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두레방 활동가)
오키나와라는 지역에 처음 가본 것은 2000년이었다. 나는 사회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새내기 활동가였고 평소 관심 있던 의제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두레방, 새움터,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언니들이 권유를 해서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평화네트워크>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17년만의 재방문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17년 전의 기억을 아주 살짝 상기시켜주었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평화네트워크 (International Women’s Network Against Militarism, IWNAM)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평화네트워크>는 과한(괌), 하와이 섬, 일본 본토, 오키나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한국, 미 대륙의 여성 활동가들, 정책입안자들, 교육자들, 학생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패권으로 인한 문제들, 구체적으로는 기지촌 주변의 성적학대나 인신매매, 미국 군사 작전과 기지 확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전쟁 준비로 인한 환경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으로 유용한 프로그램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국방예산이 폭등하는 문제 등을 다룬다.
네트워크를 처음 조직한 여성들은 한국의 두레방, 주미본, 필리핀 부클로드센터(Buklod Center, 올롱가포 수빅만 해군기지 근처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상담지원센터), 웨드프로(WEDPRO), 오키나와 강간 피해자를 위한 긴급상담센터 레이코(REICO), 군대폭력에 반대하는 오키나와여성행동(Okinawa Women Act Against Military Violence), 그리고 미 본토의 연구자/활동가들이었다. 이후 국제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새로운 멤버들이 참가자로 초청되었다. 푸에르토리코 여성들은 2000년에 가입했고, 2004년엔 하와이, 그리고 2007년엔 과한/괌 여성들이 가입하게 되었다. 2009년 괌 회의에는 마샬 군도, 팔라우, 호주 여성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네트워크는 그간 광범위한 지리적 거리, 국가 간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복잡한 역사의 차이를 횡단하며 유지되었다. 네트워크 여성들 사이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고려해볼 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연대하며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20년 만에 다시 오키나와
2012년 푸에르토리코에서의 8차 회의를 끝으로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회의가 오키나와 여성들의 제안으로 5년 만에 개최되었다. 이번 9차 회의의 제목은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조하기(Challenging Militarism and Creating a Sustainable Future)>로 30여 명의 국제참가자들, 40여명의 오키나와, 일본 본토 참가자들이 어울려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하와이
하와이 참가단체인 <Women’s Voices, Women Speak(WVWS)>는 반군사주의, 평화, 비폭력과 관련한 문제들을 지역적으로, 국제적으로 알려내고자 하는 하와이 여성들의 모임이다. 우리에게야 유명한 휴양지, 신혼여행지로만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하와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땅은 미국에게 강제 점령당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반군사기지 운동도 1893년 포하쿨로아(Pohakuloa) 훈련장에 저항했던 선주민 운동에서부터 현재 이주민운동과의 연계로 이어져오고 있다. 미군기지와 군사훈련으로 하와이는 심각한 환경문제에 봉착해있고 하와이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오던 문화나 정신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2014년 조직된 WVWS는 2015년 호텔노동자들과 연대하며 관광산업과 군사주의에 의한 피해를 주제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와이 대표적인 휴양 도시인 와이키키의 환경파괴, 선주민들 문화의 상품화, 군인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휴양휴가 등의 문제를 알리고 활동해나가고 있다. WVWS는 그림, 시 등 예술적인 방법으로 이에 저항하고 있으며 교육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다.
필리핀
필리핀은 91, 92년 자국에서 가장 큰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를 폐쇄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군이 아예 떠난 것은 아니고 그 이후에는 방문군지위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 VFA)을 맺고 훈련 목적으로 필리핀을 방문해왔다. 그러던 것이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4년, 방위협력확대협정(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 EDCA)을 맺어 미군이 필리핀의 군사시설을 이용하고 병력을 장기간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미군이 재주둔한 것과 비슷한 꼴이 된 것이다. 필리핀의 여성들은 이 협정이 필리핀 사람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 생각한다. 필리핀 현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미국에 대해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알 수 없다. 국내적으로는 마약에 대한 전쟁의 일환으로 민다나오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가두고 있다. 많은 활동가그룹, 인권단체, 여성단체들이 두테르테의 독재적인 권위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괌/과한
