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상담소 원장 김은진
1. 여는말
2020년 4월 29일은 기지촌여성운동의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날이었다. 경기도의회 제143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 김종찬 의원이 대표발의 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재석 102명, 찬성 101명, 반대 0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된 것이다. 회의장 밖 모니터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모두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 치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1986년 설립된 두레방은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의 기지촌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캠프 스탠리 옆에서 활동하고 있다. 두레방은 경기북부의 기지촌 도시인 파주, 동두천, 의정부 등지에서 성매매 했던 여성들을 폭넓게 지원하면서 노령화되어 가는 여성들과의 상담과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현실과 인권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아울러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매우 정치적이고 군사화 된 영역으로, 이들의 진정한 인권회복과 현실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서는 정치적 접근의 필요성과 민관의 협력체계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두레방 초창기부터 여성들의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담뿐 아니라 기지촌여성의 인권침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교육 및 홍보, 법제화를 위한 노력 등을 하였다. 그리고 2020년 4월 29일, 드디어 전국 최초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그동안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 받은 피해 당사자들과 두레방은 2012년 발족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함께 기지촌여성을 위한 국가배상소송, 특별법, 국제연대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특히 이번 경기도조례는 경기여성연대의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앞서 걸어가신 당사자들과 선배들의 눈물어린 노력 덕분에 ‘경기도조례 통과’라는 또 하나의 귀한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2. 왜 경기도인가?
“경기도는 분단 이후 미군 주둔이 시작된 이후부터 기지촌이 형성되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경기북부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고, 전략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평택지역에 가장 큰 공군기지와 육군기지가 주둔하면서 기지촌도 그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한때는 48개의 기지촌이 존재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기지촌 성매매가 깊게 뿌리내리게 된 곳이다. 또한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보았던 지역으로서 수많은 지방 정부의 공무원들, 경찰, 보건소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관행적으로 성매매를 묵인했으며, 업주들과의 유착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성매매를 공고히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 입은 여성들이 기지촌에 아직도 살고 있다.” (『경기도 미군위안부의 인권과 현실』, 유영님, 2017) 유영님 두레방 직전원장이 제시하였듯 동두천, 의정부, 양주, 파주, 평택 등 주한 미군부대의 60%가 경기도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지촌여성들 또한 이곳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수치를 떠나, 경기도는 앞장서서 기지촌여성 등록 및 검진의 책임, 업소 허가의 책임, 기지촌여성 강제수용의 책임 등 과거에 자행한 일들에 대해 책임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피해자인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경기도조례는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했다.
3.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발자취
2012년 5월, 경기여성연대가 여성발전기금 지원사업으로 5개 지역순회 여성교육을 시작한다. 당시 두레방 원장이었던 유영님 경기여성연대 공동대표가 이때 〈두레방: 기지촌여성을 위한 정책제언〉으로 발제하였다. 이후 정식으로 조례‘안’이 제안되기까지의 숱한 과정들이 켜켜이 쌓여왔다.
*<2013년 제6회 전국 지방선거 대응 위한 경기도여성정책의제 발굴사업(주관: 경기여성연대)>으로 추진된 평택토론회에서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의 토론을 통해 제안(2013.10.24.).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 간담회(주최: 기지촌여성인권연대·경기여성연대, 주관: 고인정 도의원, 경기도의회 보건복지 공보위원회 회의실, 2014.02.20.)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경기도의회 브리핑룸, 2014.3.24.)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 제정 촉구 기자회견(주최: 평택민주단체연대·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도 의회 염동식 의원 사무실 앞, 2014.4.1.)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조례 필요성과 과제’ 생각나누기 토크심포지엄(주최: 경기여성연대·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주관: 경기여성연대, 경기도의회 소회의실, 2015.07.14.)
*경기도 미군기지촌 ‘미군위안부’ 삶과 지원을 위한 토론회(주최: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경기여성연대, 경기도의회 1층 대회의실, 2017.12.1.)
