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고진달래
잠복근무하던 경찰에 단속되어 성매매 관련 조사를 받게 된 한국 여성의 조사동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담당하던 경찰은 사실 태국 여성과 업주를 잡기 위해서 단속을 하게 된 것인데, 그 오피스텔에 해당 여성이 있어서 잡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태국 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니, 모두 태국으로 돌아갔다는 간단한 대답을 들었다. 짧든 길든 이주를 결심한 이들에겐 저마다의 사연과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거대한 성산업에 포획된 여성들은 예상하지도 못한 대가를 온전히 스스로 치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또 다른 여성들로 채워질 것이다. 내가 현장으로 두고 있는 청량리 성매매집결지에서도 중국 여성들을 쉽게 마주하지만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만 나눌 뿐, 뭔가 더 묻는 것이 넘지 말아야할 선을 침해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리고 다국적 여성을 내건 유흥업소 홍보 전단지를 볼 때마다 어딘가에 있을 이주 여성들의 삶을 유추할 뿐이었다.
두레방데이에 초대 받고 잊고 있던 여성들과 그 때의 감정들이 소환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일요일 낮인데 여성들은 올까, 서로 모이면 분위기는 어떨까, 필리핀 여성들에게 어떻게 인사하지…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다. 그러나 웬걸, 들썩이는 분위기, 점심을 먹으라는 인사… 얼굴은 모르지만 집안 잔치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 서로들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었다. 한국어와 영어, 따갈로그어가 섞여 있고, 필리핀 여성들과 그들의 남자들과 아이들이 섞여있고, 고령의 한국 여성들과 젊은 필리핀 여성들이 섞여있고…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시간을 공유하고 노래 부르며 웃고 환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를 홀렸다. 이런 연결들이 여성들의 삶을 더욱 튼튼하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그들 안에서 안심했다.
처음 반성매매 현장에 들어왔을 때, 활동보다는 이 사회에 가려진 어떤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심장을 뛰게 했었다.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면 눈앞에서 욕 하는 업주와 조직폭력배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공들여 천호동,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에 들어갈 수 있었고, 점점 그 곳이 나의 현장이 되었다. 활동이 익숙해져갈 즈음 ‘쉽게 바뀌지 않는 성산업 구조 속에서 여성들을 만난다고 뭐가 달라질까, 여성들을 상담하는 일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의문을 갖기 시작했었다. ‘구조지원과 개별 만남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을까’라는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남아있었다.
두레방데이 모든 프로그램을 마칠 무렵, 풍물패가 들어오고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그 작은 동네를 휘젓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오면 오는 대로 비켜가면서, 이름 모를 필리핀 여성과 연결감을 유지하면서,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이 앞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우리는 이 흥을 지속해나갔다. 그 때 어떤 뭉클한 울림이 있었는데, 우리가 서로 이렇게 모여 무엇인가를 공유해 나간다는 것만으로 이 상담은, 이 활동은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오랜 의문이 그 순간 풀렸다. 한 여성의 법률지원으로 이 촘촘한 성산업의 덫이 제거되지는 않더라도, 여성들의 몸을 관통하는 폭력이 여전히 만연해 무기력해질 때가 있더라도, 피해를 입은 여성이나 조력하는 여성이나 서로가 연결되어있는 것 자체로 가부장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주 여성이 겪는 문제는, 한국 사회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복사판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직접 눈인사를 나눈 여성들, 두레방의 활동가들과 작은 연결을 이어나가다보면, 내 활동의 목적이 뚜렷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그런 의미를 부여해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