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에서는 2018년 작년 한 해, 경기도 성평등기금으로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신체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 가운데 함께 해주신 트라우마치유활동가 신정식 선생님께서 소감을 전해주셨습니다.
*글: 트라우마치유활동가 신정식
201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소위 ‘치유프로그램’ 강사로 두레방을 찾게 되었습니다. 몸을 통한 프로그램, 그 첫 시간에 만난 언니들은 늙어가고 아파지는 노인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노화인지 고단히 살아 온 아픔 때문인지 몸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공황이 찾아오는 분, 얼굴로 불쑥 불쑥 열감이 오르시는 분, 골반과 허리의 만성적인 통증을 달고 사는 분 등등…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난 통증 오면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자지만 통증과 이젠 친구처럼 지내요.”
“이번에 내 그림이 책으로 나와. 그냥 그리는 건데… (그림을 보여주며)괜찮아? 눈이 굉장히 무섭지! 이게 나를 닮았어…이게 나인 거야.”
‘자신의 고통을 친구로, 도깨비 같이 무서운 눈을 가진 그림으로 객관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들이 쌓여 왔을까?’ 상상하니 크고 캄캄한 어둠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심리치유의 중요한 원리를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거리두기’를 꼽겠습니다. 괴로움과 동일시되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 공간이 생길 때 치유는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언니들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강사로서의 의도와 부담을 ‘툭~’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아픔은 여전하지만 자신의 상처에 대응하고 살아 낸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장인이시리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저는 점점 강사의 본분을 잃고(?!) 어느새 오래된 동네로 마실가듯이 언니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도라지 배숙과 레몬청도 만들고 언니들이 해 주신 부침개도 맛나게 먹었습니다. 수다 중 들리는 너무나 솔직한 피드백, 구성진 ‘욕 자락’은 친근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와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덤덤하지만 너무 아픈 기억을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참혹한 미군 범죄로 살해된 여성, 자살로 죽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큰 국가권력 앞에 맞설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 서로에게 자매로, 마지막 의례에선 상주로 함께 했습니다.
가을로 들어서자 언니들의 채집 시즌이 되었습니다. 한나절 산자락을 누비며 밤과 도토리을 주웠고 남은 한나절은 수확물을 한데 모아 손이 닳도록 까는데 시간을 쏟아붓습니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 쾌청한 하늘 햇살 좋은 가을 오후, 언니들과 빼뻘마을 산책에 나섰는데, 언니 한 분이 숲해설가처럼 동네의 동물(사람)과 식물들의 생태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도토리 열매의 세 가지 종류, 구기자, 오가피, 먹는 선인장… 둘러보고, 알고 보니 약이 되고 몸에 좋을 것들이 길에 널렸습니다. 아마도 언니들은 이 오래된 동네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일같이 걸으실 겁니다. 어김없이 두레방에 들러 활동가들, 친구들, 고양이를 만나실 겁니다.
미군기지 옆 마을, 이제는 텅 빈 곳, 언니들의 오래된 동네가 조만간 재개발된다고 합니다. 이주하게 되면 방세도 방세겠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단절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두레방 활동가들과의 연결, 동료들과의 연결, 수락산과 길 자락에 널린 좋은 것들과의 연결… 일상의 당연하고 소소한 연결이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내게 한 너무나 큰 힘이었으리라 느꼈기에 더더욱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