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 활동가: 조이스
6년 반 전 나는 두레방 ‘자원활동가’였다. 당시 두레방 내담자 중 한 분이 출산을 했고, 두레방 활동가가 그를 보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갔다. 병실에 가보니, 바로 전날 출산한 이주여성 내담자 아밀리아와 미군 파트너(아기의 아빠)가 있었고, 그 옆에 포대기로 감싸진 아기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그렇게 작은 줄 몰랐다. 갓난아기는 처음으로 본 터라 혹시라 만져서 균이라도 옮길까봐 거리를 두고 아기의 안정된 호흡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밀리아는 제이(아기)가 건강히 태어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업소에서 어렵게 탈출한 뒤 체류자격을 잃고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태였던 그는, 출산한지 이틀도 안 된 채 앞으로의 생계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제이의 아빠는 다른 미군부대로 옮겼고, 종국엔 미국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아밀리아에게 적은 금액의 양육비를 비정기적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두레방 내담자의 미군 파트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비용과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엔 지원을 아예 끊어버렸다.
나는 아밀리아와 제이를 그동안 자주 봤다. 여전히 미등록 이주여성이자 싱글맘인 아밀리아는 안전한 일자리가 없는 지역에서 생계비와 교육비 마련을 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제이를 잘 키우고 있다. 노래와 춤에 재능이 많으며 밝고 씩씩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 제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생활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성숙하다. 6살 때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현재 모국어, 영어,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2019년 2월, 아밀리아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해 두레방은 아밀리아, 제이와 함께 동네 초등학교에 가서 입학 절차를 밟았다.
국적과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에서 거주하는 모든 아이들은 초중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두레방 내담자들 중 미등록 이주여성들의 경우,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의 교육권 보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소통의 어려움과 본인들의 미등록 신분 때문에 직접 학교를 찾아가는 것 자체를 꺼려할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실제 제이가 다니던 유치원은, 제이가 8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 8세 선주민 학생들과 체류자격이 있는 이주민 학생들만 졸업 준비를 시켰을 뿐, 미등록 이주여성의 자녀인 제이를 처음엔 배제시켰었다. 엄마인 아밀리아 역시 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작년 말 내담자 P의 자녀가 어느새 8살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P는 곧 아이를 입학시키기로 결정했는데, 그 후에도 “비자 없는데…괜찮겠지?” 계속 걱정을 했다.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이주여성 인권활동가’인 나조차도 ‘미등등록 절차’와 그들의 ‘미등록 체류신분 관련 비밀보장’을 교육청에 문의할 당시, 긴장되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다른 지역 학교에 입학문의를 했었을 때, 행정실 선생님으로부터 “외국인 학생이 불법체류자입니까? 한국말 못 하면 안 되는데?”라는 답변을 들었다. 물론 학교마다 인권 인식에 차이가 있겠지만, 교육권을 가진 이주민 학생들이 공립학교 공무원으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선주민 학생들과 다른 문화나 언어에 대한 불쾌한 코멘트를 듣게 된다.
이미 법적으로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라도 체류자격에 대해 질문을 받을 필요도, 또 문의도 할 필요도 없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같은 ‘교육 의무’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또한 누구라도 자녀를 입학시키는 데 눈치를 보게 하거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두레방은 올해 처음으로 이주여성 내담자의 자녀들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을 내담자들과 함께 진행했다. 그동안 많은 두레방 이주여성 내담자들은 한국에서 출산했을 경우, 아이가 2-3살이 되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대부분 자녀를 본국으로 보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체류자격이 있는’ 내담자들의 중학생 자녀들은 지역 내 아동/청소년 단체나 기관의 도움과 지원을 받았고, ‘미등록 이주민 가정’ 중에는 체류자격과 소통의 문제로 아이를 아예 한국 내 미국 초·중·고등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올해 제이를 포함하여 총 3명이 기지촌 인근에 있는 각각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주아동 학생을 학교에 등록시키는 것이 사실 나의 입장에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담자들이 제출해야할 서류들이 간단했고 담당교사와의 면접도 수월했다. 반면, 내담자들에게는 여전히 일련의 과정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아이와 본인의 신분증(여권) 사본만 제출하면 되는데도, 외국인등록증이 없는 미등록 내담자들의 입장에서는 ‘신분증’이라는 단어를 ‘체류자격’과 분리하기 어렵다. 실제 한국에서는 국적과 신분을 언급할 경우 대개 체류자격 확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내담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연초에 내담자, 그리고 그의 자녀와 함께 학교를 방문하면서 “신분증과 제출서류를 잊지 않고 챙겨왔는지” 확인했을 때 역시 내담자는 나에게 거듭 묻고 또 물었다. “여권(신분증)을 보여줬을 때 비자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3명 중에 한 아이는 현재 미등록,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학교를 방문할 때 미비서류로 인해 내담자가 긴장을 많이 했다.
2019년 3월에 입학한 세 명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지난 주 아밀리아와 제이를 만났는데, 제이는 벌써 한국말이 늘었고 영어와 한국어 간의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해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제이는 화이트보드에 여러 한국어 단어를 쓰면서 아밀리아에게 그 뜻을 설명했다. 아밀리아는 제이가 능력 있는 선생이라고 칭찬하며 계속해서 한국어를 많이 가르쳐달라고 했다. 제이는 다행히 학교를 재밌어하고 상황을 지켜봐야 되겠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 반면 아밀리아와 다른 내담자들은 아직까지 적응하는 중이다. 기지촌, 또는 미등록 이주민 커뮤니티 안에서만 생활해온 내담자들은 그동안 한국의 문화, 학교 시스템, 사회제도 등에 적응할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 기회도 없었다. 기지촌에서 머물면서 한국어로 소통할 기회가 부족해 모국어나 영어로 생활을 해왔다. 게다가 ‘다문화가정’의 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언어교육지원을 포함한 다른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이주여성 내담자들은 한국말이 많이 서툴거나 아예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들이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면서 갑자기 한국사회의 학교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한국정부의 이주민 지원 체계에서 완전히 빠진 미등록 성착취피해 당사자인 이주여성 싱글맘들은 어린 자녀들처럼 빠른 시간 내에 문화적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내담자들은 각각 개인의 자원체계를 통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주여성 내담자들이 한국의 문화나 학교 시스템, 사회제도 등에 적응할 어떤 기회나 서비스가 없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지금 두레방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 중엔 이번에 입학한 아이들이 갓 태어난 때부터 쭉 함께 해온 이들도 있다. 두레방 연중행사, 프로그램, 소풍 등에 아이들이 참석하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장난치며 놀았던 추억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자기 의사표현도 명확해지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갈수록 신기하고 감회가 새롭다. 한편 고민도 많다. 주변에 미등록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단체가 적고, 두레방도 그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내담자의 아이들까지 지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니들이 겪었던 과거의 기지촌 문제와 현재 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기지촌 내 성착취 이슈, 그리고 여성들의 재생산권 이슈를 분리할 수 없다. 특히 현재 이주여성들의 자녀 이슈와 이주아동의 교육권 문제가 시급하다. 미등록 내담자들의 자녀,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은 ‘국적과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교육권을 가지고 있다. 시민사회와 한국사회는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