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
[인터뷰]두레방 가을소풍 참여자 오영심
오영심(가명) 씨는, 어린 시절 식모살이로 시작해 이 집 저 집 전전하는 생활을 이어가다 1963년 의정부 기지촌으로 들어왔다. 일흔이 넘는 지금 나이에 이르기까지 밥벌이를 위해 공장·공사장, 남한 9도 다 돌아봤다는 오 할머니에게 “만약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물으니 “먹고 입는 거 걱정 없이 행복한 삶”이라 답한다. ‘만사 달관한 염세주의자’와 ‘해맑고 따뜻한 열망가’의 모습이 공존하는 그는 업과 섭리(攝理)에 관심이 많다.
10월 12일 두레방 식구들과 함께 가평으로 떠난 가을 소풍날, 달리는 차 안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생애 최고 행복한 날”이라 읊조리듯 노래한 오영심 씨!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난 11월 그의 집을 찾았다.
(두레방 활동가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고령의 기지촌 여성들을 ‘언니’라 부르며, 편의상 그 호칭 그대로 본 글에 적용했음을 밝힌다.)
두레방 활동가(아래, 준): 지난 소풍 때 언니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세요?
오영심 할머니(아래, 언니): 그럼.
준: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 진짜 그날이었어요? 다른 날이 또 있지 않았을까요?
언니: 없거든! 나는 아무대도 가 본 적이 없어. 그날하고 제주도(2017.06.두레방 여행)밖에 없어. 어렸을 때 소풍 한 번도 못 간 걸. 소풍갈 여가가 어디 있어? 그리고 소풍은 뭐 빈손으로 가나? 집에 있는 건 꽁보리밥뿐이고 그마저도 식구들 먹을 것도 부족한데 그걸 어떻게 싸가지고 가?!
준: 언니는 몇 살 때부터 가족들이랑 떨어져 살았던 거예요?
언니: 몰라, 물어 보지 마! (활동가를 샐쭉 흘겨보며) ‘존심’ 상하게… 아주 어렸을 때 식모살이를 시작했는데, 그 후로는 뭐, 돈도 없고 자유도 없으니까 소풍 한 번 못 가봤지.
준: 그래서 두레방에서 떠난 소풍날이 제일 행복했다고 하신 거구나. 그럼, 작년 제주도 일정 중에선 뭐가 제일 좋았어요?
언니: 비행기 탔다~, 그거지.
준: 올해 가을 소풍날 중엔 뭐가 제일 좋았는데요?
언니: 차타고 드라이브 했다~, 그거지.
준: 언니는 뭔가를 타고 가는 걸 좋아하시는 구나?
언니: 나는 ‘마~냥’ 가는 게 좋아. 먹고 사는 거, 아무런 걱정 없이 ‘마~냥’ 가는 거. 사실, 썩 좋은 것도 없었어. 현실이 급하니까. 한 달 방세. 전기세. 그거 안내면 앉은 자리가 얼마나 가시방석인데! 옛날에(약 50세) 공장 다닐 적에 한 번은, 완행열차 타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서 하계휴가 때 기차 타고 부산을 갔잖아. 그런데 입석인데다 30분 연착까지 되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8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가느라고 ‘오금쟁이’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준: 부산?
언니: 거기가 내 고향이잖아.
준: 고향에 누구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언니: 넌덜머리가 나. 하나도 만나고 싶지 않아 나는…
준: 행선지를 부산으로 택한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언니: 부산도 가고 싶지는 않았어. 그저,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동반자는 없고, 혼자 가기는 싱겁고, 아는 곳도 없고, 가본 적도 없고…그래서 거기(부산)라도 한 번 가봤던 거지.
준: 부산 가서 뭐했는데요?
언니: 혼자 태종대 한 번 가보고 자살바위도 보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고향이 부산인데 태종대도 한 번 못 가봤잖아.
준: 지금도 부산에 언니 가족들이 살고 계세요?
언니: ‘엄마아부지’ 다 죽고 동기간들은 있지. 작년에 엄마가 죽었어. 여름 음력 8월 달, 96세, (만약 살아계셨다면) 올해 97세.
준: 장수하셨네요.
언니: 원래 가난하면 오래 살아. 복 없는 사람은 (오히려) 부자가 되면 ‘빨랑’ 죽어. 우리 엄마는 늙어선 ‘오금쟁이’가 아파가지고 잘 걷지도 못했지. 아침밥 먹으면 점심은 못 먹고, 저녁도 겨우 시래기죽 한 그릇이 다야. 그 정도로 우리집은 가난했어.
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부산 가보셨어요?
언니: 안 갔지. 돈이 없어서 안 갔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준: 언니가 살면서 제일 섭섭하거나 억울했던 건 뭐예요?
언니: 물어보지 마. 한 두 가지라야지.
준: 기지촌에 살면서 억울한 일이 참 많았을 것 같아요.
언니: 자기들 잇속 챙기는데 악착같은 게 세상이야. 기지촌은 특히 더하지.
준: 역사도 증명해 주고 있잖아요. 이 나라가 온갖 수로 미군기지 주변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 방관한 거 말예요.
언니: 방관했지. “천 원어치 베풀고 만 원어치 지배하려는” 것들이야.
준: 천 원어치 베풀고 만 원어치 지배요?
언니: 우리가 외롭잖아. 그 틈을 타서 살금살금 간지럽혀 놓고, 나중에 바라는 건 만원어치, 이 만원어치, 삼 만원어치, 더 지배를 하려 든다는 말이야. 그래서 못 견디고 목 매 자살한 사람도 있고, 물에 빠져 죽기도 했지. 이런 도독 놈들…여긴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 나는 부모랑 동기간이 있는데도 외롭지.
