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과 함께 춤을 ~
-대법원 판결 소감-
*김은진 원장(두레방 상담소)
2022년 9월 29일은 대한민국 기지촌 여성사에 또 한 번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넘어간 날이다. 2014년 6월 25일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여 2년 7개월 만인 2017년 1월 20일 1심에서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침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 인정받았다. 2018년 2월 8일,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인정하는 데서 나아가 원고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인권을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으므로 국가는 원고 전원에게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판결하였다. 드디어 4년 후인 2022년 9월 29일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기지촌에서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입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군사동맹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며 성매매를 조장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65년 만에 여성들이 받은 피해가 공식 인정된 것이다
두레방은 1986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자존감을 회복하며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30여 년 동안 두레방은 기지촌에서 발생하는 성매매 문제, 군사주의로 인한 폐해, 기지촌 성산업에 유입되었던 고령의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노력해 왔다. 여성들을 위한 전문상담, 의료·법률지원, 치유 프로그램, 자활사업, 출판·영상자료 제작 등을 하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에도 힘써왔다.
아울러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매우 정치적이고 군사화된 영역으로서, 이들의 진정한 인권회복과 현실적인 지원체계의 마련을 위해서는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과 민관의 협력체계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초기부터 여성들의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담뿐 아니라 기지촌여성들의 명예회복과 법제화를 위한 노력 등 최선을 다하였다.
그동안 피해 당사자들과 두레방은 ‘기지촌여성의 인권침해 피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교육 및 홍보 등의 목표’를 내걸고 2012년 발족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함께 기지촌여성을 위한 조례제정, 국가배상소송, 특별법, 국제연대 등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이렇듯 앞서 걸어가신 당사자들과 선배들의 눈물어린 노력이 ‘경기도 조례제정’에 이어 ‘대법원확정판결’이라는 또 하나의 귀한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판결 다음 날 모든 언니께 전화를 돌렸다. 모든 언니가 “활동가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대답 끝에 묻어 나오는 느낌은 기쁨보다는 씁쓸함이었다. 대법원 확정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막내 활동가가 한 분을 만나 “언니 기쁘시죠?”라는 질문에 “아니 그렇게 기쁘지도 않아 내 젊음이 아깝고 억울해”라는 대답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동안 품은 가슴속 아픔과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 잃어버린 찬란한 젊음이 보상금 몇 푼으로 절대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분들의 노년을 이렇게 만든 국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젊은 시절 가난했기에 기지촌으로 흘러올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빠져나올 수 없어 이제는 빈손, 빈 마음으로 하루하루 아픈 몸을 걱정하며 사는 홀몸노인이 된 것이다.
함께 소송에 참여하셨던 또 한 분이 소천하셨다. 천식으로 기침이 심하셨지만 웃는 모습이 무척 예쁘셨던 분. 몇 번의 혼절 그리고 응급실행으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셨었다. 핏줄이 그리워 조카들을 찾았지만, 본인이 기지촌여성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조카들에게 두레방 실무자들은 끝내 동네 지인으로만 소개되었었다. 억울해서도, 분노가 느껴져서도 아니다. 그냥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대법원 판결을 모르고 가신 언니가 너무나 안타깝다. 평생 기지촌여성이라는 아픔을 가슴에 묻고 다른 이들이 알기 원치 않으셨던 분이 결국 외롭게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이럴 때면 그동안 두레방에서 전문상담, 의료·법률지원, 치유프로그램, 자활사업, 출판·영상자료 제작 등을 하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에도 힘써왔다고 자부했던 것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기지촌에서 있던 것이 뭔 자랑이라고~ 알리기 싫어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존재하고, 현실적으로 과거에 발목 잡혀 낮은 자존감으로 살고 계신 분들도 많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외로운 싸움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그리고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결단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언니들은 앞으로 삶의 남은 부분을 수용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의 관료들과 업주들, 손님인 미군들은 그녀들을 이용했을 뿐 그녀들의 삶을 걱정하거나 책임지지 않았고, 사회와 가정은 낙인찍고, 나쁜 여자로 만들었으며, 제도가 짊어져야 마땅한 책임까지도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은폐된 성매매 공간인 기지촌에서 수십 년간,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던 기지촌여성들은 이용당했고, 버려졌으며, 고쳐지지 않은 트라우마를 가슴 깊이 안고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 두레방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기지촌 성매매 문제와 맥을 같이 하는 역사청산의 문제이다. 국가폭력, 한미 양국 정부의 반성과 사과 및 보상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언니들도 확실한 명예회복과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은 것은 ‘기지촌여성특별법’과 ‘미군 상대 소송’이다.
둘째 당사자 활동가를 키워내는 것이다. 언니들의 평균연령이 70대이기는 하지만 아직 건강하며 역사의식과 투쟁의식이 있는 당사자가 분명히 있다. 충분히 대화하고, 공부하여 당사자 활동가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군사화된 한국 사회의 병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두레방은 여러 정권이 바뀌고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군사화된 한국 사회의 병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다. 힘들지만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넷째 두레방이 활발하게 펼친 운동은 한국 땅에서의 진정한 평화는 무엇인지 생각하고, 진정한 안보는 무엇인지 고민한 것이다. 이를 위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한국여성평화네트워크, 경기여성연대 등 많은 평화운동 단체들과 협력하였다. 이런 연대단체들과 함께 일반인 대상의 평화교육, 평화 만들기 활성화를 위해 예술인들과도 폭넓게 연대하여 많은 대중이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운동의 수위를 다층화해야 한다.
다섯째 두레방 아카이브가 시급하다. 작금 의정부시가 도시재생과 함께 두레방이 거주하고 있는 옛 보건소 건물을 빼뻘마을 커뮤니티센터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건물을 지키기 위해 두레방은 전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곳에 이의 부당함을 알리고 두레방 건물의 박물관 화를 꿈꾸고 있다. 아울러 두레방 아카이브를 위해 ‘구술사 강좌’를 개설하여 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남길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여섯째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듯이, 1994년부터 오늘까지, 기지촌과 한국성매매사업장에는 필리핀 및 동아시아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정부가 발급해 주는 E-6 비자(예술흥행사증)로 입국하고 있다. 그들 역시 한국의 기지촌에서 ‘성착취 인신매매피해자’로서 살아가다가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군인 남자친구, 업주와 프로모터, 또는 손님으로부터 임금착취나 체불,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이용당하기도 한다. 70년대 전후 한국 기지촌의 전형이 이주여성에게로 똑같이 복제되는 현실을 두레방은 현장에서 매일 접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항상 앞서가는 활동을 해왔던 두레방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
일곱째 고되고 열악한 활동가들의 현실도 숙제로 남아있다.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이 주 업무 되어 버렸고, 업무 과잉으로 돌아가며 코로나에, 감기에, 천식에, 알레르기, 대상포진까지 온몸이 아프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언니들이 활동가를 무척 아껴주시고 사랑을 듬뿍 주시기에 적립된 기쁨이 있다.
예전에 본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주먹 쥐고 일어서’ ’머릿속의 바람‘ 등 인디언식 이름이 아주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었다. <늑대와 춤을>은 늑대와 춤추는 주인공 케케빈 코스트너의 이름이다. 이 이름처럼 언젠간 가부장제를 훌훌 벗어던지고, 기지촌여성이라는 굴레를 모두 벗어던지고, 과거를 모두 끊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우뚝 선 언니들과 진정으로 자유롭게 춤출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