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 활동가 지나
반성매매활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성매매가 불법인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성매매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 현실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곳 평택은 아주 오래된 성매매집결지가 있다. 원주민들 사이에는 그냥 ‘아가씨골목’이라고 칭하며 머지않아 개발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아래, 센터품) 활동가로 임하기 전에는 나 역시 성매매는 불법이니까 곧 없어지겠지 하면서 애써 모른척하며 살았다. 센터품에 입사해서 총3번의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면서 집결지와 성매매에 관한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었는데 성산업이 우리 사회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성착취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접하며 분노와 함께 도대체 남성의 성은 어디까지 묵인되고 이해되어야 하는지 답 없는 현실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실, 알고는 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의 학대와 폭력으로 인하여 많은 미성년자들이 가출한다는 사실도, 그들 중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돈 없고 머물 곳 없어서 업소로 유입된다는 사실도, 또 이 같은 미성년자들은 오히려 업소에서 환영받는 존재라는 사실도… 하지만 그곳에서 이뤄지는 자세한 착취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업소 간 이동에서 관행처럼 벌어지는 소개비, 홀복, 꾸밈 비용까지 어린 여성들에게 시작과 함께 빚이라는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나선 10대 소녀에게 소개소는 빵집을 소개한다면서 성매매 소개업자에게 넘기고 소개업자들은 성매매업소로 이동중에 소녀를 성폭행하고 집결지로 보냈다. 소녀는 그곳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이미 소개비로 빚 때문에 집결지에서 지옥 같은 날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1980-90년도에 대한민국에서 성행하던 인신매매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센터품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이런 사실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너무나도 참담했고 소개비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또 이 나라에는 왜 이렇게 성구매자, 성착취자들이 많은 것인지 답답하고 서글펐다.
성매매와 성착취에 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 관련도서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두 달여 동안 내가 읽은 책은 『페이드 포』,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길하나 건너면 벼랑끝』, 『선량한 차별주의자』 등이었다. 『페이드 포』를 읽으면서 저자의 박식함과 수려한 글솜씨에 반해갔다. 책을 읽어갈수록 성매매가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고 병들게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조차도 성매매업소에 베개를 두는것을 불법으로 하자는 의제가 나온다고 하는데, 평범한 베개조차 살인의 도구로 쓰인다고 하니 과연 성매매가 오직 남성만의 성을 존재하는 것이 합당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박진영 선생님의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은 성매매에 관한 전반적인 사례들을 알 수 있어서 두세 번 정도 읽었는데 운이 좋게도 센터품 내부 활동가 교육의 강사로 초청된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성매매와 탈성매매 사례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여 년간 활동가로 지내시면서 접했던 다양한 사례들을 설명해 주셨는데 ‘성매매가 합법화 되는 순간 모든 것은 성매매가 된다’고 하셨던 이야기가 가장 뇌리에 남았다.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남성들은 여성들을 보는 시각이 금전적으로 환산되어 보여질 수 있다는 점, ‘비싸보인다, 싼티난다, 얼마면 돼…’ 이런 말들이 여성들을 성적대상화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성매매피해자 지원활동 과정에서 만난 경찰관이 업주에게 “우리는 내 돈 주고 경찰복 안 사는데 왜 홀복 비용을 여성들에게 받아요?” 라고 묻는데,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당연한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성매매, 진짜 상식의 블랙홀이구나 하고 씁쓸하게 느꼈다.
『길하나 건너면 벼랑끝』,은 20여 년간 성매매로 고통받고 탈성매매로 새로운 삶을 사는 봄날 작가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매매는 곧 성착취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가정폭력과 성폭행을 겪으면서 업소를 떠돌아 다니며 열심히 일해도 결국은 빚만 남은 생활, 계속되는 업주들의 사리사욕, 구매자들의 이기적인 남성중심적인 만행들 갖가지 착취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망가진다는 사실, 성매매 곧 성착취로 고통받는 이야기였다.
주말마다 텔레비전 예능에서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사회를 살면서도 ‘내 일 아니니까, 난 그 속에 있지 않으니까’ 하면서 이런 사회부조리들을 모른 척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매매활동가로서 이제는 더 이상 성매매, 성착취가 음지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전담하고 활동해야 하는 ‘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박진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활동가로서의 경륜이 부럽게 느껴졌고, 언젠가는 나도 현장에서 쌓은 경험들로 가득 차서 탈성매매지원경험담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