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입니다(Re-Start)”
*김은진 두레방 원장
지난 일요일 빼뻘마을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산자락에서 목을 매셨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삼칠일이 되었고, 그분 유서에는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떠난다’고 쓰여있었답니다. 또 소문에 의하면 평상시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그렇게나 많이 때리셨다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입니다’ 소문은 퍼지고 그것이 소음이 되어 거품처럼 커지는 이곳은 빼뻘마을입니다.
이 마을 곁에는 마을의 10배가 넘는 텅 빈 ‘캠프 스탠리’가 버티고 있고, 시도 때도 없이 헬리콥터가 요란한 굉음을 내지르며 땅에 착륙하지도 못한 채 지하탱크에 있는 기름을 빨아들이고는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2023년에는 큰 트럭을 타고 많은 미군들이 몰려와서 총을 쏘며 군사훈련을 하고는 또 사라졌습니다. 총소리 내내 두레방에서 일하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미군은 캠프 스탠리를 반환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 빼뻘마을 기지촌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빼뻘마을 한자락땅에 버려졌던 시청소유 ‘옛 성병 보건소’ 건물에 위치한 ‘두레방’을 생각하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21년간 두레방을 지키며 거칠었던 언니들과 동거동락 해오신 유영님 전 원장이 떠오르고, 실무자들이 떠오릅니다. 열악했던 두레방 환경이 떠오르고 그 누구보다 기지촌에서 지금까지 생계를 이어오신 언니들 생각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지난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제는 늙고 병드신 두레방 언니들과 알콩달콩 계속 잘 지내야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은 깨라고 있는 것일까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2022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신규 사업대상지 68개소를 선정합니다. 일명 새뜰마을 사업입니다. 의정부시는 현 두레방 건물을 부수고 그곳에 커뮤니티센터를 짓는 것을 계획서에 넣어 빼뻘마을(고산동)이 선정 받게 됩니다.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새뜰마을사업’. 예나 지금이나 정부는 ‘새마을’이름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 옛것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설령 소외된 이들의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라 해도.
두레방에 불똥이 튀었습니다. 2024년 1월 11일 시청 여성보육과 과장과 팀장이 두레방을 방문합니다. 빼뻘마을은 더이상 기지촌이 아니므로 두레방이 성매매상담소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시내로 가야 한다면서 사무실 이전 문제를 종용 합니다. 1월 22일 균형개발추진단 도시재생과 과장, 재생정비사업팀장 외 주무관 2인이 두레방을 방문합니다. ‘두레방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강하여 사용할 계획이다. 건물을 활용하여 빼뻘마을 라이프 푸드 팝업스토어(쿠킹클라스-통닭만들기 등)를 진행하고, 등산객도 유치하려 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들에게 두레방 건물은 이미 커뮤니티센터 건물입니다.
“한국 최초로 미군 기지촌 ‘위안부’ 운동의 공식적인 역사는 두레방으로 시작됩니다! 두레방은 빼뻘마을에 존재해야 합니다! 옛 성병 보건소인 두레방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아픈 역사도 후손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울리는 꽹과리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빼뻘마을이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약자의 역사가 무시되어 고스란히 삭제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쟁 이후 스스로 거름이 되어 도시의 경제를 일으키고 가족과 나라를 먹여 살린 기지촌 여성들, 국가폭력에 희생된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역사의 가치를 지우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년이 되면 아파트를 주겠다고 속여왔던 정부가 아파트는커녕 기지촌 여성들의 보금자리요, 사랑방이요, 최후의 공간인 두레방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에 언니들은 분노했고, 만나주지 않는 시장을 만나기 위해 시청 앞 거리로도 나섰습니다. 1월부터 지금까지 참 숨 가쁘게 지내왔습니다.
5년 전 마을 프로젝트로 빼뻘마을에 오신 현주 작가와 광희 작가가 필자보다 이런 현실에 더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며, 빼뻘마을 두레방 존치를 위해 큰소리를 내어 주셨고,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너무 바빠 삼십팔년동안 제대로 된 아카이브를 하지 못했던 두레방에게 함께 하자며 손을 잡아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두레방은 창고를 열어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두레방 건물에서 행했던 미술치료 결과물들, 공예작품들, 사진자료들, 인터뷰 영상까지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존과 공생의 마을재생을 제안하다’ 포럼을 열어 두레방이 왜 빼뻘마을에 있어야 하는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셨습니다.
짧은 시간,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가 절실하였고 두레방×빼뻘보관소는 힘을 합쳐 그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순식간에 모인 열다섯분의 작가가 본인들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발휘하여 작품을 만드신 것은 참으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시회를 찾아와 영감과 감동을 얻으셨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레방 언니들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레방 빼뻘마을 존치를 위한 목요시위’에 참여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으며,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했던 분들이 두레방 전시를 참관하러 오신 분들을 안내하고, 인터뷰에도 과감하게 응하셨습니다. 작가들과 공동체 워크숍에 참여하셨고, 전시 오프닝 프로그램에서 두 발을 하늘로 올려 거꾸로 솟아보려는 조제인 작가의 퍼포먼스에 몰입하여 반응하시며, 안타까워하셨고, 박수로 격려했습니다.
이번 예술 프로젝트의 바람처럼 의정부시는 미련을 갖게 되었을까요? 자신들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까요? 그것은 미지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빼뻘마을과 공존하려는 두레방의 미래에 희망을 발견합니다. 두레방이 빼뻘마을에 계속 있어야 하는 사안이 도리어 명징해졌습니다.
