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두레방 상담소 활동가
10월11일. 정부가 전국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하향 조정하였다. 드디어 사과농장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로 세 번째 사과 따기 체험으로 그간 언니들로부터 사과농장에 다녀오신 이야기들을 자주 들어왔던 터라 더욱 기대 되었다. 지난해 사과가 굉장히 달아서 더 많이 사오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시며, 다음에 가시게 되면 여유 있게 사오겠노라 벼르던 언니들이었다. 더욱이 코로나로 올해 야외활동은 물론 내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거의 불발되었기에, 이번 소풍을 매우 반기셨다. 설레셨는지 활동가들보다도 더 일찍 와계신 부지런한 언니, 찐 밤 껍질을 야무지게 까서 간식거리를 준비해 오신 언니, 실제로는 처음 뵙는 낯선 언니도 계셨다. 개성은 제각각이었지만, 간식 봉지를 하나씩 손에 들고 들뜬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들이었다. 언니들의 기대감으로 가득 찬 12인승 렌트카는 깔깔거리는 소리로 들썩였다.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나면, 누구의 발이 범인이냐며 서로의 신발 밑창을 확인하고 깔깔~,밖의 풍경 하나 하나에도 감동하고 박수치며 또 깔깔~, 정작 구수한 냄새의 범인인 은행나무는 차창 밖 뒤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건만, 승합차 앞 칸 뒤 칸, 칸칸이 동네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끌벅적 웃음꽃이 피었다.
사과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개천가의 야생호박을 보고도 마냥 즐겁다. 개천을 배경으로 마치 힙합퍼들처럼 스웩 있게 포즈를 취하며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야 사과 따기 체험은 시작되었다. 여름 태풍과 긴긴 장마의 영향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사과 크기가 예년보다 작았고, 우리에게 할당된 양도 1인당 여섯 개로 작년에 비해 두 개나 줄었다. 이에, 아쉬움 가득한 얼굴들로 사과밭에 입장하였지만, 푸르른 사과나무들에 달린 탐스러운 사과 열매들을 보면서 모두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그렇게 따스한 가을 햇살은 우리의 볼과 마음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검정 봉지 하나씩 들고 바삐 움직이는 언니들 사이에서 계속 넋을 놓고 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실한 사과를 찾으려 보니, 이미 앞쪽 사과나무들은 날랜 언니들에게 점령당하였음 알 수 있었다. 제일 안쪽의 사과나무들로 향하였지만,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1차로 봉지를 가득 채운 뒤 2차로 추가 구매 가능한 바구니에 새로운 사과를 채워나가는 언니들을 보며 그 민첩성에 깜짝 놀랐다. 나의 봉지 안에는 세 개의 사과만이 덩그라니 있었고, 아직도 세 개나 더 채워야 했다. 내가 너무 심사숙고했던 탓인지, 아님 늦장을 부려 이미 좋은 놈들은 언니들이 다 따간 탓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여섯 개의 사과를 수확하는 시간이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고, 고작 여섯 개가 든 봉지를 들고 꼴찌로 퇴장하였다. 두 손 가득 여유로운 고수들의 모습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한 초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떤 사과가 좋은 것인지 단번에 구별하셨을 뿐 아니라 목표물이 눈에 들어오면 과감하게 손을 뻗으셨다. 초짜인 나는 조금 더 가면 더 좋은 사과가 있을 거라는 희망에 신중을 기하다가 좋은 사과들은 이미 고수들의 몫이 된 것이다. 다음에는 주저하지 않고, 대범해지리라 마음먹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유명산 자락의 유명한 잣 칼국수 집에 도착하였다. 방송에 출연한 이름난 곳으로, 다행히 언니들도 맛있다며 만족스러워 하셨다. 한 언니는 “최근 3년 내에 먹어본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며 끝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깔끔하고 고소한 잣 요리마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식사 후, 빼뻘로 그냥 돌아오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지라 예정에 없던 코스도 추가되었다. 정원이 있는 대형 카페에 들렀는데, 옆 테이블과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우리 열 명 모두 여유 있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화려한 조명과 널따란 카페 규모에 언니들이 조금 낯설어하시긴 했지만, 담소를 나누며 소풍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 내내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 소독을 해야 했지만. 모처럼 자연과 서로를 만끽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가을이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고, 언니들의 소녀 같은 모습들을 보며 나 또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손에 든 붉은 사과들을 보며 깔깔대던 언니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언니들과 함께하는 소풍은 정말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