이밖에도 정식으로 조례‘안’이 제안되기까지 수많은 활동과 모임이 있었고, 특히 민선6, 7기 경기도의 여성정책의제로서 제안되었다(주최: 경기여성네트워크, 주관: 경기여성연대). 결정적으로 2014년 2월 제8대 경기도의회에서 고인정 의원이 처음 발의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은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2014년 7월에는 정대운 의원이 같은 조례(안)을 발의 하였으나 도의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폐기 되었으며, 2018년에 박옥분 의원 또한 추진하여 발의했으나 내부 이견과 도 반대 등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이 역시 자동폐기 되었다.
당시 조례(안)은 명예회복과 복지향상을 위한 임대보증금 지불 및 생활안정지원금·의료비·장례비, 명예훼손·손해배상 등 법률상담과 소송대리 등을 지원하도록 규정했지만 무산되면서 안타깝게도 기지촌여성들은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조례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상위법이 없다는 것과, ‘국회 입법과 대법원 최종판결 후 조례제정을 해도 늦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의원들의 경직된 사고였다. 이에 설득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했다. 헌법에 지역민의 권리옹호를 위한 지자체의 조례제정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도민의 인권보호와 복지증진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경기도의 책무이므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도 문제없음을 수없이 피력한 것이다. 또 한편으론 한미동맹에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슈와 많이 부딪히기도 했는데, 여기엔 ‘미국의 사과와 법적 배상을 당장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 입은 기지촌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라는 사실로 조례제정의 필요’를 역설했다. 그뿐 아니라 ‘미군위안부’라는 표현을 빼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실제로 이번 조례에서는 ‘미군위안부’ 대신 ‘기지촌여성’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기지촌여성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도 걸림돌로 작용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박옥분 의원이 발의한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일부 보수 단체가 중심이 되어 ‘성평등’을 ‘동성애옹호’로 잘못 해석해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 와중에 발의되어 상대적으로 ‘상인회’ 등 주요 반발 세력들의 관심을 적게 받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렇듯 두레방이 소속된 경기여성연대 위원들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위원들은 조례제정을 위해 경기도청의 문턱이 마르고 닳도록 수차례 드나들며 경기도의원들과 면담하고, 경기도 의장과의 간담회를 성사시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옥분 의원과 김종찬 의원과의 만남은 올해만 십여 차례나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월, 29명의 도의원과 함께 김종찬 의원이 대표발의를 하고, 2020년 4월 22일 여성가족교육평생상임위원회(이하 여가교위)에서 통과된 후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 본회의에서 통과 되었다.
4.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내용
본 조례는 1.제정이유에서 명시되어 있듯 “…현재 도내 거주하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은 사회적 낙인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므로 경기도 차원에서 과거 기지촌여성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안정지원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현재 기지촌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70~80대의 고령으로 주택난과 의료난 등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해서 ‘애국자’로 명명되었던 그녀들은 기지촌 쪽방 등지에서 독거노인으로 살고 있다. 만성질환과 빈곤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보다 생활안정지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지원비 중 월세 낸 나머지로 한 달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많다. 그마저도 전세자금 모을 요량으로 힘들게 저축해 약간의 목돈이라도 쌓이면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되어 다른 지원을 일체 받지 못한다. 때문에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 가서 치료 받기가 힘들다. 따라서 조례의 주요 내용은, ‘경기도에 있는 기지촌여성들의 복지향상과 생활안정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도지사의 책무를 규정하고,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위원회 설치 및 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임대보증금지원 및 임대주택 우선공급 등 주거혜택과 함께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의료급여, 간병인지원, 장례비지원이 가능해진다. 이와 더불어 조례의 목적(제1조) 곧,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꾀하고 경기도민의 올바른 역사관정립과 인권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중요한데 ‘역사관 정립과 인권증진에 이바지할’ 구체적 규정이 없는 것은 결정적으로 조례의 미비함을 나타낸다. 이는, 점진적 조례개정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지점이다.
