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역사와 소송의 의미 심포지엄
(Korean ‘Comfort Women’ for U.S. Troops: History and Significance of Survivors’ Lawsuit Against the Korean Government)
*두레방 원장: 김은진
2019년 4월 17-28일, 9박10일의 일정으로 유영님 직전원장(두레방), 김은진 원장(두레방), 김태정 소장(두레방 쉼터), 하주희 변호사(민변 사무차장, 법무법인 향법), 박정미 교수(충북대 사회학과), 신의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이고은 감독(다큐영화 Host Nation, 2016) 총 7명이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역사와 소송의 의미 심포지엄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지촌 미군‘위안부’의 현실을 미국에 알리고, 만행을 밝혀냄과 동시에 미국소송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미국 밀스대학(Mills College) 교수인 마고(Margo Okazawa-Rey)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더해, 미국전역에 있는 <Women for Genuine Security(진정한 안보를 위한 여성들 네트워크)>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심포지엄을 후원하고 준비하여 마침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맞아준 분은 마고 교수였다. 숙소로 이동해 보니, 우리 일행을 위한 환영의 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쌀, 라면, 과일, 김치까지 채워져 있었는데, 섬세한 손길과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같은 뜨거운 환대와 함께 4월 18일시작된 첫 일정은, 심포지엄 준비팀과 함께 가진 간담회이다. 첫 일정이 열린 장소이자 마고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곳이기도 한 밀스대학 캠퍼스는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는데, 이곳에서 약 4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심포지엄이 열렸다.
첫 여정 - 4월 18일
먼저, 김태정 소장이 [두레방 언니 이야기]를 주제로 다음과 같이 포문을 열었다.
김태정 소장: 기지촌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한국에서 기지촌은 미군기지 앞에 있는 마을을 지칭합니다. 이곳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전쟁 후 부모를 잃고 이리저리 떠돌다 짜장면 세 그릇에 팔려온 전쟁고아들… 가난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가족부양책인 식모로 내몰린 어린 소녀들… 가정폭력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한 여성들…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찾아 직업소개소로 간 어린 소녀들… 이들이 기지촌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언니들은 특히 ‘팔려오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는 기지촌에 유입되면서부터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는 삶’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팔려온 여성들은 포주의 이익에 이용되고 그들의 관리 아래 자율성을 잃었고, 국가의 이익을 위한 그야말로 ‘관리 대상’이 됩니다. 정부는 여성들의 성(性)을 이용해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애국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계속해서 김 소장은, 한국정부의 성병관리사업, 토벌, 컨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긴 세월동안 가해진 기지촌여성들에 대한 폭력, 혼혈아동들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했다.
김태정 소장: 두레방은 1986년 의정부 기지촌 안에 터를 잡고 30년 넘는 세월동안 언니들 곁에서 함께 했습니다. 동시에 2014년 6월 25일,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언니들은 더 이상 숨지 않고 당당하게 본인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국회 입법과, 지역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지촌은 90년대 중반부터 이주여성이 유입되면서 한국여성에서 이주여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인권침해적인 강제 성병검진 등은 없어졌지만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착취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두레방은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90년 중순부터 이주여성과, 과거 기지촌여성들을 함께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에는 성착취 피해 ‘외국인’여성을 위한 <쉼터>를 개소하는 등 현재까지 의정부, 동두천, 평택을 아우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에 두레방의 모든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고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박정미 교수의 <건강한 병사와 ‘위안부’만들기: 주한미국 통제의 젠더/생명 정치> 발제가 이어졌다. 박 교수는,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한국정부가 미군과 손잡고 어떻게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관리했는지에 대해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역사적으로 서술했다. 영상을 통해 실제 SOPA문서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당시 발제 내용이 포함된 박 교수의 논문은 현재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관계로 문서화할 수 없음을 밝힌다.) 또한 이날, 하주희 변호사는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판결의 의미와 과제]를 발제했다.
