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구술사 시민 강좌 참가자 후기
*재린(프로그램 참여자)
“네 엄마가 얼마나 야물딱졌는지 아니, 일제 순사가 들이닥쳤을 때 집에 있는 놋수저며 그릇이며 모아다 들이밀고 이게 전부라고, 그러니까 이만 가라고 그랬단다.”
이 이야기는 엄마의 외할머니가 나의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엄마가 내게 전해준 것이다. 외증조모로부터 나에게까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모계로 4대를 타고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기억으로 남아 입으로 재현되는 내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추석날 송편을 빚으면서 V-log를 찍자며 스마트폰을 삼각대에 얹고 촬영했다. 내 할머니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지만, 이것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체계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두레방이 함께 연 제10회 구술사 시민강좌에 지원했다. 나처럼 구술사에 대해 막연하게 들어만 본 사람도 전반적인 기초를 다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강좌는 첫 수업에서 구술사가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배운 뒤, 구술 아카이브의 첫 단계인 기획부터 실제 구술 자료 수집, 자료 정리, 마지막으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일방적인 강의만 있는 게 아니라,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료관에 접속해 직접 구술자료를 이용해 보는 숙제도 했다.
강좌 내내 다양한 책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특히 자주 언급된 윤택림 선생님의 구술사 개론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술사를 다룸에 있어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수업이 따로 편성된 것이 인상 깊었다. 이때 배운 내용을 특히나 잊지 않으려고 한다. 구술자를 존중하고, 그의 삶에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잊지 않을 것. 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해 구술 자료에 대해 새로 활용할 때마다 구술자의 동의를 구하고, 구술자가 원치 않으면 자료를 폐기할 것. 구술자의 삶을 착취적으로, 약탈적으로 채록하려고 들지 말 것.
마지막 날에는 두레방의 사례를 중심으로 구술사 아카이브 구축 전망에 대한 워크숍이 있었다. 두레방 김은진 원장님의 발표도 있었다. 이날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 폭력으로 어떻게 고통받았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배울 수 있었다. 남아있는 정부의 공식 문건에 기지촌 여성을 물건으로 여기는 표현들이 나오자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분노하는 수강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9회에 걸친 수업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뿌듯했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배웠으면 해 봐야지’라는 생각에 학교 선생님들께 구술하시지 않겠냐고 여쭤보았다. 깜짝 놀란 것은, 다들 당신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별스럽지 않은 일처럼 말씀하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곁에 바로 역사가 남아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구술사는 함께 사는 서로의 기억을 말을 매개 삼아 역사로 남기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