5.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통과 의의
첫째, 경기도의회의 조례통과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대한민국 지자체 최초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보다 진전된 기지촌여성인권 회복 역사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둘째, 경기도는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주한미군 최대밀집 지역이다. 기지촌의 절반이상이 경기도에 있으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기지촌여성이 많기 때문에 경기도 차원에서 먼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경기도조례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며 경기도조례가 통과된 것은 미군부대가 있었던 타 지역에 좋은 모델로서 선구적 사례가 될 것이다.
셋째, 지금껏 정부에서는 기지촌여성 지원을 “근거법이 없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미뤄왔다.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경기도조례를 통하여 기지촌여성들의 복지향상과,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이 가능해졌다.
넷째 ‘기지촌 성매매 피해여성문제 진상규명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국회입법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판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각 시 별로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경기도 내 평택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파주시 등에 유사조례가 제정되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6. 앞으로의 두레방 활동
두레방은 기지촌여성들이 함께 모여 자존감을 회복하며 서로가 힘이 되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경기도 조례제정으로 어려움 가운데 노후를 보내고 계신 두레방 기지촌여성들에게 작게나마 기쁜 소식을 공유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고 좋다.
한편, 경기도조례를 ‘우선’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 기지촌여성들의 ‘복지’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미흡한 부분들이 있다. 다수의 의원들에 의하면, 조례가 한 번 통과되면 여타 보충할 사항들은 계속 수정하여 통과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두레방은, 계속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경기도조례 수정 작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첫째, 기지촌여성에 관한 진상규명 및 실태조사, 인권보장 및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을 선행하겠다.
둘째, 기지촌여성에 관한 역사적 자료 수집, 보전, 관리, 전시 및 조사연구에 관한 사항을 우선시하겠다.
셋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동일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기지촌기록관 등 교육시설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
넷째, 각 시 별로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겠다.
다섯째, 조례의 시행규칙 제정 및 위원회 구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
여섯째, 위에 제시한 두 번째 사항의 연장선으로서 구체적으로 과거 보건소(검진소)로 사용되었던 現 두레방 상담소 건물을 포함하여 기지촌 관련 역사적인 건물이나 장소를 발굴하고, 보존하는데 힘쓰겠다.
일곱째, 기지촌여성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전문적인 사업, 기지촌여성들의 자녀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와 지원에 관한 사항 등도 고민할 것이다.
두레방은 현재 기지촌여성 관련 또 다른 커다란 과제를 안고 힘쓰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여성이 떠나간 빈자리에 이주여성들로 대체 되었다. 이들을 위한 법률, 의료, 각종 노동·인권침해 관련 지원과 상담뿐 아니라 이주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안정적인 숙식, 귀국지원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과거 군사주의 문화에 희생된 여성들을 위한 두레방의 활동은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7. 맺음말
“거역할 수 없는 ‘포주’라는 이름으로 ‘기지촌’을 통해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하고 한편으로는 강요했던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라도 그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박수진, ‘쇠창살 아래 웅크린 성병관리소’ 중… 한겨레21 제695호〉
2014년 최초로 122명의 기지촌여성들이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이후 6여 년이 흘렀다. 2014년 ‘기지촌여성 인권피해 진상규명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된 이후 또 6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3년 제안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는 7여 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바라기는 입법과 소송도 7년째 되는 그때, 모두 통과/판결되기를 소망한다.
2018년 고등법원은 국가의 성매매 정당화와 조직·폭력적 성병관리에 대한 국가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2020년인 지금 기지촌여성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으며, 당시 소송에 참여한 122명의 여성 중 8분이 돌아가셨다. 더 늦기 전에, 이번 경기도 조례제정을 계기로 정부는 응당 이들의 명예회복과 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 이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올라 과거청산과 더불어 군사주의에 희생되는 여성들이 해방되는 그날이 속히 오길 고대한다. 그리고 그날까지 두레방의 지난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