2016년 7월 28일 오후, 의회도서관 강당에서 “Making Patriotic Prostitute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Policies on Prostitution for the U.S. Military”라는 주제로 1시간동안 강연을 했습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으로 긴장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관심과 열기 덕분에 강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때의 기억은 앞으로 제가 이 어려운 주제를 계속 연구하면서 힘겨울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기지촌 여성의 역사가 미국 국립문서관리청 박물관에 전시되는 날이 올까요? 또는 그것이 한국의 공식 역사의 한 장면으로 포함되고,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미래 세대들에게 널리 교육하는 일이 언젠가 가능해질까요?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더불어 제 연구가 그와 같은 새로운 역사 만들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