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두레방 쉼터 소장)
여성인권진흥원에서 성매매역사 아카이빙을 주제로 2018 성매매 추방주간 기념행사 진행 계획을 알려왔다. 그중 기지촌 공간을 주제로 한 김중미 작가의 책 <나의 동두천>을 매개로 기지촌에 대한 토크 콘서트 진행 제안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아픈 역사인 기지촌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선뜻 수락했다.
처음 행사 진행 소식을 들었을 때 고마움과 걱정이 교차했다. 두레방이 보유한 기지촌 자료의 아카이빙은 숙원사업처럼 늘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 매몰되어 있는 활동가들은 그 많은 자료들을 찾고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매년 아카이빙 사업은 늘 뒷전이 되고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없던 현실에 안타까웠다. 인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사업을 여성인권진흥원에서 한다고 하니 당연 고마울 수밖에….
걱정도 앞섰다. 기지촌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것에 대한 한계성, 다시 말해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더구나 말주변이 없는 내가 진행자로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걱정도 컸다. 이렇듯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의 동두천> 첫 장을 펼쳤다.
<나의 동두천>은 ‘정원’이라는 주요 인물이 과거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으로, 어린 소녀 정원이 바라 본 기지촌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기지촌 주변인들이다. 입양, 혼혈, 포주 집 딸,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부모님,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 딸 등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인물은 ‘한재민’이라는 혼혈인이다. 소설 속에 표현된 그 모습은 내가 처음 두레방에 왔을 때 만났던 혼혈 아저씨와 많이 닮아있었다. 언뜻 거친 겉모습, 알고보면 한없이 정 많은 속내가 똑 닮은 듯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내가 두레방에서 활동한 지 4~5년쯤 되었을 때 고독사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저씨의 모습을 소설 속 한재민이 겪었던 삶에서 다시 떠올렸다.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고단했을까… 차별받는 삶은 또 얼마나 고달팠을까 싶은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편, <나의 동두천>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미자 언니’ 정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중이 높지 않고 그마저도 해자라는 인물의 주변인으로 살짝 나오는 정도다. 의도한 것일까 궁금해 김중미 작가에게 물었다. “이 소설은 중학생 남짓한 소녀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구성으로서, 그 소녀가 바라본 기지촌의 모습과 만났던 인물들이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제한성이 있었을 것. 특히 어떤 방식으로든 ‘기지촌 여성을 소녀의 눈으로 그리는’ 작업이 조심스러웠고, 동시에 어려운 작업이기도 했다”라고 답해주었다. 작가의 말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두레방 활동가로서 ‘우리 언니들의 이야기가 좀 더 비중 있게 부각되었다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두레방에서 활동하면서 기지촌 여성들의 상황과 역사적 자료에 대해서만 아카이빙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번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삶의 현장으로 살아낸 주변인들, 무엇보다 기지촌 여성들 자체가 산 증거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다시금 귀 기울여 함을 깨달았다.
긴장한 탓에 말이 꼬이기도 하고, 자신감도 부족했던 터라 2% 부족한 토크 콘서트가 될 뻔 했던 이번 행사는, 다행히 김중미 작가라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중미 작가를 통해 그리고 <나의 동두천>을 통해 나 또한 기지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 언니들과 함께 한 ‘주변인’이자 ‘이방인’이었음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