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두레방 쉼터 활동가 이미현(Ate Lee)
*사진제공: 청년외침(Won-Kyoung Kim)
2009년 6월에 평택에 개소한 두레방 쉼터가 2019년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기념행사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때, 김태정 소장이 ‘문화 나눔 토크 콘서트’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사실 이때부터 더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문화나눔콘서트?!
쉼터 친구들이 지닌 다양한 생활양식, 필리핀·태국·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한 시간 반 여의 공연 시간 안에 버무려 낼 수 있을지… 콘서트라고 해놓고는 갑자기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한다고 하면 관객들이 생뚱맞게 느끼진 않을지… 3개국어로 콘서트를 진행하는 게 가능이나 할지…기획안이 완성되기 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쉼터에서 지난 4년 동안 친구들과 부대끼며 활동하면서 내가 느꼈던 다양한 문화, 때로는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던 모습들을 행사 날 콘서트홀을 찾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료 활동가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드디어 기획안이 완성됐다. (야호!)
공연 연습과 준비 과정에는 필리핀, 태국 친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요했는데, 차로 선생님과 와라펀 선생님께서 이 부분을 잘 이끌어주었다. 친구들도 처음 갖는 콘서트라 기대와 설렘, 긴장감이 가득했다. 한편, 콘서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을 맡아줄 사회자 섭외가 관건이었다. 고심하던 중 오래 전부터 두레방 사역의 친구로 함께 해온 이정기 목사님(청년외침)이 떠올라 조심스레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도 내 마음 한 곳에 따스함으로 남아있다.
콘서트 이틀 전, 쉼터 친구들은 이정기 목사와 함께 하는 ‘청년외침(청년예수의 외침 약자)’ 밴드와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첫 곡으로 필리핀 친구 A가 *아낙(ANACK)의 첫소절을 부르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분에 넘치는 영광이었다. “It was such an honor!”
*ANACK(아낙)은 필리핀 타갈로그어(Tagalog)로 자식이라는 뜻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내용의 곡으로 가사를 모르더라도 특유의 선율만으로도 가슴이 찡해지는 노래이다(->들어보기https://www.youtube.com/watch?v=g-nt2TuygaM)
계속해서 태국 친구들이 추는 태국 전통춤은 동작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태국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아름다움을 나누기에 충분했다. 이번 문화나눔콘서트를 준비하는 전 과정은 ‘우리 친구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D-Day
콘서트 날. 우리는 당일 아침까지도 무대에 띄울 PPT와 동영상, 그리고 나라 소개가 담긴 보드 장식, 주차장 안내 표시, 스태프 명찰, 순서지 등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쉼터 활동가 5명이 이렇게 규모가 큰 행사를 기획/진행한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준비과정 중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중에 우리 친구들은, 콘서트에 찾아온 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며 직접 만든 태국 공차와 필리핀 음식 보또를 준비해왔다. 이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안산 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아시아 마트를 찾아 장을 보고 공연 전날까지 삼일 내내 열심히 준비했다. 노래연습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관객들과 함께 나눌 음식까지 정성껏 마련한 것이다.
콘서트 막이 오르자 무대 위에 선 친구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무대 바로 앞좌석에 앉아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잘하고 있다” 아낌없이 격려해주었다. 친구들이 힘껏 부르는 노래 한 구절 한 구절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왔던 소리처럼 내 가슴을 치는 듯했다. 그간 우리 친구들은 한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선주민들의 억압·부당·차별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듣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여성들이 오늘 무대 위에서만큼은 노래와 춤으로, 온전한 자신만의 언어로 마음껏 표현해 냈고, 그 모습을 보자니 감정이 너무 벅차올라 나는 그만 엉엉하고 눈물이 터질 뻔했다. 내가 울면 친구들도 같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 겨우 참아 낸듯하다. 우리 친구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간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내해 왔는지, 옆에서 같이 걸어오면서 보고 느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공연 내내 친구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울림은 그렇게 콘서트홀을 가득 채워 나갔다.
공연 중간 중간 펼쳐진 토크에선 친구들이 필리핀, 태국 문화의 자랑거리, 한국 문화와 다른 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기획단계에서 우려했던 것이, 과연 다국어로 대화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통역을 담당해 준 여러 활동가들 덕분에 관객들과 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지, 또 한국과 어떤 문화가 다른지에 대해서 듣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콘서트를 준비한 친구들, 무더운 날 토요일 저녁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들, 이주민과 선주민,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협력의 토대를 마련하는 장이 되었다. 이만하면 이번 콘서트의 기획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하!) 내년 2020년, 문화 토크 나눔 콘서트 2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시 일상으로…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월요일, 신경정신과에 입원한 이주여성을 만나기 위해 3시간 거리를 달려 상담을 진행하고 해당 여성을 쉼터에 입소시켰다. 한국에서 내몰리고 피해 입은 여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어쭙잖은 위로도 건네 본다. 선뜻 손 내밀기도 어렵고 마음을 열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간 속에서 우린 이렇게 다시 지금 이곳을 살아간다.
친구들은 소송을 준비하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을 끄집어내어 정의를 위해 싸운다. 열악한 환경의 일터, 공장 등지에서 차별과 불편함을 견디며 묵묵히 일한다. 그런 가운데 지난 콘서트에서 나눴던 추억은 고스란히 친구들의 가슴속에 남아 외딴 한국 땅에서 살아나갈 또 하나의 힘으로 남겨질 것이다.
두레방 쉼터. 지난 10년이란 세월동안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완벽하지 않은 하모니를 이루며 지금도, 내일도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대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불쌍한 건 아름다운 그대들을 이용해 착취하는 나라와 성산업 구조이리라. 지금처럼,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반딧불이 되기를…세상에 길을 터주는 등불이 되기를… 너와 나,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