준: 언니는 외로울 때면 어떻게 해요?
언니: 뭘 어떻게 해? 외로워서 책도 많이 봤고, 우울증이 와서 밤새도록 잠도 못 잤지. 그랬는데, 종교(불교)생활을 하니까 조금 괜찮아지더라고.
준: 불교에는 윤회사상(輪廻思想)이란 게 있잖아요. 만약에 언니가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언니: 먹고 입는 거 걱정 안 하고 행복한 삶! 그런데 그런 게(윤회) 어디 있나? 가망 없는 소리지. 다시 돌아오지는 않아.
준: 언니, 만약에 제가 언니의 딸이나 손녀라 치면 저한테 해주고 싶은 말 같은 게 있을까요?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좋고.
언니: 나는 말할 자격이 없어.
준: 저는 언니한테 배울 점이 많은 거 같은데요?
언니: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표 간장. 간장~” 인생 시작도 안 했는데 뭘 말해, 알아서 잘 살아! *1961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CM송
준: (웃음) 앞으로 집에 자주 초대해 주세요.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시고.
언니: 우리 집엔 오는 사람도 없고. 불러들이지도 않아!
준: 그럼 심심하지 않아요?
언니: 심심해도 나는 인간이 싫어.
준: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예요?
언니: 강아지. 강아지는 충성을 다해. 변심을 하는 법이 없지. 근데 사람은 변해. 잇속 챙기는 데 제일 약빠른 게 사람이야.
준: 사람 빼고 또 좋아하는 건 뭐예요?
언니: 옛날에 병아리를 한 번 장난으로 사봤어. 한 마리에 돈 백 원하던 시절에 오백 원 주고 다섯 마리를 데려와서 닭이 되도록 키웠지. 공사판에서 모래 한되 퍼 와서 살살 펴주니까 희한하게 거기에다가 똥을 싸더라고. 그러다 한 번은 설사를 하기에 약방에서 테라마이신(Terramycin)을 사다가 박*스 뚜껑에 물이랑 같이 타서 조금씩 먹였는데, 걔네들이 얼마나 웃긴 줄 알아? 그걸 한 놈이 먼저 슬쩍 맛보더니 다른 애들한테 “뾱뾱, 뾱뾱뾱뾱” ‘눈까리’를(언니는 본격적으로 병아리 흉내를 내며) ‘요래~요래~’ 돌리더라고. 물이 노랗고 먹어 보니까 맛도 쓰거든. 그러더니 다른 병아리한테 가서 “뾱뾱, 뾰뾰뾱, 니(너)도 한 번 먹어봐라” 이거야. 다른 병아리는 또 “그래? 뾰뾰뾱?” 한 번 먹어보더니 기겁을 하고, “뾰뾰뾰뾰뾰뾱뾱뾱~빨리 뱉어! 뱉어!” (…)
(언니는 인터뷰 통틀어 제일 신나게, 꽤 오랫동안 병아리 묘사에 열중했다.)
준: 그렇게 언니는 병아리들을 한참 관찰하고 돌봤던 거네요?
언니: 지들끼리도 말을 하나봐. 추우면 “춥다, 춥다” “뾱뾱, 뾱뾱” ‘요~래, 요~래’ 서로 날개를 포개고 감싸주더라고. 짐승들도 그런 게 있는데… 제일 못난 게 사람이야.
준: 에잇. 사람 따위 믿지 말까 봐요.
언니: “맛을 봐야 맛을 알지 *표 간장~” 옛날에 며느리가 진통을 겪으면서 시어머니한테 “어머니, 애가 언제 나올까요. 언제까지 아파야 해요?” 하니까 시어머니가 “문고리가 말랑말랑 해질 때가지” 했단 말이야. 근데 쇠붙이가 어떻게 말랑말랑해져? 시어머니도 출산을 해봤으니까 참아내도록 조언을 해준 거지. 한 마디로 맛을 보라 이거야. 나도 애를 셋이나 배봤잖아. 근데 셋 다 뱃속에서 떼었어. 애가 들어서면 일을 못하고, 돈 못 벌면 당장 방세를 못 내요. 그럼 아주 가시방석이지…
준: 만약 그때 떼지 않았다면, 지금 언니 옆에 자식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언니: 범띠야. 올해 마흔 다섯 살…
(언니는 45년 여 전에 뱃속에서 작별을 고한,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를 아이의 현재 나이를 일러주었다. 해마다 아이를 그리며 계수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한편 인터뷰 말미, “뭐 인터뷰라고 해서 적을 거나 있겠어?” 하시더니 작은 메모지 하나를 슬며시 내밀어 보여주었다.)
준: 이게 뭐예요?
언니: 옛날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나보고 살면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거든. 그때 나는 속으로 ‘돈만 있으면 됐지.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나도 살아보니까 생각이 조금 달라지더라고. 그래서 한 번 적어본 거야. “첫째는 건강, 돈, 사랑, 집, 존경”
수십 년 동안 부모와 형제, 국가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외로운 삶을 살아온 오영심 할머니가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 돈, 사랑, 집, 존경”이었다. 노령이 된 기지촌 여성들 대부분은 가족과 연을 끊고 홀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그마저도 미군기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의정부 일대 땅값이 많이 올랐고, 두레방 주변 시세도 조금씩 들썩이면서 주거문제 등, 할머니들의 삶의 질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오영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십 년 동안 외면당했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학대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레방을 찾는 할머니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을 누릴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듣고, 답하고,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