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엔 내가 활동가로서 일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사실, 활동가는 어떤 분야의 전문적이고 특별한 사람들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던 것 같다. 그래서 두레방에서의 활동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했다. 2월쯤 두레방활동가 모집공고를 접한 뒤, 홈페이지를 둘러보면서 두레방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당시 기지촌여성이나 군사주의 이슈를 잘 알지 못했지만, 자석이 끌어당기듯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나를 잡아당겼다. 코로나사태로 면접이 계속 연기되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3월 드디어 면접을 보았고, 4월부터 근무를 시작하였다.
첫 출근일, 시설장을 제외한 모든 활동가가 외근 중인 상황에서 나는 이주여성 A의 의료지원 현장에 바로 투입되었다. 출근 첫날부터 단독으로 진행하는 이주여성지원이 당황스럽던 차, 당시 A의 건강상태가 악화된 터라 더욱 겁이 났다. 신부전증환자인 A 는 처음 만났을 때 끊임없이 기침을 하였는데, 내심 코로나증상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였다. 이후 나는 A 씨의 담당자가 되었는데 평생 주 2~3회를 투석을 받아야 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에 꽤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과연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월급이 더 나은 곳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투석비만 월 130만 원 이상 발생되는 현실은 막막하고 암담하기만 하였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깨달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좌절해 있을 즈음 한 단체를 통해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A의 정기적인 투석지원, 식품지원 및 출입국사무소 출석지원 등은 나의 업무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A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태를 확인하는 것 또한 익숙한 일과다.
작년 한 해 내담자들의 여러 수술 지원 또한 몇 차례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B를 싣고 매번 원거리를 2회씩 왕복하는 것은 정말 소진되는 일이었다. 이러다 나도 병상에 눕는 건 아닌가 싶을 무렵 B의 수술이 진행되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었다. 건강한 모습을 찾아가는 내담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2020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태국마사지업소에서의 태국여성 긴급구조였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경찰들과 함께 움직이려니 긴장되어 심장이 매우 뛰었다. 어떠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경찰조사가 처음이라 조심스러웠고, 조사를 받기 위해 타국의 낯선 수사기관에 앉아있는 이주여성과 함께 있노라니 안타까웠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초면의 그였지만 조사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만으로도 그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여성은 피의자 신분으로 태국으로 강제출국 당하였다. 무력하게 그를 떠나보낸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의 경우 한국어 소통 관련해서, 고령의 한국 내담자들의 경우는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 사용 관련해 소소한 업무 또한 늘 있다. 이주여성의 자녀가 속한 학교 교사와의 지속적인 소통, 병원 수소문 및 병원과의 소통, 인터넷 쇼핑몰 대리 구매 및 예약하기, 대중교통편 알려드리기, 미 배송된 택배 찾아드리기, 각종 통번역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업무 범위의 경계가 없기에 언제 어디서든 전천후로 투입될 준비가 항상 되어있어야 한다.
특히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미등록상태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원하는데 어려움은 배가 되고, 수많은 제약에 부딪힌다. 일자리나 자활지원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고, 의료비는 선주민에 비해 몇 곱절은 더 소요된다.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강제출국이기에 숨을 수밖에 없고,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무비자 상태에서 자신의 생계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지점이 나의 가장 큰 딜레마이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무작정 탈성매매만 강요하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는 개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님을 우린 사회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작년 상반기 모든 이주민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1인 시위를 하며 냉담한 사람들의 반응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건강을 회복한 내담자 덕분에 안도하기도 했으며, 얼마 전 갑작스럽게 별세하신 언니도 계시다. 그야말로 희로애락이 공존했던 한 해였다. 여러 가지 힘들고 안타깝고 소소하고 지지부진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담자들과 함께하며 오히려 내가 힘을 받을 때가 더 많았다. 작년 두레방에서 함께 찍은 사진 속 나의 표정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코로나로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줄어서 아쉽긴 했지만, 우리 언니들, 그리고 이주여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끼고 배우고 얻어가는 것이 많은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2021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모두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스크 없이 내담자들을 마주할 수 있고, 더 많은 프로그램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 해가 더해지는 만큼 기지촌여성들 및 이주여성들을 위한 법제도 또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