앞으로 두레방의 행보는 열려있습니다. 문화연대, 기지촌여성연대 그리고두레방의 공동성명발표가 기다리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레방 이야기를 적극 알리겠습니다. 9월 경기여성정책컨퍼런스 주제를 두레방 이야기로 하는 것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정기적 포럼을 계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풀어진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벌어졌던 입을 앙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시작하렵니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1986년, 어차피 역사는 약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라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두레방 창시자 문혜림선생의 허스토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두레방은, 두레방 언니들은, 두레방 활동가들은 목숨 걸고 두레방을 빼뻘마을에서 지키고자 합니다. 앞으로 두레방의 행보에 계속 관심가져 주시고, 두레방의 투쟁에 용기를 내고 함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빼뻘마을에는 헬리콥터 소리가 고막을 울립니다.
두레방 활동가의 눈으로 바라본,
2024 공동 프로젝트 “거품, 소음, 웅성거림”
*박수미 두레방 활동가
열흘간(5월 25일~6월 4일)의 ‘거품, 소음, 웅성거림’ 전시와 6월 5일의 포럼까지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 많은 기획자, 참여 작가들, 두레방 활동가 및 여성들이 한마음으로 두레방이 빼뻘 마을 안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두레방’ 공간 안에서 전시를 진행한 것은, 의도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지원 단체로서 내담자들이 수시로 상담하러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한 ‘두레방’은, 내담자들을 위한 상담소 기능뿐만 아니라 기지촌에 대한 연구자, 해외 활동가 등 현장 방문자들에게 기지촌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동안은 이렇게 먼저 두레방 운동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방문자들의 방문만을 수락해 왔다면, 이번 전시는 소속을 불문하고, 기한 안에 맘껏 두레방을 살펴보고, 곳곳에 담겨있는 과거 역사와 관련된 스토리, 자취들을 대중들이 자유롭게 들춰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첫 시도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수 많은 방문자들이 전시회 방명록을 기록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을 보면서, 곧 다가올 미래에는, 두레방이자 과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진료소’였던 이곳이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이슈이자 현장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시 기간을 앞두고도 ‘두레방 빼뻘마을 존치를 위한 목요 시위’는 이어졌습니다. 시청 앞 집회 현장에서 플라멩코를 선보여 주신 솔돈나 선생님께 “왜 이런 것을 해야하냐”며 불만을 토로했던 언니들의 인식이 바뀌게 된 에피소드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5월 25일 전시회 오프닝 행사 때 솔돈나 선생님의 완성도 있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피드백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집회 때 왔던 그 선생이 저 선생인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춤을 멋지게 추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 사실 제일 큰 목소리로 집회 때 춤을 배우는 것에 대해 항의하셨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들 플라멩코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플라멩코에 대해 “남성의 도움 없이, 여성 혼자서 추는 춤”이라고 소개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을 의존적, 혼자서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데, 플라멩코는 그러한 편견과 인식을 깨는 여성주의적 예술 활동”이라는 설명에서, 두레방에서 추구하고 있는 여성주의 운동과도 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추는데도 힘이 넘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플라멩코처럼, 우리 두레방 역시 대중들에게 처음에는 생소하고 거부감이 있을지 몰라도, 강렬하고, 아름답고, 힘차게 느껴지는 운동이라고 평가받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우리의 몸짓과 행동, 움직임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대중들에게까지 주목받고 호응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도 고민해봅니다. 예술가들과의 접촉과 공동 작업을 통해 나를 비롯한 활동가들도 긍정적인 비전과 새로운 영감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포럼 당일에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좌석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시청과의 문제로 인해 활동가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굴욕감이 있었고, 그래서 대중들을 만나는 행사가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럼 행사 당일,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주는 분들의 호의에 굳어진 마음이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특히 경기문화재단에서 보여주신 친절과 협력이 없었다면, 많은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려움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레방 5명의 활동가와 1명의 자원활동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포럼 당일, 토론을 맡았고, “두레방 건물은, 두레방을 상징한다”고 발언했습니다. 특히 두레방 여성들은 그 동안 시청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이 요구하고 있는 두레방 이전은, 여성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처지처럼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두레방이 처한 위기가 자신들의 약한 위치 때문일지 모른다는 자괴감으로 와 닿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전 통보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담당 시청 공무원들이 보여준 덤덤함과 당당함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제안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두레방 내부적으로는 단체의 근원을 뒤흔드는 위기 상황임은 (현재적으로는) 분명합니다.
시청 담당자들이 반문 한 내용입니다. “두레방이 어디로 가든, 기지촌 운동이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곳에 가서도 그대로 지속 하면 되지 않겠냐”고.
반대로 두레방이 빼뻘마을을 떠나 기지촌과 관련 없는 곳으로 이전하여 활동하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두레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레방의 근원이 되는 기지촌을 떠나 그곳을 ‘두레방’이라고 한다면, 두레방은 과연 그곳에서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두레방이 무엇을 해왔는지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럼을 통해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관련 전문가들과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종합적으로는 미래의 두레방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지, 그 시기와 당면 과제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를 실감하는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두레방이 갖고 있는 풍부한 경험과 축적된 자료들은 충분합니다. 지역 내 시민들과 대중들에게도 두레방이 필요한 곳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레방의 긴 역사와 운동의 성과는 지역사회의 자랑이자 자산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자원이기에 소홀하게 다뤄지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을 드러나도록 표현하고 가시화시킬 수 있는 전문가들을 접촉하고, 다양한 분야들과 소통하고 접목시킬 과감한 시도들도 필요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