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글] 거대한 울림
<평택여성인권센터 품> 소장 김태정
문혜림 선생님을 알게 된 건 두레방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선생님은 그 당시 모두가 회피한 동네, 기지촌 안으로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이었고 선생님의 이국적인 겉모습은 기지촌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좋았다고 하며 많은 기지촌여성들을 만나고자 하셨다고 한다. 또한 선생님은 제자들과 기지촌여성들의 인권을 고발하는 활동과 여성들의 자활사업 일환인 빵 판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기지촌여성들의 삶 일부분을 보듬어 주셨다고 하였다.
늘 나에게 역사 안에 계셨던 선생님을 직접 만나게 된 건 어느 식당에서였다. 문동환 박사님과 잠시 한국에 오셨던 날로 두레방 식구들 모두 참석하여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많은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두레방에 대한 애정이 담긴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선생님은 두레방에 오셨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선생님은 두레방 대문에 앉아 이따금 오시는 언니들과 인사를 나눴다. 언니들 모두를 기억하진 못하셨지만 인사 나눌 때의 눈빛이 너무나 따뜻했다. 이후, 선생님은 건강 악화로 귀국하지 못하시고 한국에 머물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이 지나 선생님은 본인의 고향으로 가신다기에 인사를 드리고자 두레방과 여신도회 식구들이 선생님댁에 모였다. 선생님은 쇠약해진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아 모두를 반겨주셨다.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어하셨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은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둘러앉아 찬송가를 불렀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찬송가를 함께 불렀다. 사실 신앙이 없는 나는 잘 모르는 가사와 익숙하지 않은 음계의 찬송가를 따라부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하나의 종교 음악 차원을 넘어 그 자리에 둘러앉은 모두를 잇는 찬송으로서, 두레방과 문혜림 선생님, 두레방과 나, 두레방과 기지촌여성들을 이어주는 거대한 울림과도 같았다. 특히 선생님이 평소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가 곡을 불렀을 때는, 선생님의 어깨가 들썩거릴 만큼 흐느끼셨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더 크게 더 많은 찬송을 선생님과 함께 부르고 싶었다.
문혜림 선생님은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하나의 역사를 만드셨다. 그리고 두레방은 그 역사를 이어가는 곳이 되었다. 아무도 개척할 수 없었던 거칠고 험한 그곳을 아주 부드러운 길로 만드신 선생님의 노고가 역사 안에서 계속 숨 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나는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현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너무나도 후회스러우면서도 문혜림 선생님이 만드신 자리를 이제는 우리가 이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영광스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