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상담소 원장)
언니들과 함께 가을소풍 겸 사과 따기 체험을 하러 가평에 있는 한 농장에 가는 날이다. 아름다운 햇살이 우리를 비추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멋진 날이다. 사실 월초에 사과 따기 체험을 기획했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당일 취소되었던 이력이 있다. 차선책으로 가까운 강가로 장소를 변경해 다녀오긴 했으나 ‘사과 따기’ 작업에 대한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언니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날을 잡았다.
드디어 사과 따기 체험 당일, 일찍부터 두레방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언니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대기 중인 차에 몸을 싣고 농장으로 떠나는 우리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한껏 부풀었다. 차창 밖 산과 들은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색칠해 놓은 듯 산마다 고운 단풍과 은행잎들이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고, 청명한 하늘은 우리네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낙양성~ ♩♬” 뒷좌석에선 벌써 ㅊ언니의 애창곡이 들려온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 노랫가락 메들리에 이어 재잘재잘 소녀 같은 언니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화제는 역시 옛 동료들과 빼뻘마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안타까운 동료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고, 언니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실 때는 분노로 마치 어제 일 마냥 흥분하셨다.
사과 따기 작업에 앞서, 우선 두둑이 배를 채우기 위해 ㄱ 활동가가 심혈을 기울여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메뉴는 석쇠불고기백반! 시장하셨는지 언니들 모두 연신 “너무 맛있다” 하시며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신다. ㅊ언니는, 이제와 말하지만 지난번(월초 비 오는 날) 먹었던 식당 밥은 너무 싱거웠었는데 오늘은 정말 맛있다 하셨다. 활동가들은 “어머 지난번에도 엄청 잘 드셨으면서~” 하며 받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음식 한가득 넣고 양 볼 볼록하게 만들어 맛있게 드시는 ㅊ언니가 정말이지 너무 귀여우셨다.
마침내 사과 따기 시간! 사장님의 안내로 신나게 사과밭에 당도하였다. 얼마나 사과가 많은지 주렁주렁 열린 사과로 가지가 바닥까지 축 늘어져 있다. “2인 1조로 바구니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8개씩 따는 거예요. 사과를 잡고 (사장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요렇게 돌리시면 됩니다. 딴 사과는 모두 가지고 나오셔야 해요” 하하 호호 웃으시며 사과를 따시는 모습이 마냥 어린아이 같다.
무거운 사과 바구니를 끌고 창고에 모여 무게를 달고 포장했다. 그리고 그 끝에 “두레방에 가서 언니들께 드리겠다”고 하자 ㅂ언니 왈, “오늘 딴 사과를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거예요?” “(?)” 알고 보니, ㅂ 언니는 애초에 ‘사과 따러 가자’는 두레방의 제안이 정말로 ‘사과 따는 일’만 시키는 건 줄로 아셨다는 거다.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수확한 만큼, 가져와 나눠드시는 거”라고 말씀드리니 ㅂ언니는, 한 술 더 뜨셔서 “이렇게 재미있는 일은 시켜만 주면 계속할 수 있겠어요”라 하신다.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신이 인간에게 오감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우리 모두는 탐스런 사과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씹고 맛보며 만끽했다.
매일 빼뻘마을 집과 두레방, 아니면 병원만 왔다 갔다 하는 언니들이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신이 나셨다. 활동가들에게 연신 “고맙다” 하는 언니들을 보며 드는 생각… ‘이참에 두레방에서 캠핑카를 하나 사버려?’ 언니들을 몽땅 태우고 전국일주를 하면 정말 기상천외한 에피소드가 많이 쌓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언니들과의 행복한 하루 소풍을 마치며 시인 나태주 <풀꽃>의 시구를 읊어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中)
‘풀꽃’ 같은 언니들의 주름진 얼굴을 이 가을 어느 멋진 날, 자세히, 오랫동안 보았다. 사랑스러운 우리 언니들의 삶이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이 소풍 같은 나날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