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만약에 언니가 지금 살고 있는 빼뻘마을을 떠나야 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으세요?
언니: 나는 반(半)시골이 좋아. 교통이 너무 나쁘지 않은 시골. 아파트는 싫어. 독바위마을 같은 데서 살면 좋지.
활동가: 여기 바로 옆동네? 그런데, 왜 ‘독바위마을’이라고 해요?
언니: 저기 가면 커~다란 독바위가 있어.
활동가: 독바위?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빼뻘마을 바로 옆 독바위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활동가: (독바위마을 초입에 위치한 한 집을 가리키며)저런 집 어때요?
언니: 좋지. 내 땅만 있으면 저렇게 집 짓고 살면 좋지.
활동가: 여긴 뭐지? 언덕 위 소나무가 참 분위기 있네요.
언니: 여기가 가족묘잖아~ 여기도 문중 땅이야. 이 근처에 신숙주 후손들이 살았잖아. 아마 여기가 신씨문중 땅일 거야.
언니: 저게 독바위잖아. 누가 저 위에 조각을 하면 참 멋질 텐데. 너무 커서 못 할 거야.
활동가: 어? 이쪽에 또 있네요? 근데 왜 ‘독바위’라고 이름 붙였어요?
언니: 항아리 모양처럼 생겨서!
활동가: 아하~. (얼마간 한참 걸은 후) 언니, 이제 우리 돌아갑시다.
언니: 저수지 쪽으로 돌아서 가자. 거기로 가면 샛길이 있어.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언니가 기억하고 있던 독바위마을 내 저수지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라는 사실을….그린벨트 해제 후 도시계발지역이 되면서 땅이 메워지고 그 주변은 끝도 없는 공사장 펜스[fence]가 설치된 것이다.)
활동가: 언니,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저수지가 진짜 있긴 해요?
언니: 나도 몰라. 여기가 왜 이렇게 됐지? 아이고 멀다. 얼마나 가야 되는 거야?
활동가: 으악! 똥 밟았어요!!
언니: 괜찮아. 똥 밟으면 재수가 좋다고 하잖아(웃음).”
활동가: 으~~~~ 똥, 떨어져라!!
언니: 이 초등학교(*고산초등학교: 1946년 개교)도 다른 곳으로 옮겨질 거래. 여기가 진짜 오래됐잖아. 6.25 끝나자마자 지어진 거야. 진짜 오래됐는데… 아깝잖아.
활동가: 그러게. 학교 자체가 역사의 보고인 것을….근데, 언니! 우리 언제까지 걸어야 해?
언니: 멀리도 돌아왔네. 나도 여기가 이렇게 바뀌고 처음 오나봐. 샛길이 없어진 줄도 몰랐네. 우리 그냥 논두렁길로 가자. 저리가면 미나리꽝이 있어.
활동가: 언니! 저기 산에 올라가보고 싶어요.
언니: 못 간다! *서리 맞은 우거지가 어떻게 가냐?
*서리 맞은 우거지 : 2019년 9월부터 두레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활동가에게 언니가 붙여준 별명입니다. 마르고 힘없어 보여 그렇게 부른다는데, 생소한 말이라 사전을 찾아보니 [서리 맞다: 권력이나 난폭한 힘 따위에 의하여 큰 타격이나 피해를 입다]고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 직접 관리(2013.11.06. 한겨레)
1973년 의정부시 조례 개정안에 따르면, 1조 목적 및 3조 기능에 ‘유엔군 주둔지역의 위안부 중 성별보균자를 검진, 색출하여 수용치료와 보건 및 교양교육을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강제수용 치료까지 시행했다는 사실, 극심한 인권침해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성병이 완치될 때까지 일반 의료행위보다 과도한 수준의 페니실린 주사를 투여 받았고, 이 과정에서 페니실린 쇼크로 사망하는 여성도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두레방 상담소 및 사무국으로 활용되고 있는 장소는, 과거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들에게 페니실린 주사를 투여하던 보건소 건물이었습니다. 권력이나 난폭한 힘 따위에 큰 타격과 피해를 입은 ‘서리 맞은’ 사람들…두레방 빼뻘마을 내 거주하는 여성들이 현재 지역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중 한 분에게 “만약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으냐?” 물으니, 빼뻘마을에서 멀지도 않은 ‘바로 옆’ 독바위마을이라 말합니다. 지금 있는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로 옮길 대책도, 엄두도, 생각도 없는 형편에서 막연히 ‘바로 옆’을 그리는 것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