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방 상담소 활동가: 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 어느새 두레방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였다(2020신입활동가 민의 가을소풍이야기1->http://durebang.org/?p=7219). 사과 따기 할 계절이 온 것이다. 고약한 코로나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지만, 활동가들은 물론 대부분의 언니들이 코로나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기에 고심 끝에 2021 가을소풍을 결정하였다. 위드 코로나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었다. 홀로 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언니들이 점점 늘고, 활동가들 또한 끝없는 코로나 상황에 지쳐있던 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이 결정되자 모두가 아이처럼 기뻐했다. 12인승 승합차 한 대로 이동했던 작년과 다르게, 이번엔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두 대의 승합차량이 동원되었다. 손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등 코로나키트와 함께 여유 있게 차에 몸을 실었다. 드라이브를 참 좋아하는 우리 언니들은 차에 몸만 맡겨도 신이 나신단다.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이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맨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모형 같은 미니 사과나무들과 널찍한 원두막이었다. 중간에 도시락을 사느라 늦어진 다른 일행을 기다려야했는데, 마침 원두막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미니사과나무 아래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는 언니들, 원두막에 누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만끽하는 언니들, 그늘 아래 의자에 자리 잡고 앉은 언니들… 띄엄띄엄 제 각각이지만 모두의 얼굴은 사과처럼 발그레하다. “좋다, 참 좋다”를 연신 내뱉으시며 곳곳에 방그레 웃음꽃이 핀다.
한 언니와 함께 농장 한 바퀴를 산책하고 돌아오니, 때마침 나머지 한 대의 차량도 도착하였다. 코로나 장기화로 모두가 꽤나 소진되었던 차, 저 멀리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 40여 분의 시간은,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즐거운 노동을 위해 배부터 든든히 채운다. 다 같이 둘러앉지는 못하고, 이이삼삼 짝이 되어 멀찍이 앉아야하는 상황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야외에서 풍성한 도시락을 즐기니 나름 추석명절 느낌이 든다. 식사를 마친 후, 소화시키기 위해 한참동안 또다시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특히 소풍날 농장 방문자는 우리 두레방팀이 유일했던 터, 농장 통째로 전세 낸 것처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농장 관리자의 이런저런 설명과 팁을 전수받고, 넉넉한 인심으로 후식 사과와 배까지 섭취한 뒤 풍성하고 행복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드디어 본격적인 사과 따기 체험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언니들의 민첩성과 포착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작년처럼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빨갛게 탐스러운 사과가 시야에 들어오면 과감하게 손을 뻗었다. 작년의 내가 아니었다. 내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있지만, 1인당 수확할 수 있는 사과의 개수가 현저히 많아져 더욱 마음 편히 딸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는 수확 가능한 사과가 여섯 개였지만 이번에는 열다섯 개 정도였기 때문이다. 농장 또한 넓어서 서로 경쟁할 일이 없었다. 언니들도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사과 따기를 즐기셨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변함없이 나는 마지막 주자로 들어왔지만, 꼴찌면 어떠하리. 사과 무게를 달며 만족스러워하는 언니들의 모습에 그저 행복하다. 개발 중이신 신종 사과의 맛을 보여주시는 농장 관리자의 서비스에 한 번 더 흡족해 하셨다. 택배발송은 하지 않는다는 관리자의 말에 잠시 실망하는 언니들도 계셨지만,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내 차에 올랐다. 다른 활동가들이 이미 세팅해 놓은 소풍날, 참여만 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농장 섭외라는 역할을 맡고 ‘장소가 별로면 어쩌지? 사과 맛이 안 나면 언니들이 실망할 텐데…’ 이런저런 걱정으로 혼자 은근한 긴장감을 품고 있던 나는, 그제야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요즘도 언니들은 올해 방문했던 농장의 사과가 훨씬 맛있었다며 후일담을 나누신다. 언니들이 만족해하셔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두레방의 두 번째 소풍도 언니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반복되는 여성들의 소외, 고립, 배제로 인한 문제로 고민이 깊은 요즘, 잠시나마 언니들을 담은 평화로운 풍경 안에서 팬데믹 상황을 잊을 수 있었다. 언니들과 함께 소소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