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
지난 1월 20일, 2014년 6월 25일부터 시작되어 총 11차레의 변론을 거친 ‘미군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원고 측 부분 승소로 1심 재판의 막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총 122명의 원고인 중 법적 근거가 없는 낙검자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고 확인된 57명에 대한 국가배상을 판결하였고, 기지촌 위안부들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최초로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측 주장인 국가의 개입과 조장 등에 대해서는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이긴 했지만 재판과정에서 숱하게 목격된 유관기관의 관련문서 제공 전무 현상은 법적인 진상규명이 전제되어야 함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초창기 기지촌여성인권연대가 출범할 때부터 관련 단체들은 소송과 함께 입법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였고, 법률 초안이 만들어져 회의에서 수차례 검토되었다. 기지촌 문제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사건 진상규명이 우선시하기 위한 자체적 법률안이었다. 연대 측의 입법 제안 과정에서 19대 국회 김광진 의원이 관심과 지지를 표명하여 연대가 마련한 법률안을 중심으로 입법 세미나와 국회 공청회 등을 거친 후 김광진 의원실 대표발의로 ‘주한미군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2014. 7. 7)되었다. 그러나 소속 상임위인 국방위에서 심의되지 못하고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되었다. 이 시기에 경기도에서 진행된 조례제정도 별다른 결실없이 끝나고 말았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우선 소속 상임위의 적절성 여부로, 여성문제를 국방위가 다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대부분 남성 의원들로 구성된 국방위의 특성상 한미동맹, 국가의 책임 등이 얽힌 기지촌여성문제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입법 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경기도의 경우 기지촌 밀집 지역이라는 특성 상 조례제정을 통해 지자체 차원에서 문제제기와 입법 압박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 우선이라는 중앙중심주의적인 발상과 재원 부족을 이유로 조례제정도 끝내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20대 국회에서 다시 입법 움직임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1심 판결 종결 이후 유승희 의원실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여연을 중심으로 법안 초안 검토 회의가 진행되었고, 7월 14일에 유승희 의원실 주도로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이종걸, 원혜영, 김현권, 소병훈, 윤후덕, 권미혁, 김종민, 송기헌, 김상희, 강창일, 정성호, 김두관, 신창현, 정춘숙, 이용득, 진선미, 김종대 의원 등 총 18명의 의원이 발의에 동참하였다.
주요 내용은 1) 주한미군기지촌에서 성매매 피해 및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의 인권피해 진상을 규명하고, 미군 위안부 및 그 유족에 대한 지원을 함으로써 명예회복·생활안정 및 복지향상 등을 도모한다(안 1조) 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미군 위안부 및 그 유족의 명예회복· 생활안정 및 복지향상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안 3조) 3) 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및 그 유족의 심사 결정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미군위안부문제진상규명및위안부지원위원회를 둔다(안 6조) 4) 위원회는 구성 후 4년 이내에 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자료의 수집 및 분석을 완료하여야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 또는 단체에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며, 정부는 관련 자료를 다른 국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경우에는 해당 국가의 정부와 성실히 교섭하여야 한다(안 14조). 5) 정부는 미군 위안부 중에서 계속 치료 등을 요하는 자에 대하여는 실질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지급하도록 하고, 미군 위안부 및 그 유족에 대하여 그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다(안 18조 및 19조)
현재 발의된 법률안은 여성가족위 상임위에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7월 24일에는 국회예산정책처 법안비용추계3과의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예산 추계를 하기도 하였는데, 두레방과 햇살 등 현장 단체들은 기존 미군 위안부 관련 논문과 자료를 토대로 조사 및 지원 대상으로 미군 위안부의 숫자를 최대 4000명으로 제시하였다.
이 법안 발의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항소심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며, 궁극적으로 국회 여가위와 법사위 두 상임위를 무사히 통과하여 국가의 책임 규명과 함께 기지촌 여성들에게 명실상부한 명예회복과 실제적인 생활안정책의 근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