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 활동가: 정예진
지난 봄에 만난 리나(가명) 씨 가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미등록 신분의 리나 씨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임신한 상태로 곧 태어날 아이 마이클(가명) 외에도 첫째 켈리(가명, 7살)와 함께였습니다. 언제라도 강제추방을 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의 그는 친구가 여행간 사이 아이와 함께 친구 집에서 임시로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아동과 임신부가 거주하기에 비위생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바닥 장판은 모두 들려진 데다가 지하라 매우 습하고 환기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미등록 신분으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리나 씨는, 그렇게 거주지에 대한 별다른 대안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두레방 쉼터는 바로 리나 씨를 이용자로 등록하고 당장 시급한 산부인과 지원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병원 진료 시간보다 일찍 만나 근처 커피숍에서 리나 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째 켈리의 임신과 출산 당시 이야기를 들었는데, 첫째 임신 당시엔 단 한 번도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산달 진통 때문에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고, 그 병원에서 얼떨결에 출산했는데 문제는 병원비였습니다. 결국, 리나 씨는 바로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고, 퇴원한지 두 달 여가 지난 후에야 산부인과병원에 분만비용을 완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담해야 하는 출산비용은 대략 150만 원이다. 단, 이는 자연분만일 경우이며 수술 시 입원 5일 기준 약220만 원. )
켈리를 출산했던 당시 리나 씨는, 자신과 아이 진로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외국인 아동의 경우, 의무교육에서 면제가 되기 때문에 첫째 아이 켈리는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했고, 관련 정보도 전무했습니다. 이 경우, 양육자인 리나 씨가 공공시설에 직접 연락해서 방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그에게 있어서 ‘미등록 신분으로 공공시설에 간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또 다문화가정만 하더라도 심리치료나 언어치료 바우처가 발행되는데 반해, 미등록 아동은 진학 전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고 친구가 없는 켈리를 위해 두레방에서는 인근 학교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리나 씨가 거주하는 집에서 버스로 10분 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A초등학교 입학 담당 선생님과 상담 날짜를 잡고 부푼 기대를 안고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켈리는 초등학교에 도착해 상담시간이 될 때까지 놀이터에 머물며 그네도 타고 흙도 만져보고 자기와 같은 또래 아이들을 볼 때면, 부끄러워서 엄마 뒤에 숨기도 했습니다. 그런 켈리를 위한 수업이 꼭 있길 바랐지만, 당일 학교 측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답변은 “8살이 되어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한국말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8살까지 무작정 기다렸다가 입학한다면, 분명 적응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Pre-elementary 교실이나 한글교실이 있는지?” 거듭 문의했으나 “그런 프로그램은 없다고” 했습니다.
켈리가 내년까지 또 이렇게 방치될 게 걱정이었습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해서 근처 정부 산하의 어린이집에 모두 연락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청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미등록아이라서 안 된다, 나이가 8살이 아니어서 안 된다…” 모두 거절되었습니다. 켈리에게 “우리 내년에 학교 가자”라는 말밖에 전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경기도외국인아동기본권실태모니터링 보고서(2017.12.)에 따르면 외국인 아동의 체류자격 중 미등록은 26.2%로 10개의 선택권 중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통계를 접하면서, 켈리와 같은 조건에 있는 아동들이 많을 텐데…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어느덧 5월이 되어 기다리던 리나 씨의 둘째 아이 마이클이 세상 가운데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6월이 되어 마이클이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와 근처 보건소에 의뢰를 해야 했습니다. 일반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실시할 시 주사 1대당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급해야 했는데, 마이클이 이 시기 맞아야 할 주사는 대략 8~ 9개 정도였습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리나 씨로서는 감당하기에 버거운 비용이기에 보건소로 의뢰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보건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보건소에서 또 한 번, 얼마나 이들 가정에게 세상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불법(체류)인 거죠? 왜 한국에 있는 거죠?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긴 할 건가요? 안 돼요.. 할 수 없습니다. 증명서 갖고 오세요…” 보건소 관계자들의 입장도 일면 이해가 되었지만 가장 제가 낙담했던 부분은 무수한 질문들 뒤에 숨어있는 이주민에 대한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이었습니다. 카랑카랑한 톤의 질문들을 되풀이하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감. 더욱이 그때 보건소 내 있던 사람들까지 다 들으라는 듯 내뱉는 큰 목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낙담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리나 씨 가족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 들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이 마음도 잠시뿐. 이들 가족의 눈빛을 보니 이미 눈치를 챈 듯했습니다. 그냥 어린아이가 예방접종을 하고자 하는 것 뿐인데, 그 무수한 질문들이 필요 한가. 미등록 체류가 아동의 건강권을 무시할 정도로 큰 죄악인건지, 우리는 서류를 다시 준비해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보건소를 나왔습니다. 그 후, 두레방 쉼터 소장님께서 보건소에 직접 찾아가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오랜 설득의 과정을 거친 끝에야 관계자로부터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곧장 추가 증명서류를 구비해서 다시 보건소로 찾아갔는데,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관리번호를 받는데도 어려움이 따랐는데, 보건소 측에선 보호자로 누구를 등록해야 할지 난감해 하셨고 결국 동행한 쉼터 상담원의 이름으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들은 한 외국인 인권단체의 말에 따르면, 보건소에서는 아동의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예방접종을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 92조의 2의 2호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보건의료 활동과 관련하여 신상정보를 알게 된 경우 통보 의무 면제하여 미등록 이주민도 신분 노출에 대한 염려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라고 명시되어 있다는 것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아동에 대해 별도의 예방접종 관리번호를 발급하여 국가필수예방접종 제도가 있다는 것도 향후에 알았습니다.
사실만 두고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은 과정들 일 수 있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편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법 제도는 있지만 인식부족으로 인한 혼란과 야기되는 문제, 관련 담당자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음으로 당사자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되는 문제. 관련 법규 상 미등록 아동이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는 되어 있으나 실상은 적응하기 매우 어렵고 학교를 다닌다 해도 추방이 유예될 뿐, 비자는 받을 수 없다는 점까지…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들이 매우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은 사회적인 편견이겠지요. 이 모든 작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리나 씨와 켈리, 마이클이 넘어야 할 무수한 고비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겪고나서 세상의 벽이 왜 이렇게 거대해 보이던지. 우리가 하는 일은 또 왜 이렇게 작아보이던지. 그러나,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아주 작은 점일지라도 그 작은 점들이 모여서 변화를 만들 줄 믿으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런 소망으로 오늘도 우리는 아주 작은 점 하나 찍는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