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지모토 도시코
저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 연구자입니다. 원래 E-6-2비자로 한국에 이주한 필리핀여성 엔터에이너에 관한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제가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시절부터 필리핀이주여성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계기는 이 분야의 많은 연구가 필리핀여성들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띄고 있지만 언론에서 들려오는 심각한 인신매매 사건들의 이야기는 그것과 너무 이질적이라서 그 현실에 대해서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저 스스로도 역시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노동하러 이주했기 때문에 그녀들을 “불쌍한 피해자”로만 보지 말고 “주체”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까 구조적 문제에 많이 눈을 돌리게 되었고 압도적인 구조 하에 고통받는 그녀들에 대해 “주체성”을 말하는게 생뚱맞은 일은 아닌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2016년 8월달부터 일본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지원을 받고 한국과 필리핀에서 현장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간 한국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등에서 일하다가 성착취 피해사실을 밝힌 필리핀여성들, 두레방상담소 및 쉼터 활동가, 수사와 소송에 관여한 검사, 변호사, 공연 추천심사를 담당해 온 영상물등급위원회 관계자, 그리고 필리핀대사관 해외노동자 복지관이나 노무관과 인터뷰를 수행해왔습니다.
올해 2월말과 3월 초 사이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정부관계자와 송출업체, 그리고 NGO활동가에 대한 인터뷰도 실시했습니다. 필리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필리핀정부관계자의 대부분이 한국의 E-6-2비자와 관련 인신매매 케이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E-6비자가 1996년부터 발행되어왔고 이제 20년 넘게 문제가 제기 되어왔는데 해외노동자 송출을 담당하는 부서인 필리핀해외고용청(Philippine Overseas Employment Administration)이나 인신매매사건을 수사하는 국가수사국(National Bureau of Investigation) 관계자 중에는 처음에 들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물론 최근 한국과 필리핀당국이 E-6-2비자로 송출된 엔터테이너와 한국에 입국한 엔터테이너의 숫자가 크게 다르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필리핀해외고용청 수사담당자는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만.
한편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떤 정부기관 관계자는 한국에서 하게 되는 일이 가수일 이외에 성접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일본에 엔터테이너를 송출해 온 프로모터에게도 들었습니다. 특히 지방도시에도 인터텟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필리핀에서 소문이야기는 금방 퍼진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한국에서 필리핀여성들이 겪었던 안 좋은 일들이 금방 퍼져 문제점들이 현지에서도 공유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말로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은 몇 명의 NGO관계자 빼고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E-6-2비자를 가지고 한국에 이주해 온 여성들이 겪은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필리핀여성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 피해사실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성에 관한 피해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이분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주기 때무에, 저는 피해자 여성들이 이야기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이야기를 들었고 제가 들었던 이야기는 전체이야기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피해 여성분들이 거의 다 필리핀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한국에서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화나 스카이프로 가족과 연락하고 있지만, 걱정을 주지 않기 위해 아무 일이 없었던 것 처럼 웃고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필리핀에 있을 때 여성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필리핀의 공무원이나 현지 프로모터가 전화도 인터넷도 있는 시대에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냐는 질문에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무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고, 단편적으로는 이야기를 할지라도 잊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이야기는 여성들이 귀국한 후에도 고향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공유하지 않은채 비밀로 남는 것은 아닐까라고. 성착취의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된 현대에도 국경을 넘어 언어화되기가 힘든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어떤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E-6-2비자로 한국에 입국해온 것은 아닐까요?
침묵을 지켜 온 여성들을 탓하는 대신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어 왔는지 저는 그 구조에 대해서 제대로 밝히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가 쉽게 써 온 “주체”라는 말도 이들이 피해사실을 호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되기는 커녕 오히려 이분들을 “범죄자”로 모국에 돌려보내는 구실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저 스스로도 반성하게 됩니다.
엔터테이너로 한국에 이주해 온 수많은 필리핀여성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및 사회적 안전성과 그것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이번 9월의 한국행에서 생각했습니다. 연구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고, 연구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