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 활동가: 조이스
두레방은 이주여성 상담과 지원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내담자들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성(性) 건강 문제가 발생할 시 건강보호와 치료를 위한 정보 확보 및 건강과 재생산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적권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특히 성착취 현장 또는 개인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함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작업도 필요했다. 이에 두레방은 2019년 하반기, 산부인과 지원활동을 하면서 내담자들의 건강 문제 특히 성(性) 건강에 대해 필요한 내용으로 맞춤형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두레방은 이주민과 선주민 여성들을 위한 의료지원활동을 동시에 하는데, 대체로 이주여성 내담자 지원 과정은 선주민보다 더 복잡하다. 한편, 내담자 지원 과정에서는 국적과 관계없이 사전 의료상담은 기본이다. 이때 선주민 내담자와 달리 이주여성 지원의 경우, 진료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통역이다. 의료진의 외국어진료가 불가능할 시, 활동가가 직접 통역하거나 다누리콜센터 통역서비스를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진료 중 통역하고 진료 후 수납하기 전 진료내용을 내담자에게 한 번 더 설명하며 마지막으로 전체 내용을 다시 작성해 내담자에게 문자로 보낸다. 이후에도 의료상담과 설명이 계속 진행된다.
한편, 통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본국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 온 내담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진료 내용을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즉 문화와 언어차이, 본국과 한국간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 본국에서 겪은 의료시설 이용 경험의 차이 등이 그것이다. 이뿐 아니라 병원 의료진에 따라서도 진료의 섬세함, 통역 포함 할애 가능한 총 진료시간의 차이, 이주민 환자에 대한 케어-관심, 선입견, 차별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대개의 이주여성 내담자들은 진료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질문하지 못한다.
두레방은 아무래도 산부인과 지원 빈도가 높다. 업소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술 판매와 유사성행위 또는 성매매를 강요받는다. 성착취와 노동착취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레방의 내담자들은 강요된 유사성행위와 성매매, 또는 자신이 원하는 성(性)활동으로 건강문제가 발생한 경우라 할지라도 혼자서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과중된 노동임에도(주 50~60+@시간) 기획사가 건강보험을 가입해주지 않기 때문에 산부인과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 여기에 더해, 문화적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성적 문란으로 낙인 찍힐까봐 검사와 치료 받는 것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내담자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내담자들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못할 경우, 증상이 있어도 참거나 인터넷으로 민간요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주여성이든 선주민여성이든 산부인과 진료를 자주 못 받았거나, 여성 건강 교육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할 경우 성(性) 건강과 산부인과 진료 내용이 생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레방 내담자들도 역시 산부인과 검사를 처음 받거나 병원에서 처음 접하는 내용이 있으면, 활동가가 진료내용을 수차차례 설명해도 이해하기까지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몇몇 산부인과 의사들은 진료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원을 나가보면, 수많은 환자들이 대기하는 병원에서 통역 때문에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치 주는 병원도 있었고, 심지어 내담자의 질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세요”라고 쌀쌀맞게 안내했던 병원도 있었다. 이에 두레방은, 일련의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금번 맞춤형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교육강사 섭외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여성주의자 산부인과의사를 초대한 배경이기도 하다.
마침내 지난 2019년 12월 20일 두레방의 첫 번째 맞춤형 성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소속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와, 내담자들의 모국어인 타갈로그어로 전달하기 위해 통역사가 함께 했다. 각별히 이날 강의를 진행한 강사는, 두레방 내담자들을 위해 맞춤형 교육을 준비했다. 질과 자궁에 대한 구조 설명 후 다양한 피임법, 성병 예방 및 치료법, 임신중절, 생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교육했다. 교육 참가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자궁 모형, 의료기구와 피임용품 등을 함께 보여주면서 흥미롭고 편안한 교육 환경을 조성했다. 현재 산부인과 진료 중인 의사선생님이 직접 강의를 하니 참가자들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마음껏 물어보고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더욱이 통역사가 교육 내용을 타갈로그어로 전달할 수 있었기에 참가자들은 편하게 임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점 또는 자신의 현재 건강문제를 풍부하게 설명하면서 질문할 수 있었고, 통역이나 시간제약으로 인해 눈치를 볼 필요도 전혀 없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총3시간의 교육에 임했다. 교육 내내 집중하면서 많은 내용을 접한 참가자들은 자신의 몸과 성(性) 건강 관리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평가했다. 각별히, 치료가 필요하면 괜히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컨디션과 면역력, 피임 사용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했다. 꼬박 세 시간, 꽤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병과 염증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없어서 아쉬웠다’는 평가도 있었다. 끝으로, 한 참가자는 교육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교육프로그램은 우리 입장에서 눈을 뜨게하는 자리였다.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심각한 병이 걸렸다는 뜻이 아닌 것을 여성들에게 알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기적으로 검사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두레방은 앞으로 성교육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내담자들의 필요에 맞게 교육 방향을 개선할 것이다. 물론 내담자들이 배운 내용을 삶에 바로 적용하기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성(性) 건강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에 두레방의 이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도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