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양(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
- 이런 전시 어때요
저는 인생의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 ‘두레방’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우연과 필연이 섞인 신기한 과정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레방’과의 인연은 2021년 11월 기지촌 여성 발표를 위해 활동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안 맞아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후, 연락을 드렸던 활동가로부터 전시 <나 여기 지금: 기지촌 세 여자 생애사>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시 연락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기지촌 여성 생애사 전시라니, 최근에야 기지촌 여성의 존재를 알게 된 저로서는 이런 귀한 전시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두근두근한 마음과는 달리 한파 특보가 내린 유난히 춥고 시린 날이었습니다. 저는 관람 시간에 맞춰 전시회를 보기 위해 동두천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3년을 동두천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동두천은 익숙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시 외국인관광특구’는 처음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쪽은 할렘가이니 가지 말아라”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보산동 일대는 낯선 지역이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무농도예’에 가면서도 지도 앱을 여러 번 켜야 했습니다. 그래도 전시장에 도착하니 선생님들께서 전시와 관람 순서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그때부터 다시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 기지촌 성산업과 사회적 인식
전시를 보면서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기지촌 성산업에 유입되는 경로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상당수 기지촌 여성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지촌 여성의 삶에 대해 연민을 느끼면서도, 성매매 행위의 자발성을 강조하며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러나 전시 영상 속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에게 ‘자발성’이란 단어는 참으로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환경과 구조 자체가 여성을 기지촌으로 내몰았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기지촌 여성을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언급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팽배하죠. 그러나 이렇게 쉬쉬하고 숨기는 행위들은 결국 관심의 부재, 곧 망각으로 이어집니다.
- 인식의 부재와 존재의 망각 속에서
작년 12월, 저는 한 수업에서 기지촌 여성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학생 대부분이 기지촌 여성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우들에게 ‘이런 일(기지촌 성산업)이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 또한 의정부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기지촌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다른 학우들도 어디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으니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당연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앞서 말했듯이 인식의 부재는 존재의 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들 잊혀지는 것은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교묘한 틀에서 비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망각의 정치를 막기 위해서는 기지촌 여성이 과거에서부터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기지촌 여성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인식 제고,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전시 리플렛 속 기획자의 말처럼 예술에서 어떠한 존재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는 필연적으로 타자화를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존재의 피해자성을 완성하고 그것을 부각하는 것일까요. 이번 전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저는 전시장에서 각각 18분 20초, 33분 40초, 30분 10초 동안 영상 속 인물을 보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그저 보고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듣다’와 같은 아주 간단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오히려 기지촌 여성과 저에 대한 인식을 심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가 ‘기지촌 여성’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제가 이해하려고 한 것은 어쩌면 제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틀 안의 허구의 것이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아카이브 영상은 우리에게 무언가 더하는 것보다, 더 하지 않기를 요청합니다. 그럼으로써 기지촌 여성이라는 존재가 한마디 말로, 혹은 특정한 모습으로 쉽게 판단되지 않기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상황과 현실적인 위치에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 틈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세 여성의 개인사 속에서 우리는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인식과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 전시장을 나오며
전시를 다 본 후, 원장님께서 ‘무농도예’에서 전시를 열게 된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도자기 공방이 들어선 전시장 건물은 과거 기지촌 클럽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건물 2층 전시장은 실제 기지촌 성매매가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전시장 위치를 특별히 이곳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제 건물 외관에는 과거의 흔적이 온데간데없고 건물은 도자기 공방으로 탈바꿈했지만, 어쩐지 계단의 좁은 폭과 높은 단이 오래된 건물의 흔적과 그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 ‘동두천시 외국인관광특구’에는 여전히 미군전용클럽, 술집들이 있었습니다. 겨울바람이 부는 길목을 들어서며 저는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가 전시회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에 새삼 기뻤습니다. 그러나 길목 양옆에 들어선 클럽과 술집을 보니 어느샌가부터 한국 여성의 자리를 동남아 여성들이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곳에 여전히 여성들이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렇듯 기지촌 성산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더욱이 아카이브 작업은 그 중요성이 대두됩니다. 사라지는 기억과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아카이브 구축은 다양한 층위의 기지촌 여성, 개인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지촌 성산업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또한 기지촌 여성 생애사, ‘두레방’과 같은 민간단체의 활동 등 아카이브 작업이 다방면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문화•예술적 콘텐츠로 연결되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와 같은 활동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기지촌 여성이 과거 한 장의 사진, 그 속에서 그려지는 단순한 피해자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이런 소중한 전시를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잘 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두레방’의 여정과 그 여정에 제가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