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더운 여름이 되면 ‘언니’들과 여벌옷을 싸들고 ‘검은돌’(의정부 산곡동. 수락산 자락으로 깊숙이 들어가 편안하게 자리 잡은 곳)과 ‘뺏벌’(주변의 배나무밭에서 유래. 한 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는 곳이란 뜻으로도 불림) 두 마을 사잇길로 수락산을 올랐다. 땀이 뻘뻘 흥건히 젖을 무렵, 비로소 폭포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폭포수는 마을 주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커다란 돌들로 계곡을 막아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어놓은 곳이다. 한바탕 물놀이를 즐기고 나면 바위에 누워 젖은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내려오곤 했다.
올 가을, 아주 오랜만에 연임(가명) 언니를 졸라서 폭포수에 가보았다. 폭포수 가는 길, 그 옆에는 여전히 미군부대 담벼락이 이어져있다. 지금은 군부대 담벼락을 조금 안쪽으로 들여놓아서 가는 길이 다소 넓어져 있었다. 과거에 막아두었던 돌들은 치워져 있었고 맑은 계곡물이 가을 단풍을 가로지르며 말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언니들에게 이곳은, 지친 일상을 잊고 잠시 기분을 식히러 오는 곳이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와서 즐기는 데이트장소이기도 했다. 폭포수 한편엔 마을사람들과 언니들만 아는 작은 약수터도 하나 있는데, 물이 귀하던 뺏벌에서 사람들은 약수터에 올라와 물을 길어 가곤 했다.
폭포수에는 아픈 사연도 담겨있다. 과거, 미군과 함께 살던 한 언니가 미군에게 살해를 당해 이 폭포수 옆에 숨겨졌다고 한다. 교묘하게 큰 바위로 덮어놓아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는데, 미군(살인범)이 친구에게 슬쩍 이야기를 했고 결정적으로 그 친구가 신고를 하여 찾아낼 수 있었다. 이때, 다른 언니들과 마을 사람들은 미군들이 시신을 가져가서 사건을 은폐해 버릴까봐 매일 밤낮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뺏벌 언니들은 폭포수 이야기를 하면 그때 그 일을 같이 떠올린다.
폭포수에서 내려와 마을에 들어서면 미군부대 담벼락과 이어진 커다란 하수구가 있다. 옛날에 담벼락 안쪽에는 미군들의 수영장이 있었는데, 그 물이 하수구로 마을을 따라 흘러 내려와 고인 지점에서 언니들은 빨래를 했다고 한다. 이젠 시멘트로 덮여져 버렸지만, 당시의 기억과 여전히 이 좁은 골목길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진 자국(역사)들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폭포수 가는 길, 곳곳마다 언니들에게 새겨진 자국과 사연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부디 남은 시간은 행복한 추억들로 함께 채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