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도 무사히 보내고 새 봄을 맞이했습니다. 봄이 왔는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두레방 ‘언니들’입니다. 언니들은 봄이 오기가 무섭게 활동반경이 크게 늡니다. 산과 들, 비닐하우스까지 온데 다니며 냉이, 민들레, 상추 등 봄나물을 캐느라 분주합니다. 그러고 보면 언니들은 1년 365일, 사계절 내내 꾸준히 열성적이십니다. 주로 봄에는 냉이, 민들레, 쑥, 달래 등을 캐고, 여름에는 땅속 깊숙이 자란 칡뿌리를 캐고, 가을에는 도토리, 은행 등을 주워 말리느라 허리와 무릎이 나마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집니다. 갈수록 병원 가는 일도 많아지고, 이젠 머리도 하얗게 새지고, 주름도 계속 늘어갑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제가 처음 두레방에 왔던 때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못 느꼈는데, 요사이 부쩍 언니들이 나이 드셨다는 사실이 와 닿습니다. 이젠 호칭도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할머니’나 ‘이모’ 하고 부르라” 말씀하시네요. 이쯤 되니 하나에서 열까지 언니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걱정만 늘어 갑니다.
50대 언니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시만, 60-80대 고령의 언니들은 ‘식사는 잘 하시는지,’ 하루라도 연락이 안 되면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 특히 의정부 미군기지 철수와 함께 적막해진 동네, 낮에도 사람 구경이 힘들어진 이곳에서 ‘언제까지 거주하실 수 있을는지, 만약 이사를 가야 한다면 옮겨 가실 곳은 있는지,’ ‘낯선 곳에서 적응이나 잘 하실는지’….새 봄과 함께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 초미세먼지마냥 염려 한가득 안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두레방과 함께 한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떠나보낸 언니들의 빈자리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가시는 길은 늘 혼자입니다. 젊은 시절이나 세월이 흐른 뒤나 언니들의 희생과 고통, 심지어 죽음에 관심하는 가족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니들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이 있다”라는 판결을 받았을 때는 ‘이제야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언니들이 피해자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울컥했습니다. 이제는 언니들의 지난 시절의 노고를 인정받아 노후만이라도 편안한 삶을 사실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