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후기]두레방을 찾아온 의정부 역사교사들….
의정부역사교사모임(아래, 의역모)에서 지난 5월 2일과 5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 두레방 의정부상담소와 동두천 센터를 순차적으로 방문했습니다. 의정부와 미군기지,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 옆에 자리한 두레방에서 지역 내 역사교사들과 두레방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기탄없이 나눴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방문단 중 두 분의 선생님께서 그날의 소감을 전해왔습니다. (금번 방문은 올해 여름 7월 27일 열리는 전국역사교사모임 답사연수-주제: 분단의 그늘, 미군기지와 의정부를 가다)를 주관한 ‘의역모 사전 기획단’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방조하고 있는 것일까?
* 의정부고등학교 역사교사 맹수용
나는 의정부와 양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 왔는데, 큰 논밭이 펼쳐지는 공간에 듬성듬성 있던 기지(基地)들, 그리고 친구들 대부분의 부모님이 군인이었던 장면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주변에 군대가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었을 뿐 딱히 의구심을 갖지는 않았다. 조금씩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당시 의정부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우리 누나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자기의 선배 동생들이 “이렇게 되었다”며 건젠 사진엔 고 효순·미선 양의 모습이 있었고, 그때 미군기지가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의정부고등학교 앞에는 캠프 레드클라우드가 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나는 항상 레드클라우드의 기상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4층의 기숙사 방에서 레드클라우드 내 전경이 보이곤 했는데, 창밖을 보며 알 수 없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곤 했더랬다.
최근 역사교사모임 자주연수(답사)를 준비하면서 미군기지가 내가 살았던 공간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 실감하고 있다. 특히 기지촌 주변에서 살아오셨던 ‘언니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어둡고 불편한,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하지만 알아야 하는 진실로 느껴졌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왜 18년 동안 몰랐던 걸까?
지난 4월과 5월, 우리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 <두레방> 선생님들과 함께한 답사는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시간이었다. 4월엔, 의정부 고산동에 있는 두레방센터에 방문하며 대폭 축소된 캠프스텐리 인근 기지촌 빼뻘마을을 둘러보았고, 또 5월 중 하루는 동두천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현재까지도 미군이 드나드는 보산거리를 걸었다. 처음 두레방에 방문했을 때 활동가 선생님들과 ‘언니들’께서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고, 두레방에서 활동하는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소개를 들었다. 전쟁이 여성의 삶에 어떻게 피해를 주는지를 고민했고 어느새 두레방활동가로서 6년이 되어 간다는 조** 선생님. 두레방과 13년을 함께 한 백** 선생님. 두레방과의 인연으로 언니들과 더불어 사는 꿈을 갖게 되셨다는 정** 선생님. 작년 9월부터 두레방과 인연을 맺어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고 계시다는 성** 선생님. 각각 선생님들의 소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언가로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의정부 캠프스텐리 답사는 ‘죽은 기지촌’을 둘러본 경험이었다.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주거했을 법한 단칸방으로 구성된 거주지들을 볼 수 있었고,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여러 곳의 클럽, 음식점, 세탁소 등을 볼 수 있었다. 책으로 읽은 김정자 씨의 경험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길게는 50~60년 전부터 짧게는 2~3년 전까지 살았던 이곳 주민들에게 캠프스텐리 주변의 풍경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미군기지가 사라져야 기지촌 성산업이 무너진다” 하셨던 두레방 선생님들의 말을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스텐리 앞까지 둘러본 뒤 내려오는 길에 ‘고산동 기지촌 철거 및 재정비’와 관련하여 주민들에게 공지된 벽보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이곳의 기억은 어떻게 남을까?
두 번째 답사는 동두천 보산거리였다. 보산동 내 조그마한 비밀공간에서 조**, 성**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9년 기지촌의 여성인권 문제는 이주여성들에게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었다. 이주여성들이 기지촌에 자리 잡게 되는 과정과 경로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성의 성을 도구로 삼아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다양한 이해관계와 법으로 규제하는 문제의 현실성을 이유로 이 사안에 대해 묵인하는 동조자-국가권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공부하고 선생님들에게 공유할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졌다. 현실과는 역설적으로 다가온 거리의 풍경들이 기억난다. 우리 정부가 미군과 함께 몇 십 년 뒤에 함께 꺼내보자며 보산역 앞에 묻어놓은 우정 캡슐이 보였다. 여성의 인권을 희생삼아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만들었던 관광특구거리를 다시 ‘경제적’으로 살려보고자 만든 보산거리의 풍경이 보였다. 예전에 둘러봤던 곳임에도 그 풍경이 참 낯설게 다가온 까닭은 미처 몰랐던 언니들의 시선으로 이 거리를 거닐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답사를 다녀온 뒤 자꾸 불편한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방조하고 있는 것일까? 본질적으로는 여성의 성을 도구로 삼는 한국사회와 문화에 어떤 협력과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더 고민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선생님들과 공유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찾아와줘 고맙다”
*부용고등학교 역사교사 최희정
지난 4월 의정부 ‘빼뻘’마을 답사를 다녀왔어요! 빼뻘은 제게 ‘조카 혜원이가 다녔던 <꿈틀어린이집> 근처’ 정도로만 인식되어왔었는데… 빼뻘마을 입구 농협 바로 뒤에 <두레방>이라는, 1986년부터 기지촌 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상담•활동센터를 방문해 활동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빼뻘 미군기지(캠프스텐리)의 이전으로 이제 미군들이 드나들었던 클럽,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지만, 젊은 시절부터 기지촌에서 일하셨던 지금은 노인이 된 기지촌 여성(두레방 식구들은 이분들에게 너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언니”라는 호칭을 쓰시더라구요^^)들은 생활고로 빼뻘 주위 10~15만 원 정도의 월세방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중 한 언니 분께서 두레방에 오셨다가 저희를 보시고는 “찾아와줘 고맙다”며 털실로 직접 짜신 수세미를 선물로 주셨는데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두레방 활동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간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빼뻘의 구석구석을 처음 걸어 다니며 과거 모습을 그려보는 동시에 현재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두레방 방문 전에 읽게 되었던 <미군 위안부의 숨겨진 진실(김현선 엮음, 새움터 펴냄)>이라는 책은 김정자(가명)라는 여성이 10대 시절 의붓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집을 나와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친구의 꼬임으로 기지촌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의 끊임없는 탈출, 구타, 마약, 포주들의 횡포, 기지촌클럽 여성으로서의 비참하고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삶이 생생한 증언으로 채워져 있어요.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프고 같은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런 처절한 삶을 살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삶의 희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악몽까지 꾸며 참 가슴 아프게 읽었던 책이에요. ‘미군 위안부’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정부와 미군에게 관리 당하고 착취당했던 언니들의 아픈 역사를 알아주고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고 살아오신 삶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의정부역사교사모임에서 의정부의 지역사를 주제로 ‘미군기지의 과거와 현재, 반환된 미군기지의 올바른 대안’을 고민하며 ‘기지촌과 기지촌 여성의 삶’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거든요~. 현재 동두천을 포함한 기지촌 지역은 거의 필리핀, 러시아 등 외국인 여성들이 실상을 제대로 모른 채 국내에 들어와, 여전히 착취당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ㅠㅠ)
의정부에서 태어나고 3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기지촌’, ‘미군 위안부’, ‘두레방’이 이제야 제 눈에 들어오고, 알게 되었네요…반환되는 미군 공여지가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활용되거나 ‘안보’공원이 아닌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기회가 된다면 두레방에서 주최하는 ‘두레방 기지촌 평화기행’에 꿈틀 식구들과 함께 하며 내가 살고 있는 의정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