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경기도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기반하여…
두레방 쉼터 활동가 정예진
차별하는 것은 차별당하는 것보다 쉽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품어주는 것보다 더 쉽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는 이 같은 삶에 익숙하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미등록 아동들을 배제하고 모르는 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기에는 미등록 아동들의 규모는 너무나도 크다. 『2019 경기도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14쪽)』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규모는 최대 12,239명 내지 최소 5,295명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등록이 되는 경로는 다양한데 두레방쉼터 이용자로 등록한 한 내담자의 경우, 비자 만료기일로 미등록되었고 그의 자녀 또한 미등록 아동이 되었다.
미등록 이주아동 메리(가명). 한국 땅에서 미등록 아동으로 살아간 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메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의 사회적·정신적·경제적 어려움들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메리에게 전이될 뿐 아니라, 이후 더 가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선 첫째로, 사회적 고립이다. 한국사회에 온전히 뛰어들 수 없는 신분의 메리 어머니는, 자신과 같은 이주민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돌봐주는 형태의 비정규직 일을 간간히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메리는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도록 이렇다 할 교육경험이 없다. 메리는,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고 한국말도 할 줄 모른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입학통지서도 오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개학 연기와 온라인 수업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메리네 닥친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다. 설사 입학한다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출생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사회는 메리를 고립시켜갈 것이다.
두 번째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메리는 머지않아 자신이 ‘미등록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다른 미등록 아동들이 앞서 겪었듯 메리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미등록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통의, 정당한 대응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고, 이 같은 신분 자체가 약점으로 작용해 기만당하는 상황을 숱하게 마주할 것이다. 하다못해 누가 봐도 명백하게 불합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신분조회가 기본인 경찰서에 메리는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세 번째로, 건강권이다. 미등록 신분의 아동은 건강보험 가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보험수혜자들에 비해 의료비가 평균 4-5배 더 많이 발생한다. 고용과 급여가 불안정한 메리 가정에 이 같은 의료비는 너무 큰 부담이다.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열악한 건강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 메리 어머니는 메리를 임신했을 때도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제대로 된 산부인과 검진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출산비용도 마련하지 못해 병원 측에 사정해서 우선 출산하고, 이후 일하면서 몇 개월에 걸쳐 갚았다.
올해 겨우 8살인 메리, 미등록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아이의 기본권, 건강권, 생활권을 위협하는 사회, 과연 이 같은 상황들이 정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미등록의 신분 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다양한 단위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미등록 이주아동의 의료접근권 개선방안(2011)] 권고와, [제3차 이주인권 시민사회의견서(2018)]를 보면, 부모 또는 본인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이주아동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76조 개정을 촉구하였다.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미등록 아동에 대한 권리는 증진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 개선 사항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공기관에 있다. 실제 우리는 미등록 외국인 통보의무 면제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주민들의 정보를 물어왔던 보건소를 경험했던 바 있다. 이들에게 별도의 식별번호를 부여하게 되어있음에도 그 절차를 몰라 한참을 헤매던 공공기관 소속 직원들도 허다했다. 둘째로, 개선사항이 있다고 해도 미등록 체류자(부모)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정보습득의 60% 가량이 지인을 통해서 이므로 새로운 공식적인 정보획득이 어렵다(『2019 경기도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 20쪽).
한편, 해외 사례를 보면, ‘이주민의 땅’이라고도 불리며 이미 다양한 이주민들을 받고 있는 나라 프랑스는 이주민이 3개월 이상 머물면서 한 달 63유로 이하의 수입이 있다면 1년 30유로로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또 핀란드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익명성 보장 아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클리닉을 설립하였다. 독일 또한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미등록 이주민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였다. 우리 역시, 전문가들과 정부의 논의를 통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방법을 간구하여 하루 빨리 미등록 아동에게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세계화라는 말에 익숙해져왔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캐나다, 또는 유럽의 특정 나라를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기를 바랐던 것을 세계화라고 얘기(착각)한 것은 아닐까? 이는 반쪽짜리 세계화일 뿐 아닌가? 실로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광활하다. 세계란, 지구 위 모든 나라 곧,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수많은 나라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우리는 제대로 인지해야 할 것이다.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진정한 세계화는 비단 영어 잘하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골고루 혜택을 받는 것, 어떤 이유로든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하지 않는 것,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인식을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 바로 이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