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품 활동가 내부 교육프로그램] “기지촌 평화기행을 다녀와서”
*센터품 활동가 신선
올해 2월,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센터품이 소속되어 있는 두레방에 대한 교육을 받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센터품 활동 전에도 여성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왔지만 기지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기회는 거의 없었다. 1986년 설립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지촌여성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두레방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기지촌이란 공간과 그 안에 살아온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과 차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설명을 들으며 나에게 기지촌은 과거를 담은 단어처럼 다가왔다. 미군에 의해, 국가에 의해, 사회에 의해 기지촌여성에게 가해진 폭력과 차별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인식해야 할 역사적 사실로 다가왔다.
교육을 받고 몇 개월이 지난 6월 2일, 활동가들과 함께 경기북부 기지촌 평화기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차로 달려 의정부 빼뻘마을에 위치한 의정부 두레방상담소에 도착했다. 두레방상담소는 과거 성병검진 보건소였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품은 공간이었다. 빼뻘마을은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 인근에 형성된 기지촌으로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삶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미군을 상대로 운영되었을 클럽들, 과거 두레방 활동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들, 미군기지를 따라 형성된 담벼락과 통제된 미군부대 후문 출입구, 언젠가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을 오래된 놀이터도 보였다. 과거 미군 전용 바였던 공간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 지역커뮤니티예술공간인 <빼뻘보관소>에서는 빼뻘마을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빼뻘마을을 둘러보고 이어서 동두천으로 향했다. 기지촌여성에 대한 감금 등의 인권 침해가 발생했던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시작으로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 앞 기지촌으로 형성되었던 보산동 일대, 1992년 미군에 의해 살해된 고 윤금이 씨 사건 발생지, 기지촌에서 생을 마감한 여성들이 묻힌 상패동 무연고 공동묘지를 돌아보며 관련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가해진 인권침해와 폭력의 현장을 직접 걸으면서 기지촌 안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픈 순간들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23일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조속한 판결과 ‘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법’ 입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평화기행을 다녀온 후 참석한 기자회견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과거의 정의를 넘어 ‘기지촌’이라는 공간에서 그 시간을 보내온 여성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번 경기북부 기지촌 평화기행을 통해 보고 듣고 밟았던 공간에서 생존해낸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말하고 국가에 책임을 촉구하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현장이었다. 기지촌 골목길 구석구석에서 만난 폭력의 순간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만 묻혀있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들의 증언은 과거의 순간들을 현재의 사람들과 연결해 주고 있었다.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당한 응답을 이끌어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