괌의 섬과 바다는 미군에 의해 군사화 되어 있다. 2006년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를 괌으로 이전하고 괌 선주민인 차모로족의 삶의 근거지 Pagat에 실탄훈련장을 건설한다는 발표가 있은 후 괌의 반미군기지 투쟁의 중심은 줄곧 Pagat 지역이었다. 이후 부족한 환경평가를 근거로 오랜 법정 투쟁이 이어졌고 미국과 괌 정부는 대안지역을 물색하게 되어 2012년 Litekyan을 대안지역으로 떠올리게 된다. 이 지역은 특히 환경적 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인근에 서식하고 있는 돌고래 종류만 19종에 이른다고 한다. 멸종위기종도 다량 서식하고 있고 고고학적으로도 중요 지역이다. 괌 주민 90%에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이기도 하다. 실탄연습장에서는 연간 670만 발의 포탄 실탄이 사용될 예정이다. 이는 하루에 만 8천발에 해당한다. 포탄의 문제는 포탄들의 독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탄에 들어있는 독성이 땅에 들어가서 지하에 수원지까지 도달할 거라는 우려가 있다. 여기서 하는 훈련은 연간 273일 동안 예정되어 있고 39주에 해당된다. 당연히 소음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예상된다. 현재 Litekyan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괌은 우리에게는 한국 이전에 사드가 배치된 곳(2013년 배치)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중국이 사드에 대응해 “괌 킬러(Guam Killer)” 혹은 “괌 익스프레스(Guam Express)”라 불리는 미사일 역량을 개발 중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터가 군사적 목표가 된다는 것에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사드를 운용하기 위한 기동부대가 괌에 영구적으로 주둔하게 된 것, 전자기방사선이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하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2003년 미군은 비에케스섬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승리의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캠페인이지만 미군 철수 이후의 상황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미군이 철수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귀병을 비롯하여 심각한 병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군 훈련장 오염이 심각한데 해군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불발탄 제거가 시급한데 정부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불을 저지르는 방법을 선택했고 이것이 심각한 공해를 유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환경 문제, 시민의 건강, 질병 등에 대해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부의 입장과 정치는 푸에르토리코 여성의 실업, 빈곤, 육아, 교통, 성적 착취, 노동 이민 등의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
이렇게 다른 나라/지역으로 미군을 보내고 기지를 짓거나 확장하고 있는 미국 국내는 어떨까? 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이러한 군사작전과 군비지출이 미국 경제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주택 지원, 의료지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 미국 군비 지출이 6,110억 달러에 육박하며 이것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군비지출 많은 국가 7개(사우디, 영국, 중국, 러시아, 인도,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정부는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복지에 투자하기보다는 다른 나라 국민이 원치 않는 기지를 건설하고 군비 경쟁을 하는 데 쓰고 있다. 이러한 군비 지출은 전 지구적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군대는 전 세계 가장 큰 위험원이고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미국 내 기지 환경오염도 정화시키는 데 시간을 끌고 있고, 환경부 예산도 삭감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환경운동 및 보호자들, 즉 초국적 기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해 경찰을 동원해서 강력하게 진압하고 있다. 국토부가 주관하고 펀딩한 Urban Shield라는 경찰훈련 및 엑스포는 이러한 경찰의 군사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역 군사화의 또 다른 예는 트럼프 정부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이민자 탄압이다. 난민, 미국거주 이민자,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이들을 방출하거나 탄압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국경의 군사화, 장벽을 짓고 초소 강화하는 것이 이민을 더욱 어렵게 하고 수천 명이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민자들은 이 과정에서 강간당하는 게 빈번하다. 이민을 위해 마약카르텔에 거래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위험에 노출된다. 미국 전역 200개 구금시설 중에 여성과 아이들을 구금하는 시설들도 있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5년간의 변화된 상황, 이 속에서 변화, 발전해 온 우리들의 활동 전략을 바탕으로 1. 군대 폭력 및 성폭력 2. 탈군사화 및 경제 자립 3. 군사주의에 대한 도전 4. 군사기지와 환경파괴, 환경보호 5. 안보의 재정의 (관련법과 협정들) 등의 주제에 관해 보다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눴다.
이러한 패널토론과 워크숍 이외에도 오키나와전쟁 종전일 행사 참여, 헤노코 방문, 2016년 미군 군무원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발견된(그리고 추모되고 있는) 장소 방문 그리고 마지막 기자회견까지 매우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5일이 지나갔다.
두레방의 활동과 아주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필리핀 부클로드센터 언니들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의 기지촌에 이제는 더 이상 한국인들이 아니라 외국인들, 특히 필리핀 여성들이 유입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연대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뭐 하지만 꼭 국제회의 기간에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을 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네트워크의 모인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하는 활동, 관심사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군사기지가 안보를, 특히 여성과 아이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안보를 저절로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더 나아가 어떤 주민, 여성에게는 기지 근처에 사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안보라는 개념은 군사안보에만 국한되는 좁은 개념이 아니며 외교,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복잡한 개념이자 경합하는 개념이다. 제국과 식민지 국가/지역 사이의 차이, 일 국가/지역 내에서의 (인종, 젠더 등 다양한 근거에 의한) 차이 등이 씨줄, 날줄로 얽힌 네트워크는 복잡하지만 보다 명확하게 군사주의가 무엇인지 제국 내의 계급, 인종, 젠더 차별이 자국 내의 군사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