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상 (프란치스칸 평화학교 참가자)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 속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평화학교 일원으로 동두천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로 향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지촌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의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동두천에 도착하니 문동환 목사의 부인 문혜림 여사가 1986년 의정부에 설립한 기지촌 여성 지원단체인 두레방에서 온 조이스활동가와 다른 세 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소요산 성병관리소였다. 흉물스런 건물, 한 눈에 봐도 恨이 서린 곳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창문이 쇠창살로 돼 있어 ‘몽키하우스’로 불리기도 했던 성병관리소는 1972년 성병 감염 기지촌 여성들의 치료 관리를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여성을 위한 곳이 아니라 미군을 위한 곳이고, 감염대상자를 특정할 수도 있으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지목당하면 강제로 끌려와서 아무런 검사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죄인처럼 일정기간 강제 수용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설명을 다 듣고 조심스럽게 실내로 들어갔다. 방마다 쓰레기 더미와 예술인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추모를 위한 ‘무명인’이라는 위패와 정성스럽게 만든 하얀 연꽃을 바라본 순간 그녀들의 고통과 통곡이 연민으로 다가왔다. 외화벌이용으로 희생된 기지촌 여성들과 구로공단의 여공들,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던 어린 누이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성장의 그늘 아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 없는 여성의 희생을 강요했던 독재정권 시절에는 늘 그랬었다. 특히 미군들을 위해서는 모두가 동원되었고. 미군을 지켜 주기 위한 법과 행정절차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좌절과 아픔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러던 중 1992년 미군에 의한 성범죄 가운데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록된 ‘윤금이 사건’을 계기로 기지촌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제서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던 기지촌 여성들이 일부 승소 판결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지금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국가는 그녀들의 희생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B지역 클럽거리. 쇠락한 느낌의 작은 규모로 건물 곳곳에 다소 강한 느낌의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버젓이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업소의 팻말을 보면서, 뭔가를 빼앗긴 느낌이 들었고, 아픔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외국인 이주여성의 삶의 이야기을 자세히 들었다. 세계 극강이라는 미군의 지위로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로 연결되는 수탈 구조는 언제나 끝낼 수 있을까하는 무력감이 더위와 더해져 나를 힘들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상패동 무연고 묘지. 나무와 풀이 너무 무성해서 묘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조그만 나무막대기 하나 꽂아 놓은 곳에서 소외와 차별의 극치를 보았다. 살아서 차별이요. 죽어서도 차별이구나. 이 슬프고 가슴 아픈 영혼들을 달래는 길은 배제와 차별이 없는 세상,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뿐이다.
이러기 위해서 국회에 계류 중인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지하는 일이다. “진실은 파헤쳐져야 한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포주가 되어 자행한 폭력과 그 출구 없는 폭력의 울타리 안에서 슬프고 비참하게 버려진 또 다른 위안부들을 질곡의 역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들은 기지촌을 기웃거린 여성이 아니라 권력에 희생된 위안부”였던 것이다.
끝으로 나는 미군에 의해 살해되거나 포주에게 인권 유린을 당해 평생을 가난과 폭력에 허덕이면서 살다 떠나간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죽음을 전언해주고 있는 존경스러운 여성평화 활동가들을 기억하고 싶다. 혹독한 무더위의 뜨거운 햇살 속에 차츰 여물어 가는 곡식들처럼 그녀들의 수고가 결실이 맺어지길 간절히 소원하면서, 연대의 정신으로 작은 정성이라도 모은다면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그녀들에게는 단비와 같을 것이다.
간디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이라고 했다. 여성인권으로 가는 길은 없다. 사각지대 없는 여성인권이 지켜지는 그것만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