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1일, 두레방은 의정부시로부터 현 두레방 건물을 비워 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바로 새뜰마을 사업의 일환으로서 해당 건물을 상업적 공간으로 리모델링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에 두레방은 빼뻘마을 존치를 위해 전국단위 연명을 포함한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빼뻘전시 프로젝트 등 의정부시의 퇴거 명령에 저항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4월 4일부터 5월 23일까지 8차에 걸쳐 진행한 ‘빼뻘마을 존치 목요시위’에는 활동가들 뿐 아니라 고령의 두레방 언니들, 각지의 연대 단체 회원들이 모두 함께하여 힘을 모았습니다.
꽃샘추위가 남아있던 4월 초부터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5월 말까지 매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여 시위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신 고령의 언니들은 딱딱한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는 것조차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러나 매주 목요일만 되면 다른 일정도 미루시고 두레방으로 모여 시위에 참여한 언니들은 ‘두레방이 사라지면 나도 더 이상 빼뻘마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며 함께 목소리를 높여주셨습니다.
목요시위의 힘을 얻어 5월 21일 드디어 저희가 요청했던 의정부 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었습니다. 자리에는 기장총회와 기장여신도회 총무, 김은진 원장, 그리고 2명의 두레방 언니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면담의 결론은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빼뻘마을 내 두레방의 존치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목요시위도 끝이 났습니다.
현재 두레방이 계속해서 빼뻘마을에 존치할 수 있을지 그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우리의 움직임과 활동들에는 작지만 강한 힘이 있었음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두레방의 빼뻘마을 존치 활동과 목요시위에 힘을 더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하 목요시위 발언문 참조
발언자 김**
저는 이곳 빼뻘마을에 산지 40년 되었고, 두레방의 도움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빼뻘마을에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두레방이 바로 곁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시청에서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 나와서, 두레방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물어서, 저는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했는데 의료비를 지원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두레방이 저희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똑똑히 말했는데, 이렇게 두레방을 저희와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한다고 결정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 곳 마을에 몇 명 안 남았다고 두레방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니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납니다. 그럼 남아있는 저희들은 뭡니까? 저와 같이 두레방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여성들은 대체 어느 곳으로 가야합니까?
시청에서 나왔을때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두레방에서 만나보라고 부탁해서 만났고, 저를 드러냈고,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두레방이 이곳을 떠나지 않도록 시장님이 나오셔서 약속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자 정강실
20대에 제가 처음 빼뻘마을 두레방을 간다고 말했을 때, 대학 남자 동기들은 마치 제가 깜깜한 밤 어두운 정글에 들어가는 것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괜찮겠어? 같이 가줄까?”
30대가 되어 사람들에게 빼뻘마을 두레방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극소수의 누군가는 “빨갱이구나”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잘 모르겠지만 힘들겠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40대가 되어 사람들에게 빼뻘마을 두레방의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게 어느 나라 얘기야? 우리나라라고? 대통령한테 말해!!!!! 이런곳이 있다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 50대가 되어 빼뻘마을 두레방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도 무언가 돕고 싶어”라고 말해줍니다. 그들의 대답에서도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닙니다.
두레방이 있는 빼뻘마을의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형마트가 생길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빼뻘마을도 바뀌어가겠지요.
도시재생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도시재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살아왔던 기억을 승화시키며 조화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한 개의 장소에 수백 만개의 기억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개의 장소에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의 기억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회적,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빼뻘마을 두레방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현실 속에 많은 여성들이 인권유린을 당했던 장소입니다. 심지어 그 인권침해에는 국가가 개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빼뻘마을 두레방은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한 개인에게는 단칸방에서 홀로 그 삶을 살아야 했던 언니들, 태어난 아이들조차 혼혈이라는 차별을 받지 말고 살라고 미국으로 보내야 했던 언니들(언니들은 아이들을 보내고 몇날 며칠을 울었다), 하루 한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빵을 만들어 팔아야 했던 시간들, 시세보다 비싸게 언니들에게 돈을 받던 미장원을 대신해 언니들의 머리를 또르르 말아 파마를 해주던 좁은 골목들이 남아 있습니다. 언니들은 “강실아, 오래가게 빠글빠글하게 해줘~”라고 말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직 이쁠 40대였던 언니들이었네요.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며 축하해 주던 언니들, 저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삶의 기억들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빼뻘마을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두레방이 빼뻘마을에 있어야 할까요?
첫 번째, 아직 끝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 역사가 상처를 드린 분들이 생존해 계시고,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숨기고 싶었던 아픈 현대사의 단면들이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잊혀지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삶은 100년정도 될까요? 하지만 공간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이야기를 전해줄 겁니다.
세 번째, 빼뻘마을 두레방은 그 자리에서 40년을 지키며 그 시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억하고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두레방과 두레방에서 일하고 있는 다섯 명의 활동가들은 누구보다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소는 기억의 실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기억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을 찾습니다.
빼뻘마을의 미래는 흔적을 지우는 재생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이 공존하고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도시재생이 되길 바랍니다.
발언자 배윤화
“기지촌의 역사적 공간 빼뻘마을, 두레방은 빼뻘마을에 존재해야 합니다.”
역사는 인류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이며 그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빼뻘마을은 미군기지가 있는 마을로 기지촌이 형성되었으며, 의정부의 경제를 책임졌을 정도로 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국가는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빼뻘마을 기지촌을 조성하고 운영하였으며, 성 산업에 유입된 여성들을 성 착취한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기지촌 여성의 성 착취 피해를 알리고 기지촌 성 산업에 유인된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구 보건소 건물에 두레방이 있습니다.
의정부시는 국가로부터 자행된 폭력과 인권침해의 공간인 빼뻘마을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여 주민의 생활환경 개선과 주민 공동체 활성화를 취지로 한 새뜰마을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에 설립한 두레방을 빼뻘마을에서 퇴거시키려고 합니다. 두레방 건물은 이전의 구 보건소 건물로 기지촌 성산업의 산물이자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기지촌 성산업의 폐해, 기지촌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되었던 곳, 이곳을 의정부시는 국가의 권력으로 오랜 세월 빼뻘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기지촌 여성의 역사를 삭제하려고 합니다.
빼뻘마을은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인권이 침해된 공간이지만 이곳에 자리한 두레방 공간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넘어 그 존재만으로도 기지촌 여성들에게 안정감과 위로를 전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두레방은 기지촌여성들과 함께 모여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공동체를 이뤄 연대하고 있습니다.
본 발언자는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며 폭력피해를 경험한 장애 여성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에게 있어 상담소는 인권 보호 및 피해 회복의 공간이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의지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언니, 동생, 친구가 되어가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또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나가면서 힘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는 상담소와 활동가들이 있음에 연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가끔씩 여성들은 상담소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일상에서 피해를 경험하며 소외된 여성들이 갈 곳이 없을 때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곳,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상담소라는 공간이기에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지촌여성들에게 두레방은 지나온 세월 속에서 안정감을 찾게 하는 공간이며,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의정부시는 두레방 공간이 갖는 의미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하도록 계획을 변경하길 바랍니다.
과거에는 성병검사소 역할을 하며 국가가 인권침해를 해왔던 현장, 현재는 기지촌 여성의 성착취 피해를 알리고 기지촌 성산업에 유인된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지촌여성들과 연대하는 곳. 두레방은 여전히 빼뻘마을 보건소에 필요합니다.
의정부시는 성매매근절을 위한 두레방의 활동과 그 건물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정부시는 두레방을 빼뻘마을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며, 그 역사적 공간을 기록하고 발전시켜 줄 것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