하주희 변호사:주한미군기지 인근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을 대리하여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송을 준비하는데 2년 걸렸고, 소송을 시작한지는 5년이 되어갑니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MINBYUN, Lawyers for Democratic Society)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여성인권위원회소속 변호사 20여 명이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송에서 대상으로 삼은 시기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입니다. 원고는 최초 122명이었으나, 그동안 7명이 사망해 현재는 115명이 남아있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한국정부가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법원은 한국의 담당공무원 등이 기지촌을 운영·관리함에 있어 재량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여성들의 성매매 종사를 정당화하거나 이를 조장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성매매를 금지했던 ‘윤락행위방지법’의 규정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의 의무와 같은 공무원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 곧 위법입니다. 한국 법원은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성병관리가 기지촌 여성들의 인격권과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기지촌 미군‘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관여를 드러내는 첫 번째 판결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아직 남아있는 과제를 실현할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실이 밝혀졌고, 판결을 통해 원고들이 위로를 받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곧 성매매여성과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한국정부가 있고, 성구매자들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 기지촌의 성매매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손잡고 함께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한미군이 기지촌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하주희 변호사: 미 육군 비서실장은 한국을 돌아보고 난 후 미 육군에 “청와대의 지휘 아래 한국정부가 성병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미 국제 관계국은 한국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할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분석하기도 하였습니다. SOFA 문서에 의하면 실제로 미군당국은 한국정부에게 미군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여성들의 성병치료에 사용할 페니실린의 양까지 지정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여성들을 등록하고 단속해야 한다고 한국정부에 요청하였습니다. 미군은 전국의 기지촌을 돌아본 후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그 보고서에 의하면 미군이 성병치료와 관련한 의약품을 제공하고,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이 치료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7일간 격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성병치료가 검사결과와 상관없이 주한미군이 컨택한 모든 접촉인들에게 행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미군은 지속적으로 여성들을 등록하게 하고, ‘컨택’과 ‘격리수용’시켜달라는 점을 한국정부에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미군은 한국정부와 함께 자신들의 군인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기지촌에서의 성매매를 정당화, 조장하였습니다. 주도적으로 여성들을 등록하게 하고 위법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폭력적이고 조직적인 성병관리를 함께 하였습니다. (…) 지금부터 우리는 미국정부가 스스로 인권옹호국임을 강조하는 것과 모순된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 대해서 밝히고자 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고,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한반도에서 전쟁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뒤이어 많은 질문이 이어졌고(아래 <함께 생각해보기> 참고) 그렇게 첫 번째 심포지엄이 마무리됐다.
희망의 여정 - 4월 19~27일
4월 19일엔 여러 단체에서 함께 준비한 샌프란시스코 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제 겸 세리머니(ceremony)에 참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 중심부인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파크에 세워진 이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중국·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 셋이 손을 잡고 있는 아래로 김복동 할머님이 소녀들을 바라보며 기원하고 있는 구도이다. 이 같은 소녀상 앞에서 다시 한 번 기지촌 위안부를 위한 우리의 각오를 다졌다. 행사 후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위안부정의연대(Comfort Women Justice Coalition) 회원들과 저녁식사 겸 간담회를 가졌는데, 정년퇴임한 판사 두 명의 엉뚱한 질문에 하 변호사가 애먹은 시간이기도 했다.
4월 20일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센프란시스코에서 헌신적으로 우리를 지원해 준 마고(Margo Okazawa-Rey)·그웬(Gwyn Kirk) 교수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마고와 그웬 교수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한편, 뉴욕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분은 럿거스(Rutgers)대학의 수지킴 교수였다.
4월 21-24일까지 뉴욕과 뉴저지 일정은, 미국 뉴욕의 한인커뮤니티인 <노둣돌>에서 50여 명이 참석한 1차 심포지엄, CCR(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과의 법률간담회, Susan Farbstein(Harvard Law School)법률간담회 스카이프회의, 럿거스(Rutgers)대학에서 70여 명이 참석한 2차 심포지엄으로 채워졌다. 심포지엄 청중은 군사주의와 젠더이슈에 관심 있는 대학생, 지역 활동가, 재미교포 3세(젊은 세대)였으며, 특히 <노둣돌>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전반적으로 젊은 청년들의 참여율이 높았는데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게 해 주었다. 한편, 때마침 뉴욕에 있던 고유경(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선생과도 잠깐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이번 일정의 마지막 방문 도시인 LA로 향했다.
4월 25-27일LA에서 우리를 맞아준 분은 네트워크 회원인 ‘마르다’였다. 인권변호사 배리 피셔(Barry Fisher)를 만나 법률간담회를 가졌고, 클레어몬트대학(Claremont Colleges)에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그리고, LA 한인 진보네트워크와의 만남을 끝으로 약 10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에필로그(Epilogue)
과연 미국정부를 향한 소송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단언컨대 우리의 도전은 무모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기지촌 위안부 언니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계란’을 들지 않을 수 없다(以卵擊石). 뉴욕에서 만난 <노둣돌>의 젊은이들, LA 한인 진보네트워크 회원들, 지난 심포지엄 기간 동안 만난 미국 내 젊은 학생들,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진지하게 묻고 관심한 이들의 지지와 연대를 힘입어 공감과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따름이다.
한국을 상대로 처음 소송을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미국 상대 소송) 역시 불투명한 것들 투성이고, 변에선 하나같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시간,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했고, 현재 고등법원까지 승소했다. 미군‘위안부’성매매 피해자들은 당당히 스스로를 드러냈고, 그들을 관리한 정부를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반면, 미군과 뒤에서 한국정부를 관리 감독한 미국정부에게는 지금껏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끊임없는 사유와 성찰 속에 우리는 그렇게 또다시 미국을 상대로 이 지난하고 긴 여정의 기로에 서있다.
<함께 생각해보기>- 심포지엄 기간 중 나온 질문 및 후기 중 일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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