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님 (두레방 원장)
122명의 기지촌 미군위안부 여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하여 집단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기지촌을 조성하고 취약한 여성들을 외화벌이로 내몰았던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기지촌 미군위안부여성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두레방의 여성들도 물론 소송인단에 참여하였습니다. 몇 년에 걸쳐서 기지촌여성인권연대를 결성하고(2012년 8월), 국회입법화를 위한 준비과정과 함께 다른 많은 준비과정들을 거쳐서 2014년 6월 25일, 드디어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하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19일 법원 앞에서 이 소송의 취지를 알리고 재판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이어서 오후 2시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560호 첫 재판(재판번호 2014가합544994 민사합의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재판의 취지는 기자회견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약하면 “원고 122명은 1957년부터 대한민국 내 각 지역에 소재한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이다. 피고 대한민국은 그 소속공무원들이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여 성매매를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국가배상의 책임이 있다. 원고들은 수십 년간 미군위안부로 살아오면서 사회적 낙인으로 수많은 냉대와 차별을 받아왔으며, 지금은 기지이전사업 등으로 인한 기지촌 주거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고립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미군상대의 성매매를 위한 특정지역을 설치, 관리하였으며, 여성들을 위안부로 등록하고 애국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신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깨끗한 몸’을 제공하기 위해 강제 성병검진과 낙검자수용소의 설치, 강제치료 및 감금행위 등 인권침해를 묵인하고 가담한 책임이 있다.”
원고들은 이 같은 피해경험을 성폭력, 구타, 감금, 성매매강요, 화대착취, 인신매매, 마약투여, 강제낙태, 자매회 등록 및 회비납부, 성병검진, 강제치료, 공무원에 의한 연행, 낙검자수용소 감금 및 강제치료, 수사기관 구금, 정부의 교육, 업주와 공무원 유착비리에 의한 피해, 미군범죄피해, 미군에 의한 강제연행 등 18개의 세부항목으로 유형화하였습니다.
원고들은 이 소송을 통해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고, 국가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며,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익을 위한 소송인가, 법리 적용의 과제, 성매매와 성매매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독한 낙인, 모든 증거자료를 국가가 가지고 있는 열악한 상황에서 국가의 책임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등. 증거자료의 수집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들과 기지촌성매매가 가장 활발했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2014년 지금 시점에서 소송을 시작했을 때의 공소시효의 문제, 아직도 살아 있는 여성들의 드러내기의 어려움, 국가안보 최우선정책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여전히 살얼음 밟듯 유지하고 있는 돈독한 한미관계에 흠집 내는 소송이 아니냐 하는 셀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이 중첩된 사안이었습니다. 사실상 재판 전의 과정이 훨씬 마음고생을 했던 시기였으나 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2015년 1월 30일 오후 2시 두 번째 재판을 진행하였고, 2월 말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여성판사가 한 명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매매 증언에 관한 한 여성판사가 훨씬 여성인권의식이 나을 것 같다는 안심이 마음 한구석 닿았습니다.
4월 10일 오후 2시 세 번째 재판이 진행되고 이후에 진행되는 재판마다 우리 측 증인들의 증언들이 이어졌습니다. 김연자 선생의 증언과 이나영 교수의 증언, 그리고 한미합동위원회의 회의록들(1972-1973년도), 보건소 의사였던 문정주 선생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매 재판의 순간마다 두레방은 최선을 다하여 재판에 참여하였고, 원고들인 여성들을 재판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습니다. 최후 진술은 두레방의 원고 중 한 명인 박영자 언니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동안 두레방과 오랜 시간을 준비했던 만큼 당당하고 사실적으로 법정진술을 하는 과정을 많은 원고들이 동감하면서 눈물로 화답하며 들었고 재판장도 울컥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2년 6개월 여 거쳐서 드디어 2017년 1월 20일 일심 판결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판결문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던 공소시효의 문제를 제거해주고, 성병진료과정에서 겪었던 강제수용의 문제, 즉 낙검자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던 문제에 대해서 우리 편을 들어준 것이었습니다. 마치 하늘을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비록 일부 승소판결이지만 기지촌형성과정에서 국가의 성병진료에 대한 책임이 인정되고, 그 과정에서의 겪었던 여성들의 비인권적 처우가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2017년 우리는 항소를 했습니다. 항소심은 6월 15일 시작되었습니다.
7월 20일 항소심 재판 두 번째, 8월 31일 세 번째 재판이 박정미 교수의 증언으로 이어졌습니다. 학자로서의 전문성을 기반 한 증언으로 한국 정부의 성매매정책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이용됐는지에 대한 자료적 프레젠테이션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2월 21일 오후 4시 원고단의 최후진술이 두레방의 박영자 언니에 의해서 진행됐습니다. 피해자로써 직접 겪었던 일들을 말하는 최후 진술이 법정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였고, 재판부도 매우 감동을 받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7개월이라는 긴 소송의 마지막 2018년 2월 8일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항소심 선고 결과와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1) 국가가 기지촌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미군위안부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행위를 하였고, 위법한 강제격리수용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2) 117명의 원고들은 이번 판결로 기지촌에서 국가의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받았고, 자신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
3) 정부는 국가의 위법행위를 확인받았으니 치유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률과 조례의 제정이 필요하다.
4) 기지촌에서 벌어진 성매매조장과 정당화, 인권침해 행위는 한국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미국정부는 이에 답해야 한다.
이제 기지촌문제에 대한 긴 소송은 일단락되는 듯합니다. 정부쪽에서 상고할지에 대한 여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은 좀 더 많은 지지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침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기지촌 미군위안부여성들에게 위로와 화해의 손길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판결이어서 매우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 2013년 김광진 의원을 거쳐서 2017년 유승희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과 경기도에 몇 년째 시도하고 있는 조례 제정을 위한 노력들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 먼 길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