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년대 미군 기지촌에서 청춘을 보낸 할머니들이 당당한 배우로 무대에 섰다. 연극 <문밖에서>가 지난 7월 25부터 8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총 다섯 차례 공연된 것이다. 1976년 미군 전용 클럽, 1992년 기지촌 위안부 자치회 ‘국화회’ 창립총회 등 기지촌여성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생의 과제가 녹아든 연극 <문밖에서>. 공연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들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고도 즉흥적으로 풀어낸 그곳, 네 번째 공연 날 두레방 활동가들도 함께 관람했다. 그리고 거기서, 해당 연극만 벌써 2번째 관람이라는 열혈관객, 두레방 자원활동가로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길희연 씨를 만났다.
미군 기지촌에서 청춘을 보낸 숙자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쿠바계 미군 영철에게 전하는 작품의 마지막 대사 “I miss you and I still love you”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객석에서 함께 울었던 길희연 씨.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 중 배우들의 소감을 열심히 메모하기도 했던 이 시대 청춘 희연 씨는 <문밖에서>를 과연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 자원활동가 길희연
평택 안정리, 험프리즈 앞 기지촌에서 과거 미군위안부로 일했던 금옥이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된다. 이양구 연출의 연극 <문밖에서(2020)>는 묻힐 곳 없는 금옥의 죽음으로 막을 올리고, 그녀가 누워 있는 무연고자 화장터 앞에 앉아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막을 내린다. 한 축은 기지촌의 특수한 억압구조에 대한 이양구 연출의 해석으로, 다른 한 축은 과거 미군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은 양축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재 기지촌을 살고 있는 그 여성들의 일상을 무대 위에 올린다. 기지촌 성매매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달러를 벌어들이는 국가적 사업임과 동시에 완전히 국가의 중심부 바깥으로 밀려나고 감추어졌다는 면에서 특수한데, 숙자, 향자, 경희의 증언들이 그 이해하기 힘든 생태계에 생명과 현실성을 불어넣는다. 스스로를 연기하는 숙자, 향자, 경희는 이전엔 미군위안부였고 현재는 배 밭에서 배꽃에 약을 뿌리는 일을 한다. 이들 세 배우는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날카롭게 다가와 꽂힌 것은 과거 미군위안부를 위한 트라우마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이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이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몸짓과 말로 표현해보는 행위가 다른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치료였다는 것.
나도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일의 무엇이 상처였고 그것을 묻어두어서 생긴 일들은 뭐가 있는지 매주 두 시간 동안 하얀 상담실 안에서 이야기했다. 눈을 감고 과거의 특정 장면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그 시간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내게 감당할 수 없는 감정적, 인지적 상해를 입힌 과거의 특정한 장면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기분을 설명하는 것은 늘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항상 물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 어때요?” 나는 계속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두었던, 덮어두었던 역사를 다시 꺼내 직시하고 그 당시의 내 자신과 공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사실 깔끔히 지울 수도, 덮을 수도 없다. 유령처럼 내 일상 이곳저곳에 아무 때나 출몰한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기지촌은 이 사회의 공적 기억에서 지워진 공간이다. 기지촌의 역사를 덮는 것은,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기적”의 레토릭이나 “같이 갑시다”라는 주한미군의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한미간의 군사-경제적 우정(?!)이다. 나아가, 마치 트라우마의 유령처럼, 사람들의 일상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있다. 과거 미군위안부의 삶이란 우리에게 너무나도 먼 것처럼 느껴지지만, 코로나 이전 매 주말 사람들로 넘쳐나던 이태원이 사실은 미군위안부의 생활 터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클럽들의 조명 아래에서 기지촌으로서의 이태원은 사라진다. 이렇게 증발해버린 기억의 장에서 나는 이 여성들의 딜레마를 본다. 자신들이 살았고 겪은 억압이며 폭력인데 사회는 그런 일 없다고 한다. 자신들의 현실적인 상처인데 사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들의 과거가 수치로 여겨지는 것에서 나아가서,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의 상처가 부정당하는 분위기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안다. 그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그 상처에 대해서 어떠한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행위라는 것을 습득하게 했다. 자연스럽게도 나는, 내 상처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작은 철문들로 이루어진 <문밖에서>의 무대 위에서는, 기지촌여성들이 자신의 모습을 하고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를 연기하고 있었다.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 들어가서 그 상황을 말과 몸짓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숙자, 향자, 경희의 경우에 연기란 과거에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리고 자신을 착취했던 억압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 그 당시를 재-현, 즉 다시 현재로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상담을 하면서 모르겠다고만 답했던 나는 그들의 용기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나는 막이 내릴 때 그들의 용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공연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향자는 정말 담담히 말했다.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 지나온 이야기인데 하면 할 수도 있지. 아무도 안 알아줬는데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요.” 숙자도 말했다. “이만한 바위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데요, 연극을 하면서 그게 자갈로 변했어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적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자신의 사적 기억의 증언이 그 텅 빈 기억의 장에 역사적 증거로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위를 자갈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트라우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그녀는 강하다는 것이다. 과거엔 ‘원 투 차차차’였던 그들의 노동은 현재에 와서는 배꽃에 약을 ‘찹찹찹’ 하고 치는 것으로 변주되어 지속되고, 작품의 마지막 대사는 다름 아니라 숙자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쿠바계 미군 영철에게 전하는 “I miss you and I still love you”이다. 이 여성들은 지나간 과거에 박제되어 사라지는 수동적인 피해자이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살려야만 하는 치열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무대에 내놓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삶에, 살아 있음에, 살아온 용기에, 그리고 그것을 우리와 나누어준 것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